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 23일 캐나다 밴쿠버 리치먼드 올림픽오벌.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0m 세계 최강 스벤 크라머(32·네덜란드)는 예상대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6분14초60으로 금메달을 차지했다. 밥 데 용(42·네덜란드) 샤니 데이비스(35·미국) 같은 중장거리 강자들이 많았다. 하지만 정작 2위로 들어온 선수는 한국의 ‘풋내기’ 이승훈(30)이었다. 6분16초95. 크라머와 불과 2.35초 차이였다.

유럽 선수들이 독식하는 남자 장거리(5000m 이상)에서 이승훈의 은메달을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쇼트트랙에서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전향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무명의 신인이었다. 그 전까지 장거리에서 올림픽 메달을 수확한 아시아 선수는 없었다. 그야말로 이변이었다. 이승훈은 기세를 몰아 열흘 뒤 스피드스케이팅 1만m 금메달까지 목에 걸었다.

지난 18일 평창 동계올림픽 남자 팀추월 준준결승에서 각국 지도자들은 한국의 ‘뒷심’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마지막 3바퀴를 남긴 순간부터 한국은 27.4초, 27.26초, 26.93초의 랩타임이 말해주듯 점점 속도를 높였다. ‘빙속 최강’ 네덜란드조차 마지막 3바퀴를 27.07초, 27.57초, 28.03초로 돌았다.

체력을 안배하다 막판에 모든 것을 쏟는 전략은 이승훈의 트레이드마크다. 다른 장거리 선수들과 달리 마지막 몇 바퀴의 랩타임을 점점 줄여가는 스퍼트를 자랑한다. 쇼트트랙에서 갈고 닦은 곡선주로 코너링 실력, 선천적 폐활량이 비결이다. 이승훈은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남자 팀추월에서 한국 빙속에 사상 첫 은메달을 선사했다.

이제 이승훈은 남자 팀추월 대표팀의 맏형이 됐다. 어느덧 3번째 올림픽이다. 함께 뛴 김민석(19)과 정재원(17)은 고등학생이다. 평창에서 올림픽에 데뷔했다. 이승훈은 팀추월 8바퀴 가운데 4바퀴에서 선두를 책임졌다.

이승훈의 뒷심 전략은 21일 강원도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평창 동계올림픽 남자 팀추월 준결승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한 바퀴 반을 남겨두고 뉴질랜드에 0.43초 차이로 뒤지던 한국은 순식간에 승부를 뒤집었다. 결승선 통과 기록은 3분38초82. 뉴질랜드(3분39초53)를 0.71초 차이로 따돌려 역전극을 완성했다.

두 시간 뒤 벌어진 노르웨이와 결승전에서는 뒷심을 발휘한 순간이 다소 빨랐다. 6번째 스플리트까지 0.10초 차이로 밀린 레이스를 7번째 스플리트에서 1분36초28을 찍어 0.13초 차이로 앞서나갔지만, 10번째 스플리트(한국 2분16초54·노르웨이 2분16초44)에서 다시 역전을 허용했다. 한국은 3분38초52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노르웨이는 3분37초32를 찍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이승훈은 올림픽 세 대회 연속 메달을 차지했다. 8년 간 3개국에서 금메달 1개, 은메달 3개로 모두 4개의 메달을 수확했다. 평창의 금빛 질주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24일 매스스타트가 남았다.

이승훈은 경기를 마치고 “많은 사람들의 응원으로 끝까지 힘을 낼 수 있었다. 아직 한 경기(매스스타트)가 남았다. 최선 다하겠다”고 말했다. 열 살 넘게 차이 나는 후배들을 향한 기대도 잊지 않았다. “너무 든든하게 뒤를 받쳐 고맙다. 나보다 (팀을) 더 잘 이끌 후배들이 될 것으로 믿는다”고 기대했다.

김철오 이경원 기자, 강릉=사진 윤성호 기자 kcopd@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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