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현의 두글자 발견-고난] “눈물에 젖어 무릎 꿇고 당신을 부릅니다”

사순절(2월 14일~3월 31일) 바흐 ‘마태수난곡’과 함께 묵상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생각하면 ‘십자가의 고난’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극심했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다. 예수님의 전 생애가 고난이었다. 예수님은 태어나실 때부터 빈곤이라는 고난을 마주했고, 헤롯의 탄압을 피해 피난민 신세가 됐으며, 가족들은 물론 가장 가까운 제자들이 오해와 배반을 반복하는 슬픔도 겪으셨다. 랍비로서는 쉴 새 없이 괴롭히는 종교 지도자들에게 시달리며 집도 없이 떠도는 어려움을 당하셨다. ‘고난(苦難)’과 ‘수난(受難)’은 같은 뜻이나 성경은 고난으로 표기한다. 그러나 관용적으로 ‘수난’이 보편화 됐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당하신 고난을 ‘수난’이라고 한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묵상하는 사순절이 다가왔다. 이 기간 동안 성도들은 회개와 기도, 절제와 금식, 깊은 묵상으로 수난의 길을 걸으신 주님을 기억하며 은혜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픽사베이

미국의 영성 신학자 마르바 던은 저서 ‘언어의 영성’에서 사도신경에 나오는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받으사’란 표현이 예수님의 고난을 축소하는 경향이 있다고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십자가 죽음이 지니는 구원의 능력은 다른 많은 요소에서도 찾아야 한다.…십자가 사건은 구속사역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지만 구속사역을 완성하기 위해 필요한 전부는 아니었다. 예수님의 성육신, 생애, 가르침, 고난, 죽음, 무덤에서의 시간, 부활 그리고 승천이라는 전체 구조의 한 조각일 뿐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하는 사순절이 다가왔다. 사순절은 재의 수요일부터 부활절 전까지 40일(주일 제외) 동안의 시간이다. 2018년 사순절은 2월 14일~3월 31일이다. 예수님의 고난을 기록한 복음서를 묵상하고 바흐의 ‘마태수난곡’을 들으며 십자가의 길을 홀로 마주해야 했던 예수님의 고독한 운명과 억울한 고난을 묵상해보자.

알비세 비바리니의 ‘십자가를 지신 예수’. 나무판 위의 유화. 이탈리아 산티 조반니 에 파올로 성당 소장.

경기도 의정부시 낮은자리믿음교회 조진호(41) 목사는 “마태수난곡은 공연이 아니라 예배를 위해 쓰여진 곡이다. 신앙과 삶이 벌거벗겨지고 낱낱이 읽혀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조 목사는 최근 ‘마태 수난곡과 40일간의 영적 순례’(평화교회연구소)를 출간했다. 그는 서울대 음대 성악과를 졸업하고 감리교신학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한 후 목사 안수를 받았다. 조 목사의 도움말로 마태수난곡을 통한 사순절 묵상을 소개한다. 마태수난곡 68곡 중 선별해 QR코드에 저장한 7곡은 스마트폰을 이용해 들으며 묵상할 수 있다.

이 향유는 나의 눈물입니다(마 26:1~13)

한 여인이 귀한 향유가 든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머리에 붓는다. 여인의 향유는 회개로 마음을 찢을 때 흘러내리는 진심 어린 눈물방울이다. 알토 아리아는 “나의 눈물방울이 모여 향기로운 향유가 되었습니다. 부디 나에게 허락하소서 나의 눈에서 넘쳐흐르는 눈물 한 방울 한 방울을 당신의 머리에 뿌리게 하소서”라고 노래한다.

조 목사는 “두 대의 플루트가 스타카토로 연주하는 부분이 등장하는데 바로 향유와 여인의 눈물방울이 똑똑 떨어지는 장면을 회화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폴 틸리히는 옥합을 깨뜨린 이 여인의 행동을 ‘거룩한 낭비’라고 표현했다. 교회는 이처럼 계산이 아닌 ‘거룩한 낭비’와 희생으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예수에 대해 사랑과 거룩한 희생 없이는 교회가 교회돼 갈 수 없다”라고 말했다.

주여 나는 아니지요?(마 26:14~37)

유월절 성만찬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고 말씀하신다. 제자들의 합창 소리를 들어보면 여기저기 불쑥불쑥 근심하는 목소리로 ‘주여 나는 아니지요?’라고 말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연약함을 예수께 고백하는 것이다. 코랄의 가사처럼 “주님을 팔았던 사람은 바로 나입니다”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열심당원 유다는 자신의 야망을 예수님을 통해 이루길 원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뒤틀어져 버렸다. 예수는 잡혀가는 순간부터 무력했고 도살장의 어린 양 같이 잠잠했다. 조 목사는 “유다가 뼈저리게 느꼈을 열패감과 좌절은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어떤 방법이라도 불사하려는 마음이 솟듯, 우리 안의 유다가 고개를 들 때가 있다. 우리도 유다처럼 예수를 팔아 버리는 죄를 짓지 않을지 스스로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음 깊이 예수님을 바라보자. 예수님은 우리에게 “그래도 너는 내 아이다. 그래도 너를 사랑 한 다”고 말씀하신다. 주님은 피투성이가 된 마음으로 또다시 외롭게 십자가의 길을 가고 계신다.

나의 예수 곁에 깨어(마 26:36~56)

테너 아리아 ‘나의 예수 곁에 깨어 있을 것입니다’는 마태수난곡의 명곡 중 하나이다. “예수의 영혼의 괴로움이 나의 죽음을 대신하고 예수의 슬픔은 나를 기쁨으로 채웁니다”는 가사가 비장하다. 기악반주 저음 부분이 스타카토로 이어지는데 이는 고민과 슬픔으로 요동치는 예수님의 마음과 고통을 바라보며 함께 떨고 있는 우리의 마음을 나타낸다. 플루트와 오보에의 화음은 긴장과 떨림이 응축된 겟세마네의 새벽공기를 전하는 듯하다.

