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처음 눈썰매장에 간 인영이는 평창 올림픽 선수마냥 동계 스포츠를 섭렵했다.


불과 몇 년 전만해도 휴가를 쓰겠다고 하면 선배들이 “무슨 일 있느냐”고 물어보곤 했다. 나부터 팀 후배에게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물론 기자는 자기가 맡은 나와바리(담당)가 365일 돌아가기 때문에 이유없이 ‘그냥’ 휴가를 가기가 쉽지 않은 구조다. 하지만 기자도 월급쟁이다. 자신이 열심히 일한 대가로 주어진 연차휴가는 거리낌 없이 써야 한다. 무슨 특별한 일이 있어야 쉬는 것은 휴가가 아니라 일의 연속이다. 휴가는 그냥, 이유 없이 쉬는 것이다.
겨울의 끝자락. 하루종일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듣는 천국의 하루였다.

이런 개똥철학으로 설 연휴에 쉰 것도 모자라 연휴에 붙여 며칠 더 휴가를 냈다. 이유는 없었다. 20일 넘는 연차를 차근차근 다 소진하기 위한 첫발걸음이었다. 앞서 팀 후배들도 미리미리 3~4일 먼저 휴가를 보낸 뒤라 마음의 부담도 없었다.

모두가 출근한 오전 우리 가족은 마지막 겨울을 즐기러 청양 눈 축제장으로 향했다. 김밥을 사러 간 분식집은 한산했고, 고속도로에는 앞뒤 수백 미터에 우리 차뿐이었다. 눈 축제장 역시 한적했다. 아파트 뒤편 자연 눈썰매장 말고 난생처음 진짜 눈썰매장에 온 인영이는 봅슬레이, 눈썰매, 튜브썰매 등 각종 동계스포츠를 마음껏 즐겼다. 강원도 빙어 축제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윤영이 소원이었던 빙어 낚시 체험도 했다. 30분 정도해서 8마리를 잡아 만원에 한 접시 하는 빙어튀김에 보탰다.
깡통스키. 1인당 4000원이란 싸지 않은 가격에 둘만 태우자 큰딸 윤영이가 "돈 없어서 안타는 거냐"며 안타까워했다.

집에서 40분만 운전해 10만원 정도만 지출하면 두 딸의 웃음소리를 하루 종일 들을 수 있는 천국이 있었다. 군밤을 장작불에 직접 구워 두 아이의 입 속에 넣어줄 때 내 배가 불렀고, 인영이를 꼭 안고 함께 썰매를 탈 때의 감촉은 달콤했다. 빙어 낚시장에서 만큼은 두 딸은 엄마를 외면한 채 아빠만 찾았다. 그 때의 기분이란 1톱3박 단독기사 썼던 때보다 더 짜릿했다.
빙어낚시장에서만큼은 아빠 인기는 엄마를 앞섰다.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 일과 삶의 균형은 이제 역행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 됐다. 일도 삶의 일부지만 일을 삶의 전부로 삼다가 노년에 ‘왕따’가 됐다는 선배들의 이야기를 우리는 이솝우화만큼 숱하고 들어왔다. 아마 인영이가 아프지 않았다면 나 역시 일이 삶의 전부인 양 살았을 지도 모른다. 이 글을 읽는 아빠들이여, 묻지마 휴가를 내시라. 회사에서 한소리 들을 수 있겠지만 그보다 백배는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장한다.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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