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30일 휴일 아침 최순실씨가 극비 귀국했다. 검찰도 최씨가 비행기를 타고서야 통보를 받았다. 취재진을 피해 다니던 ‘비선실세’의 갑작스런 등장은 수면 위로 떠오르던 국정농단 의혹을 순식간에 증폭시켰다.

최씨는 귀국 하루 만에 검찰에 출석했다. 400여명 취재진과 시민, 검찰 관계자들이 한데 엉켜 최씨를 맞았다. 그는 당황했다. 인파에 떠밀려 서울중앙지검 청사로 들어선 최씨는 “죽을죄를 지었다”며 “용서해 달라”고 울먹였다. 쓰고 있던 벙거지 모자와 안경, 프라다 신발 한 짝은 벗겨진 상태였다.

한동안 저자세를 유지하던 최씨가 돌변한 건 구속기소돼 재판이 시작되면서였다. 그해 12월 19일 첫 공판준비기일에서 최씨는 “독일에서 왔을 땐 어떤 벌이든 달게 받겠다는 생각이었는데, 이제는 정확한 걸 밝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듬해 1월 5일 첫 공판에서도 ‘혐의를 전부 부인하느냐’는 재판장 질문에 “네”라며 “억울한 부분이 많다”고 했다.

검찰에 대한 공격도 서슴지 않았다. ‘건강상 이유’ ‘강압수사’ 등을 들며 박영수 특별검사의 소환을 6차례나 거부했던 최씨는 2017년 1월 25일 강제구인 방식으로 특검 사무실에 모습을 나타냈을 때 “자유민주주의 특검이 아니다. 자백을 강요하고 있다”고 소리쳤다. 이를 본 미화원이 최씨를 향해 “염병하네”라고 일갈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최씨는 검찰이 유사한 질문을 계속 하자 “그만 좀 물어라. 똑같은 질문을 똑같이 물어보면 내가 정신병이 들겠다”며 짜증을 냈고, “검찰이 너무 많은 의혹을 제기해 내가 괴물이 됐다” “자꾸 엮으려 하면 안 된다. 증거가 있으면 얘기해봐라”면서 검찰을 압박하는 모습도 보였다. 검찰을 향해 “개혁 대상”이라고 하는가 하면 재판부를 향해선 “인민재판과 다를 게 뭐냐”며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다”라고 소리를 높였다.

최씨는 150여 차례 재판을 받으면서 중간 중간 돌발행동을 했다. 지난해 11월 24일 재판 도중엔 갑자기 울음을 터트리며 “너무 분해 못살겠다. 사형으로 죽여 달라. 더 살고 싶지도 않다”고 난동을 피웠다. 피고인석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치기도 했다. 딸 정유라씨의 법정 진술이 본인 재판의 검찰 측 증거로 제출됐을 때도 개정 10여분 만에 휴정을 요청, 손에 얼굴을 묻고 오열했다.

검찰이 징역 25년과 벌금 1185억원, 추징금 77억9735만원을 구형한 결심공판 때는 휴정을 청한 뒤 대기실에 들어가 “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흥분한 모습을 보였다. 30분에 걸친 최후진술에서도 자신을 수사했던 검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윤석열 검사(서울중앙지검장)님 그러시면 안 된다” “사회주의보다 더한 국가에서 살고 있단 생각이 든다”고 분노했다. 그는 휠체어를 타고 구치소로 돌아갔다.

귀국한 지 472일 만인 13일 최씨에게 마침내 ‘국정농단’ 1심 재판 선고가 내려졌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률(뇌물) 위반 등의 혐의를 놓고 450여일간 150여 차례 공판을 진행한 끝에 내린 결론은 징역 20년에 벌금 160억원이었다. 검찰 구형(징역 25년)에 매우 근접한 중형이 선고됐다.

황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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