조진호 목사

조 목사는 “예수님도 사랑하는 이들로부터 사랑 받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실 때 그토록 제자들에게 깨어서 기도해 달라고 하셨다. 부활 후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이나 물어보신 것도 제자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으셨던 것이다. 주님은 목숨을 다해 사랑하셨고, 사랑받기를 원하셨다”고 말했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마 26:51~75)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후 통회하는 알토 아리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슬픈 노래가 이렇게 시작된다. “하나님이여, 제 눈물을 보시고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당신 앞에서 아프게 통곡하는 내 이 심장과 이 눈을 보소서 하나님, 불쌍히 여기소서.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를 죽이려 하는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의 모습은 예수의 길을 훼손하는 종교인들과 예수의 길을 폄훼하는 세속인들로 가득한 현대의 세상과 닮았다. 베드로의 모습은 예수와 거리를 두고 기독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최대한 숨기며 사는 우리들의 모습과 닮았다.

사랑 때문에 (마 27:15~25)

마태수난곡이 한 편의 설교라면 그 설교의 핵심 주제는 사랑이다. 죽음의 언덕 골고다에 서 불어오는 황량하고 음습한 바람소리처럼 아리아 ‘사랑 때문에’가 들려온다. “사랑 때문에 나의 구주는 죽으려 하시네 단 하나의 죄도 알지 못하시는 그가 영원한 파멸과 심판의 형벌을, 내 영혼에서 떨쳐 버리시기 위해, 다만 사랑 때문에 나의 구주는 죽으려 하시네.”

‘바흐의 마태수난곡과 40일간의 영적순례’ 표지.

예수님이 목숨까지 내어 놓은 이유는 나 한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이고, 지금도 그 사랑이 계속되고 있다. 조 목사는 “서양음악 중에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고르라고 한다면 아리아 ‘사랑 때문에’를 소개할 것이다. 가장 아름다운 예수의 사랑이 여기에 모두 담겨있다”고 말했다.

예수가 팔을 벌리셨도다(마 27:26~50)

“예수가 팔을 펼치셨도다 우리를 끌어안기 위해서…그곳에서 살고 죽으며 안식하라 너희 집 떠난 어린 병아리들아 머무르라.” 알토의 아리아는 십자가의 예수를 우리를 끌어안아 주시기 위해서 팔을 벌리고 계신 모습으로 표현한다. 이 장면은 마태복음 23장 37절, 십자가에 달리시기 얼마 전에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다. 암탉이 새끼를 모으기 위해 날개를 피듯, 예수는 팔을 벌려 십자가에 달려 계신다. 몇 번이나 그들을 품어주며 가르치고 타일렀지만 그들은 그 품을 원치 않았다. 그럼에도 목숨을 내어놓으면서까지 주님은 그들을 품 안으로 불러들이고 계신다.

눈물에 젖어 무릎을 꿇고(마 27:51~66)

백부장과 예수를 지키던 자들의 고백은 마태수난곡의 가장 빛나는 부분이다. 베이스 아리아는 “우리들은 눈물에 적어 무릎을 꿇고 무덤에 누운 당신을 부릅니다. 편히 안식하시기를”이라고 노래한다. 모든 일을 마치시고 편안한 안식 속에 아기처럼 누워 계시는 예수님의 몸을 자신의 마음에 장사 지내 모시겠다는 고백으로 자장가처럼 들린다. 슬프고도 아름다운 자장가이다. 조 목사는 “마태수난곡 마지막 합창곡은 점점 작아지면서 조용하고 담담하게 마무리 된다. 침묵 속에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리스도의 수난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를 향한 그분의 ‘열정'을 느낄 수 있다.


고난에 하나더

루터 신학을 오선지에 담아 영혼을 불타오르게 한 바흐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1685~1750)의 ‘마태수난곡’은 마태복음 26장과 27장에 기록된 주님의 수난 이야기를 그대로 담고 있다. 1729년 4월 15일 독일 라이프치히의 토마스교회에서 초연됐다. 전체 68곡으로 십자가의 예언, 최후의 만찬, 겟세마네의 기도, 체포, 재판, 골고다 언덕, 죽음과 매장 등의 장면이 복음 낭독자의 낭창을 중심으로 극적인 합창이나 내성적인 아리아, 또한 깊은 맛의 코랄에 의해서 감동적으로 그려져 그리스도 수난의 의미를 날카롭게 묻는다.

마태수난곡 악보

마태수난곡은 기독교 신앙의 길잡이일뿐 아니라, 메마르고 화석화돼 가는 기독교 신앙에 영적인 묵상과 깊이를 부여한다. 그리고 기독교 신앙에 참된 고백과 믿음의 뿌리를 잘 보여주고 있다. 바흐는 마태수난곡 원본의 표지에 정성스러운 라틴어 필체로 ‘Passio Domini nostri J.C. secundum Evangelistam Matthæum’라고 적었다. ‘마태복음에 따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이다.

마태수난곡의 가사(대본)는 피칸더라는 필명을 쓰는 크리스티안 프리드리히 헨리치가 쓴 것으로, 루터판 독일어성경을 기본으로 중간 중간 대본을 추가했다. 루터는 성경을 통해서 어두운 세상을 바꿨고, 바흐는 루터의 신학을 오선지에 담아 사람들의 영혼을 불타오르게 했다.

이지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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