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아프지만 찬란하게” 장애인 플루티스트 장은도 목사의 삶과 신앙

“장애인으로 사는 게 끔찍했습니다. 신학을 공부하는 건 죽기보다 싫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만약 장애인이 아니었다면, 또 만약 목회자가 되지 않았다면 그 끝은 분명 지옥이었을 겁니다. 제 손에 들린 플루트도 결국 놓쳐버렸겠지요.”


지난 5일 경기도 수원의 한 스튜디오에서 만난 장은도(52) 목사는 소아마비 1급 장애인이자 플루티스트로서의 삶을 이렇게 표현했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음악예술사립대(플루트 전공) 최초의 장애인 플루티스트 졸업생인 그는 플루트가 놓인 책상 옆 휠체어에 앉아 세 살배기 시절 이야기를 꺼냈다.

“여느 아이들보다 잘 걷고 뛰던 아이였었답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양팔을 들어 절 일으켜 세웠는데 다리가 축 늘어지더래요. 제대로 일어서지 못하고 푹 주저 않기를 반복하자 소문난 한약방을 찾아갔는데 ‘빨리 큰 병원으로 데려가라’더군요. 할머니께선 ‘우리 은도는 평생 걸을 걸 세 살 전에 다 걸었나보다’ 하셨지요.”


명의에게 침도 맞아 보고 안 먹어 본 약이 없을 정도였지만 차도가 없었다. 아홉 살 땐 1년 동안 4차례나 수술대에 오르며 틀어진 뼈에 핀을 박고 협착된 골반을 넓혀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척추측만(척추가 옆으로 굽어 있는 형태)이 80도 이상 진행된 1급 소아마비 장애인으로 50년째 살고 있다. 장 목사는 “어머니는 매일 내게 ‘고생할 팔자’ ‘가난할 팔자’라고 푸념했지만 하나님을 만난 후 그 모든 팔자가 복의 근원이었음을 알게 됐다”고 했다.

‘복의 근원’을 마주하게 된 건 고1때였다. 하굣길에 우연히 가방을 들어 준 한 선배를 따라 교회에 가면서 처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했고 교회는 플루트와 인연을 맺게 해줬다. 하지만 신앙을 갖게 된 기쁨이 즉각 순탄한 삶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꿈꿨던 대학입학은 번번이 좌절됐다. 대신 하나님은 장 목사에게 주신 달란트를 그의 도움이 필요한 곳에 쓰이게 하셨다.

“20대 초반에 나름 잘 나가는 음악학원 강사가 될 수 있었습니다. 한 친구의 제안으로 김포의 작은 교회에서 찬양단과 관현악단을 가르치게 됐는데 지역에 소문이 나면서 강화도의 시골교회에까지 가게 됐어요. 6년 동안 주일 오후마다 김포와 강화를 돌며 찬양과 악기를 가르쳤더니 지역 내 20여개의 찬양단과 관현악단이 생기는 기적이 일어났죠.”

신앙 공동체를 섬긴 봉사의 보상은 꿈에 그리던 유학으로 돌아왔다. 청년 시절 멘토가 돼줬던 교수님과 비엔나에 여행을 가게 됐는데 교수님께서 미리 비엔나음악예술사립대의 특별 오디션을 준비해 주신 것. 하늘길 8000㎞를 날아온 목발을 짚은 동양인 청년에게 벽안의 교수들은 기회의 문을 열어줬다. 6년 동안 방학 땐 한국으로 돌아와 돈을 벌고 개학을 하면 어린 두 딸과 아내를 뒤로한 채 유럽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는 내로라하는 예술성을 갖춘 학생들도 중도 포기하고 마는 대학(4년) 대학원(4년) 최고연주자과정(2년)을 6년 만에 마쳤다. 금의환향한 그에게 수많은 곳에서 출강을 요청해왔고 부와 명성도 얻었다. 하지만 능력과 재물이 주어지는 사이 마음속엔 교만이 가득 들어찼다. 장 목사는 “교회에서 그럴싸하게 연주로 봉사만 하면 될 것이라 착각하며 몸과 마음은 세상에 빠뜨린 채 하루하루 우상을 따라다니던 나날들”이라고 회상했다.

결국 연단이 찾아왔다. 명성과 함께 손에 넣었던 두 채의 집과 두둑한 통장이 사라지고 순식간에 빚더미에 앉았다. 건강도 급속도로 나빠지며 장애로 인한 합병증이 도졌다.

“건강, 후학 양성 등을 핑계로 미뤄왔던 신학 공부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았던 게 떠올랐습니다. 그제야 목회자의 길로 접어들었죠.”


하나님께선 인간의 욕심을 내려놓고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 삶으로 길을 내셨다. 신학 공부는 처음 은혜를 체험했던 고교시절의 초심을 찾게 해줬다. 음악적 재능에 대한 태도도 마찬가지였다. 아끼는 제자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양 하는 플루트 앙상블을 만들고 연주집회를 하며 복음을 전했다. 양로원 어르신들의 응급이동 차량 마련, 홀몸 노인들의 겨울 난방비 지원 등을 위한 자선음악회를 열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눴다. 연이은 나눔 활동이 알려지며 2013년엔 장애인 문화 예술 대상 국무총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지난달 자신의 삶을 간증하듯 담아 책 ‘날마다 아프지만 찬란하게 노래합니다’(따스한 이야기)를 출간한 그는 “오늘 잠시 아픔이 닥칠지 모르지만 하나님께 더 찬란하게 쓰임 받을 내일을 기대한다”고 했다.

“돌아보면 삶의 모든 과정이 한 치의 오차도 없는 하나님의 계획하심 가운데 이뤄졌습니다. 자기 삶이 짙은 어둠 같은 퍼즐 조각뿐인 것 같나요? 아마 모든 조각이 맞춰진 것을 보면 그 어두운 부분이 그림을 아름답게 해주는 명암(明暗)의 역할을 하고 있을 겁니다.”

최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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