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화장품·샐러드 등 ‘이색 자판기 시대’가 도래했다.

‘무인화’의 흐름이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세븐일레븐은 지난해 5월부터 잠실 롯데월드타워 31층에 최초로 무인 편의점 ‘세븐일레븐 시그니처’를 운영중이다. 이마트24도 서울지역의 일부 편의점을 무인으로 운영하는 실험에 나섰다.

무인화는 ‘자동판매기’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당장 큰 자본이나 첨단 기술을 도입하지 않더라도 유통비와 인건비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 자판기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77년이다. 당시 롯데상사의 전신인 롯데산업이 일본 샤프에서 커피·음료 자판기 400대를 도입해 설치한 것이 시초다.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빠르게 확산됐고 1990년대 중반에는 ‘황금알’ 사업으로 불리기도 했다.

◆ 사라지는 커피 자판기

‘자판기’의 왕은 누가 뭐라해도 ‘커피 자판기’다. 오랜시간 왕좌를 지켜왔다. 그러나 최근 커피 자판기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서울 내 식품자동판매기 업소 수는 2008년 1만5623곳에서 6658곳으로 57% 감소했다. ‘식품자동판매기 업소’란 통상적으로 커피·음료·식품 등을 파는 자동판매기를 뜻한다. 반대로 서울 내 커피전문점은 2008년보다 2014년에 237%가 급증했다. 커피 등을 카페에서 구입하는 고객이 늘어 식품자동판매기 업소가 급감한 것으로 예측된다.

더불어 지난 1월 식약처가 모든 학교에서 커피 등 고카페인 함유 식품 판매를 금지하는 내용의 ‘어린이 식생활안전관리 특별법 일부 개정안’을 발표했다. 이로 인해 자판기의 대명사인 ‘커피 자판기’는 더 많이 사라질 것으로 예측된다. 개정안은 국회 법사위와 본회의 절차를 거쳐 오는 7월부터 시행될 전망이다.


◆ 치열한 자판기 왕좌 다툼

커피 자판기의 시대가 가고 자판기의 왕을 차지하기 위한 신흥강자들의 경쟁이 치열하다. 최근에는 식재료, 반찬이나 샐러드 같이 유통기한이 극도로 짧은 상품까지 자판기에서 팔기 시작했다. 샐러드 전문업체 스윗밸런스도 그 중 하나다. 스윗밸런스는 서울에 총 4개의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유통 채널로 자판기를 선택했다. 현재 스윗밸런스는 총 3대의 자판기를 운영 중이다.

꽃 자판기는 ‘차세대 왕’ 1순위다. 보통 꽃은 가게에 들러 구입하는 것이 정석이지만 자판기 덕분에 언제 어디서든 쉽게 구입할 수 있게 됐다. 다채롭게 포장된 꽃다발 중에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기만 하면 향긋한 생화가 나온다. 금세 시들어버리는 생화가 싫다면 경우에 따라 보존 처리된 ‘프리저브드’나 비누 공예 꽃을 취향에 맞게 선택하면 된다.



감성을 이용한 ‘설렘 자판기’도 새롭게 명함을 내밀었다. 설렘 자판기는 5000원을 넣으면 예쁘게 포장된 박스가 나오는데 헌책 한 권이 들어있다.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은 없지만 무슨 책이 나올지 몰라 설렘 가득한 표정으로 포장을 뜯기에 ‘설렘 자판기’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헌책방을 살려보자는 대학생들의 아이디어로 설렘 자판기의 일부 수익금은 헌책방 주인의 몫으로 돌아간다. 현재 고양 스타필드에 설치돼 있다.

단돈 500원으로 마음을 치료해주는 자판기도 있다. 서울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무인자판기 ‘마음약방’은 센스 넘치는 방법으로 사람들을 위로해주고 있다. 동전 500원을 자판기에 넣고 표시된 20가지 마음 증상 중 하나를 고르면 자판기가 간단한 처방전을 발급해준다.


반응은 폭발적이다. 시민들은 “처음엔 재미로 했는데 내 마음에 딱 맞는 약이 나왔다”며 “동네에도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식음료·물품에서 벗어나 ‘마음’까지 힐링하는 자판기가 다가온 것이다.

◆ 하지만 약점도 많다

이색 자판기들의 약점은 향후 과제로 남는다. 전통적으로 자판기에서 판매하는 상품은 유통기한이 긴 상품이었다. 커피·음료 자판기의 경우 유통기한이 최소 몇 개월 이상이고 커피 자판기는 세척을 하는 기능이 있어 관리가 수월했다.

그러나 꽃·샐러드 등은 다르다. 물류전문지 CLO에 따르면 “꽃 자판기에서 판매하는 꽃다발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부분 생화가 아닌 프리저브드”라고 밝혔다. 즉 생화를 구매하고자 하는 고객에게는 꽃 자판기가 무용지물인 것이다. 샐러드 자판기도 마찬가지다. 샐러드 자판기의 경우 제품 관리가 어렵다. 샐러드의 주재료인 과일이나 야채는 원재료의 가격 변동이 심한 편이다. 계절마다 가격이 폭등하기도 하고 폭락하기도 한다. 레시피는 정해져 있는데 원재료 가격이 급격히 높아지면 기본 생산 원가가 높아지고 수익 구조를 만들기가 어려워진다.

박재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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