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 칸타타] 세상에 사랑 전하는 ‘명품 목소리’ 정부용 권사

시각장애인 위해 30년째 녹음봉사하는 성우 출신 스토리

정부용 권사가 지난 6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 갈보리교회 녹음실에서 책을 펴며 녹음봉사 준비를 하고 있다. 성남=강민석 선임기자

한마디 말이 우리의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다. 그만큼 말이 중요하단 얘기다. 예수님도 성경말씀을 통해 이를 전하셨다.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눅 6:45)”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약 3:2)”

성우 출신의 정부용(66) 권사는 삶 속에서 말과 목소리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지난 7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 갈보리교회에서 그를 만났다. 정 권사는 갈보리교회 녹음봉사회 소속으로 시각장애인을 위한 녹음봉사를 30년째 해오고 있었다.

“목소리는 남을 위해 사용하라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에 내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듣기 좋은 말을 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말해야 할까. 정 권사는 목소리가 좋다고 말을 잘하는 게 아니라고 했다. 말(목소리)은 마음에서 나온다. 마음의 썰매를 타고 밖으로 나오는 게 말이다. 마음은 안 보이는 것 같지만 결국 목소리, 우리의 말을 통해 다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말할 때는 좋은 단어를 선택해야 합니다. 저는 ‘순적’이란 단어를 자주 사용합니다. ‘평안’은 힘든 상황이 깔려 있는 말이지만 순적은 모든 게 한가롭고 순조로운 상황을 담고 있죠. 우리 인생도 순적했으면 좋겠습니다.”

또 때와 장소, 연령에 맞게 목소리 톤도 바뀌어야 한다. 이때 중요한 게 표정이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온유·겸손·당당하게 말하되 입 꼬리를 살짝 올리라고 조언했다.


정 권사는 중·고교 시절부터 교내 아나운서로 활동할 정도로 타고난 목소리꾼이었다. 1973년 MBC CM 성우 공채 2기로 입사한 그는 영어방송 진행은 물론 1000여편의 TV광고를 녹음했다. 쌕쌕오렌지 광고 ‘주스는 마시고 알맹이는 터트리고’, 껌 광고 ‘쥬시 후레쉬, 후레쉬 민트~’도 그의 목소리다.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 자동안내 음성, 국내 공항과 각 항만청 ATIS 국영문 안내방송도 그가 녹음했다.

“실수도 많았죠. 시간에 쫓겨 녹음하다 보면 부담감 때문에 바로 발음이 엉키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되더라고요. 부담감을 떨쳐버리는 게 중요한데 그걸 몰랐던 거죠. 기도하면서 정말 혼자 연습 많이 했습니다.”

정 권사는 교회에서 시각장애인을 위해 녹음봉사를 하며 ‘마음의 소리’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그는 매주 화요일 갈보리교회 녹음봉사회에서 시각장애인들이 보내온 책들을 읽고 녹음한다. 성경이나 두툼한 신학 전공서적은 회원들과 돌아가면서 하고, 어린이 동화책이나 베스트셀러는 틈틈이 개인적으로 녹음을 진행한다. 요즘 정 권사가 읽으며 녹음하는 책은 ‘구약성경에 나타난 101가지 예수님의 형상’이다.

“전국에서 시각장애인분들이 다양한 종류의 책을 교회로 보내옵니다. 20여명의 회원들이 화요일마다 모여 예배드리고 각자 녹음봉사를 합니다. 시각장애인들은 아직까지 CD보다는 테이프를 선호하세요. 그만큼 그들의 형편이 어렵단 거겠죠.”

녹음봉사를 계기로 14년 전 시각장애인 목회자 부부세미나에 강사로 초청 받았다. 현장에서 그는 상당수 목회자들이 발음 때문에 힘들어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예수님의 ‘예’를 ‘애’로 발음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더라고요. ‘애수님’ ‘애배’, 뭔가 많이 어색하지 않나요? 그래서 목사님들과 같이 부른 노래가 있어요. ‘사랑해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 후렴구에 가면 ‘예예예~’를 계속 부르죠? 다들 그 부분은 정확히 따라 부르시더라고요. 그렇게 훈련을 시켜드렸지요. ‘예’로 말하기 전에 마음속으로 ‘이’를 먼저 말하면서 소리를 내면 정확하게 ‘예’로 발음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 그리스도를 ‘그리도’, 대대제사장을 ‘대대대’ 하며 발음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땐 그리스 ‘도’에 엑센트를 줘 ‘그리스또’라고 발음하면 된다. 대대제사장은 ‘제’에 힘을 주면서 올리듯 읽으면 된다. ‘내가 네게 이르노니’에서 ‘네’ 역시 발음하기 어렵다면 차라리 ‘니’로 말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2007년 뇌수막종으로 죽음의 문턱을 넘으며 정 권사는 하나님께 서원한 게 있다. 재능을 온전히 바치겠다는 것이다. 목회자 보이스클리닉 세미나도 꾸준히 열겠다고 다짐했다. 이를 위해 그는 투병 중에 ‘목회자 보이스클리닉’ 강의안도 완성했다.

말과 목소리의 중요성, 발음이 안 되는 이유, 말과 글의 차이, 설교와 설교문의 차이 등을 정리했다. 혹시나 하나님과의 약속을 잊을까, 그는 지금도 매일 네 차례 알람을 맞춰놓고 회개기도를 드린다.



“남에게 감동을 주는 목소리는 테너보단 베이스톤, 소프라노보단 알토 소리예요. 더 쉽게 말하면 할머니 할아버지가 사랑하는 손주에게 하는 말이죠. 바로 사랑이 담긴 목소리입니다.”

인터뷰 약속을 잡기 위해 정 권사와 통화했을 때가 떠올랐다. “기자님 순적히 오세요.” 차가 막혀 고생할까, 상대를 배려하며 건네던 말 한마디가 떠올라 마음이 따뜻해졌다. 예수님의 사랑을 마음에 담고 있으면 누구나 명품 목소리로 말할 수 있다.

성남=노희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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