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KOREA)!”

91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이름이 불렸다. 스타디움 가득 민족의 선율 ‘아리랑’이 울려 퍼졌다. 공동 기수인 남측의 원윤종(33·봅슬레이 2인승)과 북측의 황충금(23·남북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은 한껏 상기된 얼굴로 함께 한반도기를 흔들며 앞장섰다. 한반도가 그려진 단복을 입은 남북 선수 190여 명이 환하게 웃으며 함께 입장하자 3만 5000여 관중은 뜨거운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2007 창춘 동계아시안게임 이후 11년 만이자 10번째 남북 공동입장이었다. 평창에서 펼쳐진 평화의 행진은 ‘한반도의 봄’을 예고했다.

지구촌 최대 겨울 축제인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이 8일 강원도 평창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화려한 막을 올렸다. 개회식엔 문재인 대통령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토마스 바흐 위원장, 16개국의 정상급 외빈 등이 참석해 평창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기원했다.

평창의 성화는 평화를 의미한다. 북한의 참가로 평창올림픽은 진정한 ‘평화의 올림픽’으로 승화됐다. 북한은 서울올림픽에 불참했지만 평창올림픽엔 46명의 선수단을 파견했다. 응원단, 예술단은 분단의 장벽을 넘어 육지와 바닷길을 거쳐 남쪽으로 내려왔다. 또 이날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방남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등 북한 고위급 대표단이 개회식에 참석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기대감이 한층 높아졌다.

선수 입장과 축사가 끝나자 축하 공연이 펼쳐졌다. 행동하는 평화(Peace in Motion)라는 주제로 열린 개회식은 평화와 소통을 강조한 한 편의 ‘겨울동화’였다. 한국무용과 전통 음악 예술가들을 비롯해 K팝 스타, 현대무용가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인들과 자원봉사자 3000여 명은 환상적인 문화 이벤트를 만들어 냈다. 특히 원형 무대에 설치된 두 대의 리프트 밑에서 수백 명의 출연진이 한꺼번에 등장해 공연을 펼친 장면은 압권이었다.

공연이 마무리된 뒤 사람들의 눈길은 성화대로 향했다. 관심을 모았던 성화 최종 주자는 김연아였다. 전이경, 박인비, 안정환이 차례로 넘겨받으며 스타디움을 한 바퀴 돈 성화는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의 박종아(남)·정수현(북) 선수의 손에 들렸다. 두 사람은 나란히 성화를 들고 조명이 밝혀진 계단을 따라 성화대까지 올라갔다. 그곳에 스케이트를 신은 김연아가 있었다.


김연아는 성화대 밑에 준비된 빙판에서 우아한 피겨스케이팅 동작을 선보이며 관중들에게 인사했다. 이어 남북 선수들에게 넘겨받은 성화를 들고 달항아리 모티브로 만든 성화대로 향했다. 성화봉을 갖다 대자 불이 붙은 리프트가 상승하며 항아리 모양 성화대 꼭대기로 불꽃을 전달했다. 1988 서울 하계올림픽 이후 30년 만에 다시 성화가 타오르자 축제 분위기는 절정에 달했다.

평창올림픽엔 총 92개국 2920명의 선수가 참여해 102개의 금메달을 놓고 다툰다. 참가 규모와 금메달 수에서 2014 소치 동계올림픽(88개국 2858명븡금메달 98개)을 넘어 사상 최대 규모다. 한국은 평창올림픽에 선수 144명, 경기임원(코치 포함) 40명, 본부임원 35명 등 219명의 선수단을 파견했다. 15개 전 종목에 출전하는 한국은 금메달 8개(은메달 4, 동메달 8개)를 획득, 역대 최고 성적인 종합 4위를 목표로 잡았다.

평창올림픽스타디움은 개회식을 앞두고 낮부터 붐볐다. 관람객은 오후 늦게부터 입장했지만 대회 운영 인력들이 성공적인 개회식을 위해 짐을 든 채 바삐 몸을 움직였다. 안전한 개회식 행사를 진행하고자 다수의 경찰 병력과 보안요원들도 팀 단위로 나뉘어 배치됐다.


스타디움 곳곳에는 관람객과 대회 관계자들을 위한 먹거리가 마련됐다. 각종 구이와 튀김, 한식, 양식 등으로 종류가 나뉘었다. 호떡, 커피, 어묵 등 추위를 이겨낼 수 있는 따뜻한 음식들이 김을 내뿜으며 데워지고 있었다. 야외에서 일하던 개회식 운영 인력들은 짬짬이 시간을 내어 어묵으로 추위와 허기를 달랬다.

스타디움 외곽을 따라 올림픽 오륜기를 비롯한 각국 국기가 펄럭였다. 하지만 우려한 것보다 날씨는 춥지 않았다. 행사 시작 5시간 전에 이미 스타디움 내 전 좌석에 관람객의 추위를 막아줄 방한용품 6종 세트도 비치돼 있었다.

개회식 준비를 담당한 관계자들도 들뜬 것은 마찬가지였다. 스타디움 관중 안내를 맡은 자원봉사자 정신비(23)씨는 “개회식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겨 매우 기쁘다”며 “본격적으로 큰 행사가 시작되는데 무사히 끝나길 바란다”고 전했다.

그리스에서 채화돼 지난해 11월 1일 한국 땅을 밟은 성화는 평창 곳곳을 돈 뒤 최종 목적지인 올림픽스타디움에 도착했다. 평창지역 성화 봉송에는 이희범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장과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 미로슬라프 라이착 유엔총회 의장 등이 참가해 눈길을 끌었다.

성화는 평창올림픽 첫 번째 성화 봉송 주자인 피겨스케이팅 유망주 유영을 시작으로 7500명의 주자가 전국 17개 시·도를 밝혔고, 이날 개회식 점화로 2018㎞의 대장정이 마무리됐다.

북한 응원단은 사전 공연 시작 전부터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등 노래를 부르며 목을 풀었다. 빨강색 옷을 맞춰 입은 북한 응원단은 3층 관중석 달항아리 성화대 근처에 양쪽으로 나뉘어 자리 잡았다.

개그맨 김영철씨의 사회로 7시 15분쯤 사전공연이 시작됐다. 곧이어 15명의 북한 태권도 시범단이 기합 소리를 지르며 절도 있게 대형을 갖춰 등장했다. 품새로 시범공연 시작한 시범단은 힘차게 각목과 기왓장 등을 격파했다. 발차기로 송판을 산산조각 내기도 했다.

그러자 북한 응원단은 인공기를 흔들며 “힘내라 힘내라” “장하다 장하다 우리 선수 장하다” 등을 외쳤다. 이러 남한 태권도 시범단과 북한 시범단이 합동 공연을 선보이자 북측 응원단은 “조국통일” “우리는 하나다”를 외치며 한반도기를 힘차게 흔들었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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