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상현기자의 한국교회설명서] 구멍 뚫린 헌금봉투


구멍 뚫린 헌금봉투
교회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비신자들에게 헌금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 영역입니다. 성도들이 매주 예배 참석도 모자라 상당액의 헌금을 내는 것을 보며 ‘종교적으로 너무 심취했다’고 경계심을 갖기 일쑤입니다.

예배 봉헌(offering) 시간에 하나님께 드리는 돈을 헌금 또는 연보, 예물이라고 합니다. 헌금은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확장하는 데 쓰입니다. 주로 교역자 사례비, 선교비, 예배당 유지비, 사무비, 구제비 등에 사용되지요.

성도들은 매주 감사헌금에 건축헌금 선교헌금 장학헌금 구제헌금 절기헌금 구역헌금 작정헌금에다 매달 십일조까지 합니다. 이사 생일 결혼 주택구입 졸업 승진 취직은 물론 장례식 후에도 헌금을 냅니다.

그렇다면 무슨 이유로 시간과 정성도 모자라 돈까지 자발적으로 ‘바치는’ 것일까요. 사실 돈은 가치중립적입니다. 물질을 하나님을 위해 사용할 수도, 자신의 쾌락과 향락을 위해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헌금 안에는 사죄와 구원, 영생의 감격이 담겨 있습니다. 죄인으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감격이 너무 크기 때문에 소중한 것을 아버지 하나님께 내놓는 행위이죠. 즉 사랑의 은총에 감사하기 위한 최소한의 응답행위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헌금의 양에 있지 않고 바치는 사람의 마음과 정성에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적인 헌금의 본질입니다. 그래서 헌금 속에는 그 사람의 신앙 성숙도가 담겨 있습니다.

특히 십일조, 즉 자기 수입의 10분의 1을 떼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물질의 소유가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는 최소한의 행위입니다. 인간이 유한한 삶을 사는 동안 청지기로서 잠시 물질을 관리하는 관리자에 불과하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죠.

십일조는 십일조 헌금을 하는 사람만 알 수 있는 영적 원리가 있습니다. 월 소득이 200만원인 성도에겐 십일조에 해당하는 20만원만 하나님의 것이 아닙니다. 200만원 모두 경제의 주체자이신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래서 헌금은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성숙한 물질의 청지기 중엔 십의 일조는 물론이고 이조, 삼조, 오조도 드립니다. 물질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철저히 고백하는 이들은 물질의 노예가 될 가능성이 낮습니다.

특히 십일조는 물질 형통의 원리와 직결돼 있습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린 사람들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 3:10)고 하신 약속의 말씀을 이해합니다. 그것은 당장의 물질적 풍요와 번성도 있지만 그보다 높은 영적 부유에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헌금에 대한 이해도가 낮다보니 ‘헌금봉투 가운데 부분에 구멍을 낸 이유는 누가 얼마를 내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특정 인사가 목회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교회에 거액의 기부금을 납부했다’는 가십성 뉴스가 나오는 겁니다. 봉투에 구멍을 뚫는 이유는 계수를 하지 않은 헌금봉투가 혹시 있는지 체크하기 위해서입니다. 십의 이조, 삼조를 하다보면 연간 헌금액이 수천만원을 넘기기 마련입니다.

연인은 서로에게 돈을 아끼지 않습니다. 큰돈이 들더라도 하나라도 더 해주고자 하는 애틋한 마음을 갖고 있죠. 헌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속엔 사랑의 희생과 결단이 있습니다. 우리가 받은 것 중에 하나라도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의 물질은 어디로 향하고 있습니까. “네 보물이 있는 그 곳에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 6:21)”

백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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