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 리셉션에 불과 5분 동안 얼굴만 비추고 자리를 떠났다. “친구들은 보고 가시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말에 그나마 잠시 들러 정상들과 악수를 나눴다. ‘마지못해’ 리셉션에 나타난 그는 각 테이블을 돌며 악수를 하면서도 헤드테이블에 앉아 있던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는 손을 잡지 않았다.

리셉션에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 한정 중국 상무위원, 김영남 위원장 등 주요 외빈이 참석했다. 오후 6시쯤 시작될 예정이었으나 펜스 부통령과 아베 총리가 지각하는 바람에 두 사람을 기다리다가 10분쯤 뒤에 행사가 시작됐다. 두 사람은 오후 6시11분에 입장했다.

이후 문 대통령은 모두발언을 마치고 펜스 부통령, 아베 총리와 한·미·일 포토세션을 가졌고 오후 6시39분쯤 나란히 리셉션장에 입장했다. 펜스 부통령은 이 자리에서 각국 정상급 외빈들과 악수를 하고 오후 6시44분쯤 퇴장했다.

청와대 설명에 따르면 펜스 부통령은 오후 6시30분 미국 선수단과 저녁 약속이 돼 있는 상태였다. 이를 한국 측에 통보한 상태였다고 한다. 이 때문에 당초 김영남 상임위원장과 함께 헤드테이블에 배정돼 있던 펜스 부통령의 좌석은 준비하지 않았다.

청와대는 “(펜스 부통령은) 포토세션에 참석한 뒤 바로 빠질 예정이었지만 문 대통령이 ‘친구들은 보고 가시라’고 권해 리셉션장에 잠깐 들른 것”이라고 말했다. 펜스 부통령은 이 자리에서 각 정상들과 일일이 악수했으나 김 상임위원장과는 악수를 나누지 않았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김영남 상임위원장은 악수를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전했다.

윤 수석은 “(김 상임위원장과) 아베 총리는 악수와 얘기를 나눴다”며 “구테레쉬 유엔 사무총장은 김 상임위원장과 꽤 길게 얘기를 나눴는데, 대화 내용은 총장이 평양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음식이 맛있었다’고 하자 김 상임위원장이 ‘조선 음식이 건강식이라 유럽 사람들에게 잘 맞는다’고 한 것 등이었다”고 말했다.

펜스 부통령이 사실상 리셉션에 불참하면서 김영남 북한 상임위원장과 접촉을 의도적으로 피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그는 이날 하루 종일 ‘대북 압박’ 일정을 소화했다. 북한 고위급 대표단 방남 직전 탈북자들을 만나 “북한의 잔인한 독재는 감옥 국가(prison state)와 마찬가지”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고, 천안함기념관에도 갔다.

펜스 부통령은 이 과정에서 “전 세계가 오늘 밤 북한의 매력 공세(a charm offensive)를 보게 될 것”이라며 “그러나 우리는 진실이 전해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펜스 부통령은 북한의 군사적 위협과 인권 탄압 실상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장소를 찾아 대북 압박 수위를 한층 높였다.


펜스 부통령은 경기도 평택 해군2함대 사령부에서 탈북자 4명을 만나 “자유를 찾아 남한까지 온 여러분의 용기에 많은 영감을 받았다”며 “여러분은 자유를 갈구하는 수백만의 북한 주민을 대변한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에는 포로수용소가 있고, 주민 70% 이상이 식량지원 없이는 생존할 수 없다. 아이들은 영양실조로 고통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펜스 부통령은 이어 “북한의 폭정을 피해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듣고 싶다”며 면담에 참석한 탈북자들을 한 명씩 소개했다.

이 자리엔 북한에 억류됐다가 의식불명 상태로 풀려난 뒤 숨진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의 아버지 프레드 웜비어씨도 함께했다. 웜비어씨는 탈북자 지성호씨와 10초 넘게 포옹했다. 지씨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국정연설에 목발을 짚고 참석했던 인사다. 면담장엔 탈북자들이 가져온 ‘공개 총살’ ‘강냉이 30이삭 때문에 총에 맞아 죽었다’는 제목의 그림이 걸렸다.

펜스 부통령은 “이 사람들의 삶이 증언하듯 북한은 국민을 가두고 고문하고 굶주리게 정권”이라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말한 것처럼 북한의 잔인한 독재는 감옥 국가와 마찬가지”라고 거듭 강조했다.

펜스 부통령의 이날 행보는 대북 압박에 초점을 맞춘 2박3일 방한 일정의 하이라이트였다. 백악관의 대북 강경 기조를 행동으로 보여줬다는 평가다. 그는 방한 전 들른 일본에서 “북한의 체제 선전이 올림픽을 강탈(hijack)하는 것을 용인하지 않겠다”고 했었다.

펜스 부통령은 탈북잠 면담 후 천안함기념관을 찾았다. 이곳에는 2010년 3월 백령도 서남방 해상에서 북한의 어뢰 공격을 받아 두동강난 천안함과 당시 전사한 46용사들의 영정사진, 유품이 전시돼 있다. 그는 천안함 앞에 서서 “비핵화는 변화의 종착점이 아니라 시작점이 돼야 한다”며 “오직 그 다음에만 국제사회가 협상을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미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핵 포기를 요구한 것이다.

펜스 부통령은 이어 “문재인 대통령도 대북 추가 제재를 계속할 극도의 압박 캠페인을 강력 지지한다고 재확인했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과 펜스 부통령은 전날 청와대에서 만찬을 함께 했다. 외신들은 펜스 부통령이 공개적으로는 한·미 공조를 강조했지만 대북 유화 분위기에 우려를 표했다고 보도했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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