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가족 모두가 나무를 심으러 갔다. 한국소아암재단 중부지부에서 환아 가족을 대상으로 한 ‘아희부기’ 나무심기 행사였다. 아희부기는 ‘아이에게 희망을 부모에게 기쁨을’의 줄임말이다. 차로 30분여를 달려 야트막한 야산의 텃밭에 도착했다. 숲학교 선생님들과 자원봉사 학생들이 환아 가족들을 반갑게 맞아줬다. 사과나무, 체리나무, 감나무, 매실나무를 심고, 이름표도 만들어 나무에 걸었다. 소원을 적은 타임캡슐도 함께 묻었다. 인영이는 자기 키만한 삽을 야무지게 쥐고 열심히 ‘노가다’를 했다. 같은 나이의 환아 친구를 만나 함께 술래잡기도 했다.
인영이의 사과나무. 인영이도 나무도 무럭무럭자라기를.

소아암재단 관계자 등 행사를 진행하시는 분들은 3시간여 내내 환아 가족들이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게 편안하게 해주셨다. 텐트 차양에서부터 정성스런 도시락, 아이들을 위한 그림 도구 등 세세한 것까지 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 내년 이맘때 우리 가족의 나무를 다시 보러오기로 약속하고 집에 돌아왔다. ‘아희부기’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이 행사가 있기 며칠 전, 나와 달리 어떤 일에도 크게 흥분하지 않는 아내가 화가 날만큼 나서 전화가 왔다. 아내는 인영이와 같은 건강장애학생에게 방과 후 체육이나 미술 학원비를 월 10만원씩 보조해주는 국가보조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인영이는 마침 유치원 오전수업 후 ‘뛰다 그리다’라는 학원을 다니고 있다. 3월안에 신청을 해야 한다는 말에 아내는 세종시에 관련서류를 여러 차례 물었지만 담당자는 어떤 서류를 어떻게 준비하는지 제대로 설명을 못했다. 시간에 쫓긴 아내가 마지막날 전화로 구체적인 것을 계속 묻자 담당직원이라는 사람은 “이런 제도가 있다고 듣긴 들었다”고 얼버무렸다는 것이다.
아이에게 희망을, 부모에게 기쁨을. 소아암재다 나무심기 행사 마지막 순서에서 아이들이 희망의 비행기를 날리고 있다.

아내는 인영이 발병직후 죄 암울한 이야기 중에 담당 의사로부터 들은 2가지에 희망을 가졌다고 했다. 하나는 이 병이 불치가 아닌 난치병이라는 것과, 또 하나는 소아암 환아를 위한 여러가지 지원프로그램이 있으니 적극 활용하라는 얘기였단다. 실제 지난 2년간 민간 지원단체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러면서 느낀 것은 민간단체들은 예고 없이 마스크 등 위생용품 세트를 보내주는 식의 적극적이고 편안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반면 나라는 여러 좋은 제도가 있다지만 선심 쓰듯이 ‘이런 게 있어. 근데 너희들이 제대로 신청해야 돼’라는 식이다. 2년 전 보건소에 치료비 전액 지원 신청을 할 때 보건소 직원은 당당하게 전세 임대차계약서 ‘원본’을 요구했다. 그럼 “계약 당사자인 우리는 사본을 갖고 있어야 하냐”는 질문에 직원은 “그건 모르겠고 신청을 하려면 원본을 내야 한다”는 말만 반복했다. 결국 모든 서류를 냈지만 정말 난해한 복잡한 재산과 소득산정 절차를 거쳐 탈락했다.
나라는 늘 그런 식이었다. 어찌어찌해서 이번에 인영이 학원비 지원비로 월 10만원을 받게 됐는데, 나라에서 받은 첫 혜택이다.
인영이가 남친의 손을 잡고 유치원에 등교하고 있다. 인영이는 편모군을 만나면 "손"이라고 말하며 먼저 손을 잡는다.

있는 돈을 푼다고 복지국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정말 필요한 사람들에게 제때에 정확히 전달될 수 있는 체계가 갖춰지지 않아 복지 누수 현상이 계속되는 한 제대로 된 복지국가는 만들어질 수 없다. 한해 4000명이 넘는 아이들이 소아암 진단을 받는다. 그 아이들에게 만이라도 ‘이 나라가 나를 정말 아끼고 보살피는 구나’라는 느낌을 갖게 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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