5년간 식당에서 하루 평균 18시간을 일한 장애인의 월급 수천만원을 가로챈 양어머니에 대해 법원이 집행유예 판결을 내린 것으로 5일 확인됐다. 이를 포함, 지난해 판결난 이른바 ‘현대판 노예 사건’들 가해자 절반 이상이 벌금형이나 집행유예 처분을 받는데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노예 사건 피해자는 구조 후에도 트라우마 속에 지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관련 법령이 미흡해 수사기관이 단순 임금체불이나 가혹행위 사건 등으로 의율(擬律)해 기소하면서 가해자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국민일보가 지난해 법원이 선고한 노예 피해자 사건 7건을 분석한 결과 가해자 9명 중 실형을 선고받은 경우는 4건에 그쳤다. 서울서부지법은 지적장애 3급인 양아들이 번 월급을 5년간 매달 대신 받아 총 6010만원을 자신의 생활비로 쓴 혐의(횡령)로 기소된 계모 김모(61)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잠도 제대로 재우지 않고 새벽까지 일을 시키고 평균 100만원 정도 월급만 지급한 차모(50)씨에 대해서도 벌금 500만원형만 선고했다.

재판부는 “김씨가 양아들을 돌봐준 정황이 있고, 횡령액 일부는 양아들을 위해 사용한 흔적이 있다는 것 등을 참작했다”고 판시했다. 차씨에 대해서도 “근로능력이 떨어져 임금 차등 지급이 합리화된 점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지적장애 3급 이모(55)씨를 2002년부터 13년간 집에 거주시키며 농장 일을 시킨 김모(66)씨에게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김씨가 이씨에게 벼농사와 축사 일을 시키면서 월 10만원 남짓의 급료만 지급한 사실을 인정했지만 처벌은 집행유예였다. 경기도 군포에서 지적장애 2급인 조카 문모(26)씨를 2014년부터 1년4개월간 일하게 하며 장애인 연금 657만원을 횡령한 A씨는 벌금 500만원만 선고됐다.

폭행을 가한 사실도 인정되는 경우 징역형이 선고됐지만 형량은 높지 않았다. 지적장애인 B씨를 2006년부터 8년간 충북 괴산의 농가에서 배추 재배를 시키는 등 머슴처럼 부리고 폭행한 60대 남성은 징역 8개월을 선고받았다. 지적장애 2급인 황모(64)씨와 최모(37)씨 모자를 15년간 무임금으로 일하게 한 충남 당진의 과자공장 사장 정모(68)씨는 징역 2년에 그쳤다. 그가 체불한 임금과 퇴직금은 4억4000여만원이었다.

‘신안군 염전노예 사건’ 업주들이 줄줄이 집행유예로 감경돼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이 쏟아졌지만 비슷한 판결이 계속되는 셈이다. 20년 넘게 임금을 받지 못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노동력을 착취당한 60대 남성 사례(국민일보 5일자 1면 참조)도 같은 기준이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

원곡법률사무소 최정규 변호사는 “법원·검찰·경찰 등이 해당 사건을 장애인에 대한 인권침해 문제가 아니라 단순 임금체불로 해석하는 게 문제”라며 “이 때문에 집행유예 등으로 형량이 낮게 나온다”고 말했다. 이어 “장애인 입장에서는 그 기간 단순히 돈을 못 받은 게 아니라 여러 가지 기회를 잃어버렸다는 점도 고려돼야 한다”고 했다.

특히 현대판 노예 피해자는 대부분 지적장애인으로 수년에서 수십년간 노동력을 착취당하면서도 권익이 훼손됐다는 사실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는 “근로감독관이 최초 조사를 하는데 장애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기소가 잘못되면 형량도 가볍게 나올 수밖에 없다”며 “‘노예 사건’은 장애인들을 일터나 주거지에 묶어둔 일종의 인신매매 범죄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경구 이택현 기자 ni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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