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졌지만 잘 싸웠다. 남북 화합을 이유로 선수에게 강요됐던 희생이 한때 논란으로 불거졌고, 분단의 세월만큼 달라진 서로를 단단하게 묶을 수 없다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묵묵하고 치열하게 올림픽을 치르고 있다. 사상 첫 올림픽 득점까지 성공했다.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얘기다.

단일팀은 14일 강원도 강릉 관동 하키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조별리그 B조 최종 3차전에서 일본에 1대 4로 졌다. 앞서 스위스, 스웨덴에 모두 0대 8로 대패했던 1·2차전과 다르게 실점을 줄였고 득점까지 성공했다. 이 한 골은 한국이 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에서 사상 처음으로 수확한 득점이다. 앞으로 남북 올림픽 단일팀이 다른 종목에서 결성되도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역사의 첫 번째 기록이기도 하다.

득점의 주인공은 랜디 희수 그리핀. 한국인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지난해 3월 귀화한 한국 국가대표 출신이다. 미국 명문 하버드대를 졸업한 재원이기도 하다. 그리핀은 0-2로 뒤진 2피리어드 9분31초 때 골을 터뜨렸다. 박윤정의 어시스트를 받아친 그리핀의 샷은 일본 골리 아카네 고니시의 다리 사이를 통과해 골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동안 완전히 가로막힌 것처럼 보였던 적진의 골문을 열고 조별리그 3경기를 완주했다. 단일팀은 오는 18일 순위 결정전을 갖는다. 이 경기 결과에 따라 20일 5·6위전이나 7·8위전에 출전한다. 추가골과 사상 첫 승의 기회는 아직 남았다.

단일팀은 올림픽에서 사상 처음으로 결성됐다. 지난달 21일 결성이 확정된 뒤 불과 3주의 짧은 시간 동안 서로를 이해하고 다독였다. 지원도, 응원도 없었던 시절의 설움은 장외에 털어버렸다. 갑작스러운 팀 변경으로 사기가 떨어질 줄 알았지만 기우였다. 분단의 세월만큼 다를 줄 알았던 ‘둘’은 같은 얼굴과 같은 말을 가진 ‘하나’였다.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팀이 이동할 때마다 거리에서 북한 선수들을 자극할 이념문구가 보였다. 올림픽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해 오랜 노력을 보상받지 못할 선수가 있다는 논란도 들려왔다. 이 모든 잡음을 세라 머리(캐나다) 단일팀 총감독은 온몸으로 막아냈다. 머리 감독은 원래 한국 대표팀 감독이다. 박철호 북한 대표팀 감독은 머리 감독에게 협조하며 단일팀을 든든하게 지원했다.

세계의 벽은 높았다. 스웨덴(5위), 스위스(6위), 일본(9위)은 모두 여자 아이스하키 세계 ‘톱10’에 있는 강호들이다. 한국은 22위, 북한은 25위다. 이 둘을 조합한 단일팀은 올림픽 출전국 중 단연 꼴찌로 평가됐다. 한때 ‘1승’이었던 목표는 조별리그 후반으로 갈수록 ‘1골’로 바뀌었다. 이마저 불가능할 것처럼 보였다. 아시아의 강호 일본을 상대로 투혼을 발휘해 역사적인 첫 골에 성공했다.

졌지만 잘 싸웠다. 언젠가부터 패배한 선수를 성의 없이 위로하는 빈말을 조롱하는 표현이 됐다. 이 말로 한반도에 절실한 평화를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한 선수들을 위로할 수도, 무겁게 진 마음의 빚을 덜어낼 수도 없다. 그래도, 졌지만 잘 싸웠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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