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해자율방재단

그날은 호우주의보가 발령된 날이었습니다. 억수같이 쏟아지던 비. 몰아치던 강풍. 아이는 옷깃을 여민 채 발길을 재촉했습니다. 그러다 어찌된 일인지 종종걸음을 멈추고 그 자리에 우뚝 섰습니다. 그리고는 한참을 움직이지 않았죠. 지난달 21일, 경남 창원시 진해구 한 육교에서였습니다.

그날 육교에는 우비만 입은 채 비바람에 찢겨 심하게 훼손된 현수막을 정리하던 이들이 있었습니다. 시민의 안전을 해할 위험이 커지자 진해구 이동자율방재단원들은 부랴부랴 현수막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빗방울이 시야를 가리기는 했지만 우산을 쓰고 작업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요. 비가 멈추었나 싶어 위를 쳐다보니 작은 여자 아이가 우산을 씌워주고 있더랍니다. 한 손을 주머니에 넣고 비바람에 흠뻑 젖은 채 ‘대수롭지 않다는 듯’말이죠. 이들은 잠시 작업을 멈추고 서둘러 아이를 집으로 보내려고 했습니다. 고마운 마음보다 아이가 위험할까 걱정되는 마음이 더 컸죠.

“전 괜찮아요”

아이는 오랫동안 자신의 우산을 내어주었습니다. 그 중 한명은 아이의 모습이 예뻐 사진에 담았다고 했습니다. 아니 담을 수밖에 없었다고요. 어쩌면 ‘보답’하기 위해서였을 겁니다. 이 사진 한 장으로 수소문 끝에 아이를 다시 만날 수 있었으니까요.

아이는 덕산초등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인 김수빈(11)양입니다. 자신의 선행이 대단히 특별했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마음이 불편해서 그랬을 뿐”이라고 ‘쿨’하게 말했습니다.

아이에게는 ‘별 것 아니었던’ 일, 우리에게는 참 ‘값진 것’으로 다가왔습니다. 자율방재단연합회는 3일 수빈이에게 ‘선행상’을 주었습니다. 어른들은 아이에게 고맙다고, 잘했다고, 덕분에 따뜻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아이는 답했습니다.

“아니에요. 그렇게 해야 제 마음이 편해요”

남이 편하면 내 마음이 놓인다는 아이. 수빈이의 두 손에 더 따뜻한 세상, 보다 밝은 내일을 꼭 쥐어주고 싶습니다.

[아직 살만한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에 희망과 믿음을 주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아직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아살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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