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은 10일 청와대에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을 만났다. 북한의 방북 요청과 남북 정상회담 제의에 대해 문 대통령은 원론적 수용 의사를 내비치며 “여건을 만들어 성사시켜 나가자”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 ‘여건’에 대해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서라도 북미관계와 조기대화가 필요하다”라고 설명했다. 표면적으론 남북 정상회담에 앞선 북·미간 대화 물꼬트기를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마주 오는 열차처럼 충돌을 앞두고 있는 북·미 간 긴장을 누그러뜨리기 위해선 양자의 대화가 필요한 게 맞다. 북한이 1953년 정전협정 이후 일관되게 통미봉남(通美封南) 을 외치며 남한을 빼고 미국과 직접 협상하겠다고 주장해 온 점에 비추어 보면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통남봉미(通南封美)로 바뀌어 이제 우리 정부가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대화를 주선하고 있는 모양새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미국이 이를 받을 가능성이 낮다. 청와대 관계자는 “(2007년 노무현 정부 이후) 10년 만에 이뤄지는 정상회담은 남북 관계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기에 한반도를 둘러싼 환경 분위기 여건이 같이 무르익어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해설했다.

미국은 북한의 핵동결 등 전향적 조치가 없는 이상 대화를 해봐야 무익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무력 해결책이 북한을 압박할 실효적 수단이란 점도 부쩍 부각시키고 있다. 부친이 한국전 참전 용사여서 지한파로 꼽히는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평창 올림픽 개회식 기념 리셉션에서 5분 만에 자리를 뜬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북·미 대화의 물꼬가 북한의 핵관련 전향적 조처를 전제로 한다면, 문 대통령은 이를 방북 조건의 여건으로 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보다 좀 더 합의를 이루기 쉬운 낮은 단계 해법을 모색할 가능성이 있다. 대표적인 게 올해 초에 제기된 ‘쌍중단’이다. 북한은 핵 미사일 관련 도발을 중단하고, 한국과 미국은 연합 군사훈련을 중단한다는 게 쌍중단 제안의 골자다. 이는 궁극적으로 북·미 평화협정 체결과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는 북한의 대남 전략과도 큰 틀에서 일치한다.

문 대통령은 올해 초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남북 정상회담을 하려면 여건이 조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일관되게 어떤 조건을 북한에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또 당시 “(정상회담의) 성과도 담보돼야 한다”며 “여건이 갖춰지고 전망이 선다면 언제든 정상회담에 응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반도 파국을 막기 위해선 김여정의 ‘스마일 디플로머시’를 넘어 북한의 실질적이고도 전향적인 조처가 수반돼야 함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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