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란의 파독 광부·간호사 애환 이야기] <9>이옥만-김화경 목사 부부

전주서 온 파독광부-대구서 온 女유학생, 낯선 땅에서 성령의 이름으로 묶어주셔

전주에서 온 파독광부, 대구에서 온 여자 유학생. 하나님은 두 사람을 독일 땅에서 씨줄과 날줄처럼 성령의 이름으로 묶어주셨다. 그들은 자신들이 꿈꿔왔던 인생의 가능성을 내려놓았다. 독일 이옥만(77)목사와 그의 아내 김화경(59) 목사 부부 이야기다.

1981년 결혼한 이옥만븡김화경 목사 부부.

이 목사는 어릴 때 레슬링 유망주일 만큼 체력이 좋았다. 하지만 군대를 다녀온 후 방황하는 삶을 살았고 고혈압까지 얻었다. 이후 주님의 만져주심을 경험하고 몸과 영혼을 치유받았다. 이후 77년 노동청에 근무하는 후배의 추천으로 파독 광부의 길에 들어섰다. 그가 독일 레클링하우젠의 광산에서 일할 당시 부흥회에 참석했다.

“목사님이 축도시간에 ‘이곳에 하나님이 부르신 종들이 있다. 서슴지 말고 일어나라’고 하는 겁니다. 성령님의 강권하심에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섰어요.”

뜨거운 성령체험 후, 79년 베를린 베레크 성경신학대에 입학했다. 나중에 아내가 된 김화경 목사는 당시 이 학교 6개월 선배였다. 파독 간호사 언니의 초청으로 정치학 공부를 위해 유학 왔다가 부르심에 순종하던 터였다.

두 사람은 기도로 가정을 이루고 평생 동역자의 길을 걷게 된다. 1981년 결혼했고 하나님은 급물살처럼 사역현장으로 이끌었다.

그는 신학교 졸업 후 84년부터 현재까지 브레멘 순복음성령교회에서 복음전파자의 삶을 살고 있다. 당시 브레멘은 바다가 인접해 있어 미군 병참부대가 있었다. 미군부대 물품이 이곳을 통해 유입됐다. 교인들은 주로 미군과 국제결혼을 한 여자 및 현지 독일인들이었다.

어느 날 하나님은 아내를 통해 ‘내가 이곳에 나의 성전을 지으리라’는 말씀을 주셨다. 이 목사는 성전건축을 위해 30일 작정 금식기도를 시작했다. 하나님은 4년 뒤 당신의 계획을 이루셨다. 89년 성전건축에 돌입해 15개월 만에 완공했다. 일명 ‘브레멘 성령기도원’이다. 현재 유럽 최대의 기도원인 이곳은 각처에서 갈급한 영혼들이 찾는다. 매년 신년 초에 열리는 금식성회는 재독 기독한인들의 부흥성회의 역사다.

이옥만-김화경 목사 부부(앞줄 왼쪽부터)가 2011년 독일 브레멘 순복음성령교회의 신년성회에서 이용규 선교사(앞줄 오른쪽)와 함께 했다. 이옥만 목사 제공

“하나님은 당신의 성전을 하나님이 원하는 방법으로 지어지길 원합니다. 하나님의 방법이란 바로 무릎 꿇고 전적으로 주님께 맡기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돈이 아닌 기도로 지어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이 목사는 기도로 기적을 이룬 사람이다. 지난 34년의 사역 동안 기도를 통한 신유의 기적은 헤아릴 수도 없다. 특히 아내 김 목사에게 일어난 치유의 기적은 지금도 회자된다.

2000년 아내 김 목사는 독일에서 나팔관 수술을 한 뒤 한 달 만에 한국 부흥집회를 위해 홀로 비행기에 올랐다. 하지만 도착 3일 뒤 곧바로 대학병원에 실려 갔다. 독일에서 수술한 부위가 터지는 바람에 나팔관 한 쪽을 아예 제거한 뒤 봉합수술을 받았다.

그럼에도 선천적으로 혈소판이 약했기에 후유증으로 폐출혈이 시작됐다. 인공호흡기를 끼우고 폐에 고인 피를 뽑아내기 시작했다. 장례를 준비하라는 말도 들었다. 그때 독일에서 아내의 소식을 들은 이 목사는 곧바로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2008년 영국 런던 순복음교회 성회에서 설교하는 김화경 목사. 이옥만 목사 제공

“그때 비행기 화장실에서 눈물을 쏟으며 기도했어요. 죽은 자도 살리시는 하나님이심을 굳게 믿었습니다.”

아내 김 목사가 산소호흡기에 의지해 식물인간으로 지내는 동안, 김 목사는 중환자실 앞에서 간절한 기도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병실 근처 공원에서 무릎을 꿇을 때도 있었다. 체면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그의 기도는 늘 감사가 우선이었다.

“김 목사가 영안실이 아닌 중환자실에 있게 해주셔서 감사했어요. 감사를 하면 사자굴 속에 들어가더라도 그곳을 천사굴로 바꿔주십니다.”

감사의 기적은 일어났다. 김 목사의 깨어남 소식에 병원이 발칵 뒤집혔다. 40일 만에 의식을 찾는 경우는 3만명 중 한 명이 겨우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더욱이 혈소판 수치가 500(정상수치: 15~50만)까지 내려간 환자가 살았다는 것은 실로 기적이었다.

병원산책을 나가면 “저 부부가 선교사라는데 정말 하나님이 살아 계시나봐”라며 얘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5개월이 지나 퇴원한 후 이들 부부는 소생의 기쁨 속에 주님을 위한 일에 더 담대해졌다.

성회 때마다 병 고침의 기적이 일어났다. 어느 곳이든 마다하지 않고 복음을 들고 달려갔다. 병든 자가 치유되고 눌린 자가 자유케 됐다. 그것은 ‘기도 외에는 다른 유가 나오지 않는다’는 성경 말씀의 열매였다.

재독 한인들의 영적회복 처소인 독일 브레멘 성령기도원 전경. 이옥만 목사 제공

이 목사는 하루에 7시간 이상 기도의 단을 쌓고 있다. 매일 아침예배와 저녁예배 등 365일 쉬는 날 없이 예배를 드린다.

“이 시대가 너무 영적으로 메말라가고 있기 때문에 주의 종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오순절 다락방의 역사가 이 시대 목회자 중심으로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매년 7월이면 목회자 자녀를 위한 성회가 열린다. 그들의 자녀를 헌신된 일꾼으로 키우는 데 사명을 쏟고 있다. 브레멘 성령기도원은 현재 여러 민족이 기도하는 제단이다.

박경란 재독 칼럼니스트

독일인은 물론 터키인과 심지어는 길을 가다 교회 오는 외국인도 있다.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 그가 꿈꾸는 교회모습이다. 그는 오늘도, 독일과 유럽에 제2의 부흥역사를 쓰게 될 날을 소망하며 기도의 열정과 함성을 쏟아낸다.

재독 칼럼니스트·kyou7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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