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룡해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당시 비서)은 2014년 11월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당시 국방위 제1위원장) 특사 자격으로 러시아를 방문했다. 김 위원장은 특별히 러시아 방문 때 이용하라며 최 부위원장에게 자신의 전용기를 내주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김 위원장 전용기가 ‘고물’이라는 사실만 국제적으로 알리며 망신만 당했다. 전용기가 평양 순안공항을 출발한 지 2시간도 채 안 돼 비행기 결함으로 중국 상공에서 평양으로 회항했기 때문이다.

김여정을 비롯한 북한 고위급대표단이 9일 남측을 방문하면서 이용할 전용기는 2014년 당시 최 부위원장이 이용했던 바로 그 전용기다. 이 전용기는 ‘최고 존엄’의 전용기라고 보기에는 너무 낡은 ‘고물 비행기’에 가깝다.

전용기는 옛 소련 일류신사가 장기 취항을 목적으로 제작한 IL-62 기종이다. 이 기종은 1963년 첫 비행을 했고 1993년 생산이 종료됐다. 북한은 1970년대 제작된 기종을 1980년대 도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운항에 들어간 지 30여년이 지난 셈이다. 고려항공 소속 항공기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졌다.

워낙 낡은 기종이기 때문에 중국과 유럽연합(EU)은 현재 김 위원장의 전용기 취항을 거부하고 있다. 사고가 날 가능성이 높아서다. 중국은 2013년 고려항공이 보유한 노후 기종의 중국 취항을 금지했다. 베이징 공항에 착륙하다 타이어에 화재가 발생하는 등 잦은 고장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이에 앞서 EU는 2006년부터 고려항공을 전면 운항 금지 항공사로 지정했다가 2010년 최신 기종인 TU-204에 한해서만 제한적으로 운항 허가를 재개했다.

김 위원장의 전용기는 제원을 따져 봐도 다른 국가 수반의 전용기에 비해 작은 편이다. 여객기로 사용했을 경우 최대 183명의 승객이 탈 수 있는 규모다. 비행기 동체 길이는 53.1m다. 반면 문재인 대통령 전용기 기종인 보잉 747-400는 최대 416명의 승객을 태우며, 길이는 70.7m다. 북한은 김 위원장 전용기를 ‘참매1호’라고 부른다. 남한은 ‘공군 1호’ 또는 ‘코드 원’이라고 부른다.


그럼에도 김 위원장의 ‘전용기 사랑’은 남다르다. 2015년에 김 위원장은 평양 주택단지인 ‘미래과학자거리’ 건설 현장을 전용기를 타고 시찰했다. 장거리 시찰도 아닌 평양의 건설현장을 둘러보는데 굳이 전용기를 이용한 것이다.

2015년 광명성 4호 발사 직전엔 전용기를 타고 동창리 발사장 현지 시찰을 다녀오기도 했다. 2014년 황병서·최룡해·김양건 등 북한 ‘실세 3인방’의 인천아시안게임 방문과 같은 특별 행사 때도 김 위원장이 전용기를 내줬다. 커티스 멜빈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한미연구소 연구원은 위성 지도를 분석한 뒤 김 위원장이 전용기를 쉽게 이용하기 위해 평양에 800m 길이의 전용기 전용 활주로를 건설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반면 김 위원장의 할아버지, 아버지는 비행기를 싫어했다. 아버지인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은 최고 권좌에 오른 이후 지방 시찰은 물론 해외 방문 때도 비행기를 이용한 적이 없다. 7차례의 중국 방문 당시는 물론 2001년 한 달 가까이 러시아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때도 모두 열차를 이용했다. 1976년 헬기 추락사고로 심하게 다친 뒤 비행에 대한 공포가 생겨 절대 비행기를 타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소공포증이 있다는 분석도 있다. 김일석 주석도 고소공포증 등으로 노년이 되면서 상대적으로 열차를 선호했다.

김 위원장이 할아버지, 아버지와 달리 비행기를 이용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는 것은 ‘두려움 없는’ 젊은 지도자의 이미지를 부각하면서 대내외적으로 권위를 과시하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윤성민 기자 wood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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