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들 “조선의 설날은 서양의 크리스마스”

구한말 파란 눈에 비친 설 풍경

100여년 전 파란 눈의 선교사들에게 한국의 설날 풍경은 어떻게 비쳤을까. 한국 땅을 밟은 초창기 선교사들이 편지와 일기 등으로 남긴 문헌에는 서양에선 볼 수 없는 독특한 새해맞이 풍습이 낯설면서도 흥미롭게 묘사돼 있다. 미신적 요소로 느낀 선교사도 있는가 하면 설 명절 기간을 신앙 사경회로 활용했던 선교사들의 활동도 이채롭다.

“설날 아침 일찍 가족 수대로 대나무 국자를 사서 쌀독에 넣는 풍습이 있는데, 이건 가정에 재물이 들어오라는 의미다. (음력) 1월 1일부터 사흘 동안 여성들은 거리에 나가지도 못한 채 집 안에 있는데, 이는 불운을 막기 위한 풍습으로 새해 예절이다….”

1900년대 초반 한국에서 활동한 선교사들이 만든 잡지 ‘코리아 미션 필드’ 1909년 5월 15일자에 ‘한국의 새해 미신’이라는 제목으로 M M 알버슨 선교사가 쓴 글이다. 그는 말미에 “한국인들은 영(靈)의 세계에 살고 있다. 미신이 많다”고도 했다.

인요한 신촌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소장이 지난 12일 조선의 아이들이 한 선교사 자녀와 함께 식사하는 모습을 촬영한 사진을 들고 어린시절 설날의 추억을 설명하고 있다.


설 명절을 앞두고 선교사가 마주한 농촌의 이색 풍경도 묘사돼 있다. 1892년 1월 13일 사무엘 마펫(한국명 마포삼열) 선교사가 한국 북부지역을 중심으로 전도 여행을 떠났을 때였다. 당시 그가 남긴 편지에는 사람 모양의 볏짚인형인 ‘제웅’이 묘사돼 있다.

“어떤 사람의 이름과 전년도에 지은 모든 죄를 적은 종이, 그리고 약간의 돈을 제웅에 담아 문밖으로 던진다. 누군가 제웅에서 돈을 빼 가면 모든 불운도 사라진다고 믿었다.” 한국의 최초 신학교인 평양장로회신학교를 설립한 마펫 선교사의 눈엔 이 같은 미신적 풍습이 오히려 선교 동력으로 작용했을지 모른다.

설날의 잔치 분위기를 서양의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빗댄 기록도 흥미롭다. 안교성 장로회신학대 선교학 교수에 따르면 캐나다 출신 제임스 게일 선교사는 “설날은 아이들이 설렘 속에 기다리며 때때옷을 입고 흥겹게 민속놀이를 하는 축제”라며 “세뱃돈같이 황홀한 선물이 기다리는 날인데 조선의 설날은 서양의 크리스마스와 같다”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한국 선교사 가정 3대손으로 전남 순천에서 자란 인요한 신촌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소장의 설날 기억 또한 인상적이다. 설 명절을 한국인들과 더불어 즐긴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인 소장은 지난 12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설날이 되면 마을의 온 집들을 다니면서 어르신들께 세배드렸다”면서 “이날 세뱃돈을 받으면 눈깔사탕과 폭음탄을 사서 친구들에게 다 나눠주고 함께 놀았다”고 추억을 더듬었다. 인 소장은 “친구들과 연을 만들어 날린 기억도 나는데 설날은 생일보다 훨씬 좋았던 것 같다”면서 “선교사 가정이었던 우리 집도 설날에는 떡국을 끓였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전했다.

선교학자들은 당시 선교사들이 한국인들과 함께 설 명절 분위기를 공유했을 것으로 봤다. 몽골 선교사 출신의 안 교수는 “몽골의 설날인 ‘차강사르’나 ‘나담 축제’가 되면 선교사들도 몽골 사람들과 더불어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면서 “과거 한국에서 활동한 외국인 선교사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설 명절 전후로 신앙 사경회를 개최했던 기록도 새롭게 다가온다. 농한기와 연휴가 겹치는 기간을 맞아 성경 말씀을 깊이 이해하며 신앙의 성숙을 사모하는 기간으로 삼은 것이다. 한국교회 첫 부흥의 불씨를 댕긴 평양대부흥운동의 효시는 1907년 1월 6일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시작된 말씀사경회였다. 옥성득 미국 UCLA(캘리포니아 주립대학 로스앤젤레스 캠퍼스) 한국기독교학 부교수는 “선교사들은 설 연휴를 전후해 어김없이 사경회를 열었다”면서 “농한기이면서도 연휴가 길어 사경회를 열기엔 최적기였다”고 했다.

글·사진=장창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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