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기영 기자의 안녕? 나사로] 그것만이 내 세상

피아노 반주에 맞춘 성가대 찬양이 예배당에 울려 퍼진다. 뭔가 불안한 듯 초조한 표정을 한 성가대원의 시선이 피아노 반주자를 향한다. 반주자의 시선은 악보 대신 게임이 진행되고 있는 스마트폰에 꽂혀 있다. 성가대원의 불안감을 아는지 모르는지 반주자는 기똥차게 반주를 해 낸다.



“야 오진태! 스마트폰은 악마다. 반주할 땐 집중을 해야재. 알겠나.”
“네.”
“모르겠나.”
“네.”
“내는 대체 누구하고 얘기하고 있노(한숨). 진태야. 어델 니 혼자 가노. 니 엄마하고 같이 갈끼가.”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 속 엄마 인숙(윤여정)과 서번트증후군을 앓는 아들 진태(박정민)가 그려내는 일상은 애처롭다. 사회성이 떨어지고 의사소통도 어렵지만 피아노 연주만큼은 수준급인 진태는 엄마의 전부다.

어느 날, 인숙이 일하는 식당에서 헤어진 지 20여년 만에 첫째 아들 조하(이병헌)를 만나면서 엄마와 이부(異父) 형제의 동거가 시작된다. 한때 복싱 동양챔피언이던 조하는 만화방을 전전하며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신세다. 유년시절 아버지의 폭행과 어머니가 자신을 버리고 떠났다는 배신감과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조하, 장애를 가진 진태. 두 형제의 동거가 평온할 리 없다. 하지만 인숙이 불치병을 숨긴 채 두 아들 곁을 떠나게 되면서 형제는 서로의 방식으로 삶을 공유하며 절망 속 희망을 싹 틔운다.

영화는 형제의 아슬아슬한 동거 속에서 진태의 음악적 재능이 세상에 알려지는 과정을 펼쳐 보이며 관객들을 웃기고 울린다. 그리고 진태가 표현하는 짤막한 대사와 몸짓을 통해 가능할 것 같지 않던 성장을 드러낸다. 유독 고단한 하루를 보낼 때마다 인숙은 오래된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의 버튼을 누른다. 낡은 기계가 뱉어내는 노래는 1985년 발매된 들국화의 ‘그것만이 내 세상’이다.

평상시엔 “네”라는 대답만 반복하던 진태는 어느 순간 엄마의 스산한 마음을 읽어낸다. “엄마. 슬퍼요?”라고 묻는 진태의 등을 쓸어내리며 엄마는 말한다. “진태, 니가 효자다.” 조하의 도움으로 콩쿠르에 출전하고 갈라쇼 무대에 서게 됐을 땐 형이 좌우명처럼 얘기했던 말을 인터뷰에서 쏟아낸다. “불가능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하나의 의견일 뿐이다. 무하마드 알리.”

최근 만난 성악가 박모세(26)씨는 생후 3일 만에 대뇌의 70븒와 소뇌의 90븒를 잘라내야 했던 중복장애인이다. 그는 수많은 이들 앞에서 놀라운 가창력을 선보이며 감동을 전해왔다. 그의 어머니 조영애(54)씨는 “모세가 ‘툭’ 하고 고백을 풀어 놓을 때 이건 모세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이란 생각이 든다”면서 “하나님이 세상에 주는 축복이자 선물 같다”고 했다. 지적 능력이 3세에 머물러 있고, 듣는 대로 따라 하기만 해서 ‘앵무새’란 별명을 가진 박씨는 방송과 인터뷰 때마다 예상치 못한 답변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노래는 곧 저의 삶이고 제 삶에 없어선 안 될 에너지예요. 죽을 때까지 찬양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 싶어요.”

진태와 모세에겐 악보가 필요 없다. 악보를 볼 수 없어서가 아니다. 진태는 86개의 건반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연주로 대화한다. 모세는 자신이 들은 멜로디에 하나님이 주신 영감을 담아 노래와 고백으로 무대를 빛낸다. 그들의 삶은 갇혀 있는 듯했지만 많은 이들의 마음을 열어줬고 또 다른 세상을 보여줬다. ‘그것만이 내 세상’이 노래하는 것처럼.

‘세상을 너무나 모른다고 나보고 그대는 얘기하지. 조금은 걱정된 눈빛으로 조금은 미안한 웃음으로… 하지만 후횐 없지 울며 웃던 모든 꿈 그것만이 내 세상.’

최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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