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X조선해양이 끝내 법정관리로 가게 됐다. 정부와 산업은행 주도로 지난달 STX조선에 한 달 말미를 주며 인건비 감축을 골자로 한 노사의 자구계획안 동의를 요구했으나 결국 불발됐다. STX조선은 지난해 7월 법정관리를 졸업한 지 9개월 만에 또다시 같은 운명을 맞이하게 됐다.

9일 산업은행은 이날 오후 5시였던 STX조선의 자구계획안과 노사확약서 제출 마감을 자정으로 미루며 노사 합의를 종용했다. 성주영 부행장도 경남 창원으로 내려가 STX조선 노사 설득에 가세했다. 이날은 산업은행이 STX조선에 통보한 ‘운명의 날’(자구계획안과 노사확약서 제출 마감일)이었다. 산업은행이 요구한 자력 생존 조건은 ‘고정비 40% 감축’이다. 이를 위해 STX조선 생산직 695명 가운데 75%에 해당하는 500여명이 회사를 떠나야 한다. STX조선은 인건비 절감방안을 제외한 자료를 산업은행에 넘기고 노조와 협상을 계속했다.

산업은행은 STX조선 노사가 자구계획안 합의에 실패함에 따라 선수금환급보증(RG)을 해주지 않겠다고 밝혔다. RG는 조선사가 도산해 배를 건조하지 못하면 금융회사가 선수금을 대신 물어주겠다는 보증이다. RG가 없으면 조선사는 선주와 계약을 맺을 수 없다. 산업은행이 RG를 거부하면 STX조선은 신규 수주를 할 수 없어 법정관리가 불가피하다.

정부와 채권단은 ‘원칙’을 고수했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정부는) 노조, 대주주, 채권단 등 이해당사자가 고통을 분담하며 회사가 지속가능하도록 하는 경영정상화 원칙을 세웠다”며 “제시한 원칙에 따라 일관되게 처리할 것이다. 원칙에서 벗어날 경우 계획대로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노조는 강경했다. 노조는 이날 오전 8시부터 비상대책회의에 이어 조합원 간담회를 열고 의견을 수렴했다. 인적 구조조정 동의 확약서는 제출할 수 없다는 의견이 우세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노동자 생존권보장 조선소살리기 경남대책위원회 관계자는 “노사가 자율교섭하고 있는 상황에서 산업은행의 목표가 인력 구조조정이라는 게 확인됐다”며 “이런 식의 자구계획안이 나온다면 STX조선 노조 전체가 참여하는 상경투쟁을 벌일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협력업체들은 ‘생존의 길’을 찾자는 분위기였다. STX조선 진해조선소 인근에서 만난 한 협력업체 직원은 “노조 입장을 이해한다”면서도 “일단 회사가 살아야 주변 협력업체도 살고 다시 기회를 모색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다른 협력업체 관계자도 “STX조선이 무너지면 지역경제 전체가 나락으로 떨어진다”며 “노사가 잘 협의해 회사를 살리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금융권에선 STX조선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청산 판정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정부 컨설팅 결과 STX조선의 청산가치가 계속기업가치보다 높았다. 다만 산업은행은 STX조선이 중형 조선사로서 생존가치가 있고, 성동조선과 함께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조선산업 생태계 붕괴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한 달의 여유를 줬다.

임성수 홍석호 기자 joyls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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