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주의 작은 천국] 생강나무와 생각나무

우수(雨水), 경칩(驚蟄)이 들어있는 양력 삼월 초순 무렵은 사순절의 두 번째나 세 번째 주간이 됩니다. 깊은 산중에서 생강나무가 노오란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 때입니다. 산수유와 비슷한 시기에 피어나고 생김새도 비슷하지만 생강나무가 먼저 꽃을 피웁니다. 겨울 끝에 제일 먼저 눈 뜨고 일어나 봄소식을 알리는 것은 개나리나 진달래가 아니라 바로 이 생강나무입니다. 생강나무는 무덤 같은 겨울을 이기고 제일 먼저 깨어납니다. 화사하고 아름답지 않지만 생강나무 꽃은 봄의 첫 번째 전령입니다.

나뭇가지에서 생강냄새가 난다고 해서 ‘생강나무’라고 부르지만 정작 꽃은 귀엽고 사랑스럽다.

그리스신화에 프로메테우스(Prometheus)라는 티탄족이 있습니다. ‘먼저 생각하는 사람(先知者)’이라는 뜻을 가진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로부터 불을 훔쳐다 인간에게 준 죄로 형벌을 받습니다. 그는 제우스의 지배질서에 굴종하지 않고 주체적이고 자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지성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시련과 고난의 형벌을 받아야 했습니다. 역사의 질곡 가운데 먼저 생각하는 사람은 고난과 시련을 당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의 불행 때문에 많은 사람이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역사의 아이러니입니다.

가정을 돌보지 못하고 독립운동에 투신했던 분들 때문에 많은 이들이 해방을 맛보았습니다.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다 감옥에 갇힌 사람 때문에 많은 이들이 민주화된 사회에서 시민의 권리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임금인상을 위해 싸우다 해고된 노조원 때문에 비노조원 노동자들의 임금이 인상되고 복지가 향상되었습니다. 부패한 중세의 거대 종교권력에 저항했던 종교개혁자들 때문에 많은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의 본질을 회복했습니다. 권력화된 율법과 그것의 가혹한 제도를 의심했던 사도들과 초대교회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신앙의 자유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먼저 생각할 줄 아는 사람들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도 이러한 역사적 아이러니입니다. 한 사람의 희생으로 모든 인류가 구원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역설은 기독교의 핵심가치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 사람들은 고난과 시련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과 야곱과 요셉, 그리고 모세와 다윗이 그랬습니다. 사도들과 바울이 그랬습니다.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성취될 수 있다면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타자를 구제(구원)하는 일에 두려움 없이 나서는 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하지만 고난은 생각하는 사람의 몫입니다. 생각하지 않으면 십자가도 질 수 없습니다. 생각 없는 믿음은 위험합니다.

그래서 나는 우리교회 주일학교에서 매월 첫째 주일에 ‘세상의 모든 질문’이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걸고 아이들에게 맘껏 질문하게 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을 교회 안으로 끌고 들어와서 이야기할 수 있도록 문을 활짝 열어둡니다. 생각하는 사람만이 질문할 수 있고 질문할 줄 아는 사람이 참된 신앙에 이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김선주 영동 물한계곡교회 목사

언젠가 한 아이가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부처님이 도를 깨친 것은 보리수나무 아래인데 예수님의 십자가는 무슨 나무로 만들어졌어요”라고. “예수님의 십자가는 ‘생각나무’로 만들었다”고 대답해주었습니다. 지극히 문학적인 이 은유를 풀어서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무슨 뜻인지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여백을 남겨두기 위해서입니다. 생강나무와 생각나무는 같은 소리를 냅니다. 그리고 먼저 꽃피우고 먼저 생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생강나무는 생각나무입니다.

김선주 영동 물한계곡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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