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63) 롯데그룹 회장은 13일 실형이 선고되자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법정 경위들에 이끌려 구속 피고인 대기실로 들어갔다. 서울구치소로 호송된 뒤에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이재용(50) 삼성전자 부회장을 집행유예로 석방하는 서울고법의 판결이 지난 5일 나온 터라 롯데 측은 법정구속을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두 사람은 나란히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62)씨에 대한 뇌물공여 혐의로 기소됐다. 공통적으로 K스포츠재단 등 제3자에 돈을 지원한 행위가 문제가 됐고 박 전 대통령과의 독대에서 청탁이 오간 것으로 범죄사실이 구성됐다. 어떤 차이가 두 사람의 처지를 갈랐을까.


기본적으로 ‘부정한 청탁’의 존재 여부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이 달랐다. 공무원이 직무와 관련해 금품을 받으면 인정되는 단순뇌물죄와 달리 제3자 뇌물죄는 부정한 청탁이 입증돼야 하므로 성립 요건이 까다롭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는 롯데가 2016년 5월 K스포츠재단에 70억원을 추가 지원한 시점의 전후 사정에 주목했다. 신 회장은 2015년 8월 호텔롯데 상장을 발표하는데, 그해 11월 월드타워 면세점이 사업자 선정에서 탈락해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롯데 측이 청와대, 국회, 관세청 관계자 등을 전 방위로 접촉해 애로사항을 전달하던 때인 2016년 3월 14일 박 전 대통령과 신 회장의 안가(安家) 독대가 이뤄졌다. 기획재정부는 같은 달 면세점 승인 요건을 완화하는 방안을, 관세청은 4월 서울 시내 면세점 4곳 신규 설치를 발표했다.

재판부는 “70억원 지원 행위는 면세점 특허와 관련된 대통령의 직무집행에 대한 대가라는 공통된 인식 또는 양해 하에 이뤄졌다고 보기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명시적 청탁은 없었더라도 묵시적 청탁은 인정된다는 뜻이다. 재판부는 70억원 전부를 유죄로 보고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했다.

반면 이 부회장 항소심을 맡았던 서울고법 형사13부(부장판사 정형식)는 경영권 승계 관련 부정한 청탁을 인정하지 않았다. 특검팀은 이 부회장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청탁의 대가로 최씨 모녀 등을 지원했다는 내용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가 기각되자 경영승계 작업 전반으로 청탁 대상을 확대해 지난해 2월 구속시켰다. 정경유착의 구도로 사건을 본 것이다.

이 논리는 1심 재판 때 받아들여졌지만 항소심은 승계작업의 존재를 배척하고 명시적·묵시적 청탁도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제3자 뇌물 혐의에 속하는 미르·K스포츠재단(204억원),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16억2800만원) 지원 등은 모두 무죄 판단이 나왔다. 최씨에게 직접 이익이 귀속된 용역대금 36억3484만원만 유죄로 인정됐다.

신 회장과 이 부회장 모두에게 징역 2년6개월이 책정됐지만, 이 부회장에게 집행유예 4년이 붙은 건 그가 지난해 2월부터 11개월가량 수감생활을 해왔다는 점도 감안된 것으로 보인다. 형법상 징역 3년 이하의 경우 집행유예 선고가 가능한데 이 결정은 재판부 재량에 달렸다.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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