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지기 두 사람은 각자의 원고를 준비했다. 같은 범죄 혐의를 받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은 각각 검찰 포토라인과 재판장에서 준비한 원고를 읽었다. 두 원고에는 모두 “국민께 죄송하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한쪽은 혐의를 부인했고, 한쪽은 혐의를 밝힐 수 있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같은 “죄송”었지만 다른 ‘방향’을 가리켰다.

이 전 대통령은 14일 오전 9시22분 서울중앙지검에 도착해 포토라인에 섰다.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불법 수수, 다스 비자금 조성, 횡령·배임 등 20가지 안팎의 혐의로 검찰조사를 앞두고서였다.

그는 준비한 원고를 꺼내 “민생경제가 어렵고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환경이 매우 엄중할 때 저와 관련된 일로 국민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 대단히 죄송하다”고 읽었다. 이어 “믿고 지지해주신 분들과 이와 관련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에게도 미안하다”고도 했다.

이 전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으로서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습니다만 ‘말을 아껴야 한다’ 스스로 다짐하고 있다”면서도 “다만 바라건대 역사에서 이번 일로 마지막이 됐으면 한다”고 했다. 자신에 대한 수사가 ‘정치보복’이라는 기존의 입장을 되풀이한 셈이다. “죄송하다”는 말은 범죄 혐의에 대한 사과가 아닌 논란에 연루된 데 대한 사과였다. 검찰조사에서도 혐의를 모두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같은 날 오전, 김 전 기획관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부장판사 이영훈) 심리로 열린 1차 공판에 출석해 준비한 원고를 꺼내들었다. 그는 이명박정부 청와대 재직 시절 이 전 대통령과 함께 4억원의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를 불법 수수한 혐의 등을 받는다.

김 전 기획관은 “제 잘못으로 물의를 빚고 법정에 서게 된 것에 송구스럽다”고 입을 열었다. 이어 “제 죄에 대해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을 것이고 여생동안 속죄하는 마음으로 반성하며 살겠다”며 “전후사정이 어찌됐든 우를 범해 국민여러분께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고 사죄했다.

김 전 기획관은 이어 이 전 대통령을 언급했다. 그는 “지금 이 시간에 전직 대통령이 소환조사를 받고 있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철저한 수사를 통해 모든 진실이 밝혀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저도 사건의 전모가 국민들에게 알려질 수 있도록 최대한 성실하고 정직하게 남은 수사와 재판에 참여토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 전 대통령의 혐의를 밝히는데 적극 협조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김 전 기획관은 앞선 검찰조사에서도 이 전 대통령에게 국정원의 지원 동향을 일정 부분 보고했으며, 사적인 목적으로 국정원의 자금을 받은 것도 아니라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구치소에 수감된 뒤로 이 전 대통령 측과는 면회도 하지 않는 등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전 대통령과 김 전 기획관은 고려대 상대 2년 선후배 관계로 1977년부터 시작해 40여년간 인연을 맺어왔다. 김 전 기획관은 이 전 대통령 당선 직후인 2008년 인수위 시절부터 임기가 끝나는 2012년까지 인수위 비서실 총무 담당 보좌역, 청와대 총무비서관, 총무기획관을 지내며 ‘MB 집사’로 불린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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