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사진=픽사베이

“엄마 아빠 평생 모르게 하고 싶었는데, 이 사람 처벌하려면 글을 쓰는 수밖에 없었어. 공론화하는 건 하나도 안 무서웠는데 엄마 아빠한테 알리는 게 너무 너무 무서웠어. 그래서 7년을 참은 거야. 내 마음 이해하지? 엄마 아빠 사랑해요. 너무 많이 울지 마.”

지난 7일 A씨 부부는 가족 메신저 대화방에 올라온 장문의 글을 확인하고 말을 잇지 못했다. 이른 새벽 큰딸이 올린 메시지였다. 머릿속이 하얘지고 몸이 떨려왔다. 부부는 눈물도 흘리지 못하고 서로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봤다.

이날 A씨의 딸 B씨는 개인 페이스북으로 중학생 시절 자신이 겪은 성폭력 피해를 폭로했다. B씨는 M여자중학교에 재학 중이던 2010년~2011년 유부남 교사 오모씨에게 지속적으로 성추행 당했다고 주장했다.

B씨에 따르면 오씨는 자신의 자취방과 차량 등에서 B씨의 중요 부위를 만지고 유사 성행위를 하는 등 추행을 일삼았다. 그는 자신의 행동을 ‘사랑’이라고 세뇌하면서도 “절대로 들키면 안 된다” “우리의 비밀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폰을 잘 잠그라”고 끊임없이 주의를 줬다.

B씨는 “성추행을 당하고 나면 늘 불쾌한 기분이 들었음에도 너무나 아무렇지 않은 선생님의 모습에 자신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며 “관계를 끊자고 용기내 말하기도 했지만 매일 학교에서 얼굴을 마주치는 상황에서 1년간 끔찍한 굴레를 벗어날 수 없었다”고 말했다.

피해자 B씨의 페이스북 캡처

B씨가 ‘미투’를 결심하며 가장 두려웠던 건 가해자의 보복도, 사람들의 시선도 아니었다. 자신보다 더 아파할 가족이었다.

B씨는 가족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M여중을 지날 때마다 토할 것 같은 기억이 스멀스멀 올라왔지만, 나만 조용히 하면 엄마 아빠도 상처 안 받고 나도 괜찮을 줄 알았다. 엄마 아빠가 그 사실을 알고 상처 받는 게 죽기보다 싫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여지껏 잘 살아남은 딸에게 사랑한다고 말해 달라”며 자신을 위해 무언가 행동하는 대신 조용히 안아달라고 부탁했다.

“엄마 아빠 너무 사랑해요. 너무 많이 울지마요. 다 지나간 일이고, 그 사람은 처벌 받을 거야. 엄마 아빠 마음 속에 엄청난 폭풍이 불겠지. 그 폭풍이 서서히 가라앉길 기도할게. 사랑해.”

B씨의 게시물이 확산되자 오씨는 피해자에게 연락해 “사과를 하고 싶다”며 퇴직 의사를 밝혔다. “3월 안에 모든 것을 정리하겠다”던 오씨는 B씨가 반복해서 자수를 요구하자 연락을 끊고 변호사를 선임했다. 오씨는 “중학생을 좋아했던 게 (피해자에게) 상처가 되었으니 교사로서 퇴사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나만의 마음이었던 건지 묻고 싶다”며 책임을 돌리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딸의 힘겨운 시간을 알게 된 A씨 가족은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다. A씨는 9일 M여중에 찾아가 오씨의 사직이 아닌 해임과 파면을 요구했다. 오씨는 8일부터 학교에 나오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B씨의 페이스북에는 M여중을 졸업한 동창생들의 응원과 지지가 줄을 잇고 있다. 오씨가 학생들에게 과도한 체벌을 일삼았고, 상습적으로 성희롱 발언을 했다는 제보도 쏟아졌다. 오씨를 교단에 서지 못하게 해달라는 청원이 다음 아고라와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라오기도 했지만 명예훼손으로 신고를 받아 삭제된 상태다.

B씨는 13일 국민일보에 “가해자가 소셜미디어에 (게시물) 업로드를 그만하라고 연락이 왔다”며 “저 포함 모든 학생들에게 사과문을 올리면 중단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사과문을 올리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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