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0년 전 2008년 2월10일은 어떤 날이였을까. 대한민국 국보 1호 숭례문이 불에 타 무너진 비극적인 날이었다.

숭례문은 2008년 2월 한 시민의 단순 범죄로 무너졌다. 숭례문이 불에 타 무너지는 안타까운 상황을 생생히 지켜 본 국민들의 마음도 함께 탄 날이었다. 문화재청은 이 날을 기억하기 위해 2011년부터 매해 2월10일을 ‘문화재 방재의 날’로 지정해 서울소방재난본부와 중부소방서 주관으로 문화재 재난대응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당시 숭례문을 무너트린 방화범은 채종기(80)씨였다. 그의 숭례문 방화 이유는 그가 소유하고 있던 경기도 고양시 땅이 발단이 됐다. 그 땅은 도로 건설을 위한 부지로 확정됐다. 그는 토지 수용에 따른 보상금이 마음에 들지 않아 사회적으로 이목을 끌어보려 이같은 큰 범죄를 저질렀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4부(당시 부장판사 이경춘)는 사건 발생 2개월 뒤 2008년 4월25일 채씨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채씨는 재판 내내 반성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국민들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채씨는 재판 과정에서 “토지 수용 보상금이 너무 적다. 국가에 의해 심히 부당한 처분을 받았다”는 주장만 되풀이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재판부는 “국가의 소송제도 등 각종 적법절차에 의한 처리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폭력적 불법행동으로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려 한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반사회적 범죄행위”라며 그를 강하게 질타했다. 이어 “숭례문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상징적 문화재로 해외에까지 널리 알려져 있고 국보 1호로 지정돼 우리 국민은 높은 민족적 자긍심을 간직해왔다”며 “국민들은 상상할 수 없는 사건으로 인한 충격과 수치심으로 고통을 감내하기 어려운 큰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고 10년 징역이라는 중형 선고 이유를 밝혔다. 그가 재판에 불복해 2008년 7월31일 열린 항소심에서도 1심과 같은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이로써 채씨는 올해 10년째 복역을 마쳤다. 숭례문은 5년이 넘는 복원공사로 2013년 5월 대중에게 다시 공개됐다. 숭례문이 다시 국민들의 품으로 돌아왔지만 일각에서는 숭례문 방화 사건 같은 비극적인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자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안태훈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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