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여자 스키점프 올림픽 대표 다카나시 사라(왼쪽)와 미국 대표 세라 헨드릭슨. 사진=일본 아사히신문 웹사이트 캡처

스키점프는 첫 동계올림픽인 1924년 샤모니(프랑스) 올림픽부터 정식 종목이었다. 오랜 역사를 지녔지만 남자 부문에 한해서였다. 스키점프 여자 부문은 그로부터 90년이 지난 2014년 소치 올림픽 때 처음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소치에서 열린 첫 여자 스키점프 올림픽 경기에 앞서 ‘세라 대 사라’의 대결이 주목받았다. 미국의 세라 헨드릭슨과 일본의 다카나시 사라. 이름이 비슷한 두 사람이 맞붙었다. 헨드릭슨은 2011-2012 시즌 국제스키연맹(FIS) 스키점프 월드컵에서 9차례나 정상에 올라 종합우승을 차지한 여자 스키점프의 강자였다. 다카나시는 만 16세이던 2012-2013 시즌 월드컵에서 8승을 거두고 사상 최연소 종합우승을 이뤘다.

하지만 두 사람은 소치올림픽의 주인공이 되지 못했다. 헨드릭슨은 부상 여파로 21위를, 다카나시는 아쉽게 4위를 하며 메달을 놓쳤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두 사람은 두 번째 올림픽을 위해 평창으로 왔다.

사진=세라 헨드릭슨 인스카그램 캡처

◇ 또 한 명의 사라

다카나시가 평창올림픽 스키점프 여자 노멀힐에서 동메달을 딴 다음날인 13일, 일본 아사히신문은 “또 한 명의 ‘사라’, 점프여왕의 기쁨과 외로움”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전했다. 또 한 명의 ‘사라’(일본은 ‘세라’를 사라로 표기)는 자국 선수인 다카나시의 경쟁자였던 헨드릭슨이다.

헨드릭슨은 두 번째 점프를 마치고 그의 ‘날개’인 스키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12일 강원도 평창의 알펜시아 스키점프 센터에서 열린 평창올림픽 스키점프 여자 노멀힐 결선 뒤였다. 메달권과 한참 거리가 있는 19위였지만 그는 들떠 있었다. 헨드릭슨은 “점프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수차례의 고질적인 무릎 부상과 수술을 이겨내고 얻은 평창행 티켓이었다.

두 ‘사라’ 중 먼저 이름을 알린 건 헨드릭슨이다. 2011~2012 시즌 여자 스키점프 월드컵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이듬해 2013년 FIS 세계 노르딕 스키 선수권대회 여자 스키점프에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여자 스키점프는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본고장 유럽에서조차 남자 스키점프와는 달리 TV중계도, 경기장 관객도 적었다. 선배들은 여자 스키점프를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2010년 밴쿠버 올림픽까지도 정식종목이 되지 못했다. 이를 지켜본 헨드릭슨은 “꼭 이 종목을 메이저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세라 헨드릭슨 인스타그램 캡처

◇ “내 경기에서 끊임없는 미소를 알아챘기를

소치올림픽이 돼서야 여자 스키점프는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자연히 당대 여자 스키점프를 이끈 두 ‘사라’의 대결에 이목이 쏠렸다. 하지만 헨드릭슨은 소치 올림픽이 열리기 반년 전 무릎 부상을 당했다. 열심히 재활하고 대회에 출전하는 게 고작이었다. 말 그대로 ‘첫 여자 올림픽 스키점수 선수’가 되는 데 만족해야 했다.

부상은 올림픽 이후에도 계속됐다. 스키점프 선수에게는 한 차례도 치명적인 무릎 수술을 4차례나 받았다. 이전의 월등한 점프는 볼 수 없었지만 헨드릭슨은 스키점프를 포기하지 않았다. 혹독한 재활훈련으로 재기한 그는 지난해 12월 31일(현지시간) 열린 미국 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평창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헨드릭슨은 평창올림픽에서 19위에 올랐다. 소치올림픽 때보다 2계단 오른 순위다. 좋은 성적은 아니었지만 수차례의 수술과 그간 상승한 경기수준 등을 감안하면 평가 절하할 만한 것도 아니었다. 더군다나 그는 경기 전날 목감기에 걸려서 “추운 날씨에 아픈 몸와 목 통증으로 고생했다”고 말했다.

그는 13일 소셜미디어에 “지난밤 내 경기에서 끊임없는 미소를 알아챘기를 희망한다”며 “꿈꿔왔던 결과는 아니지만 나를 이곳(평창올림픽)으로 데려다 준 여행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비행(fly)과 나를 올림픽으로 데려다준 내 열정을 사랑한다”며 “응원해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사진=다카나시 사라 웹사이트

◇ 닿지 못한 올림픽 금메달

헨드릭슨이 부상으로 신음할 때 다카나시는 FIS 월드컵 통산 53승으로 여자부 최다승 기록을 보유하는 등 승승장구해왔다. 소치올림픽에서 4위에 머물렀지만 절치부심하며 평창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노렸다.

하지만 이번에도 ‘1인자’ 자리에는 오르지 못했다. 금메달은 노르웨이의 마렌 룬드비에게 돌아갔다. 소치에서 8위였던 룬드비는 이후 기량을 향상시키며 4년 만에 정상에 올랐다. 다카나시는 지난해 2월 53번째 월드컵을 우승한 뒤로 한 번도 정상에 오르지 못하며 슬럼프를 겪었다. 그러는 사이 룬드비가 다카나시를 넘어섰다.

다카나시는 “4년 전 소치에서 끔찍한 경험을 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열심히 훈련했다”고 말했다. 이어 “동메달도 좋지만 목표였던 금메달을 따지 못했다. 금메달을 따기에는 내 역량이 부족했다. 앞으로 더 열심히 훈련하겠다”며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기약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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