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오늘, 배가 뒤집혔다. 476명이 탑승한 거대한 유람선. ‘세월호’였다. 제주해경 해상교통관제센터(VTS)는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55분쯤 전남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세월호로부터 조난 신고를 접수했다. 곧 속보가 전국에 타전됐고, 방송사 카메라가 헬기를 띄워 바다에 잠긴 배를 실시간으로 비췄다.

옆으로 누워 반쯤 잠겼던 배는 서서히 바다 속으로 빨려들었다. 결국 완전히 뒤집혀 선두의 일부만 물 위에 남았다. 그 사이 ‘전원 구조’라는 오보가 전해졌지만, 300명 넘는 탑승자는 어둠 속에서 구조만 기다리고 있었다. 대통령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나라에서 정부도, 언론도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희생자는 모두 304명. 이 가운데 5명은 지금까지 한 점의 유골조차 수습되지 않았다.

대한민국은 다른 나라가 됐다. 누군가의 가족이었고 친구였을 사람들의 죽음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무기력함, 울부짖는 유족에게 법과 돈을 들이밀어 슬픔의 무게를 재는 잔인함이 우리 사회를 강하게 휘감았다. 그렇게 4년이 흐른 지금 무능했던 최고 권력자가 다른 부정으로 단죄됐고, 3년간 바다 속에 잠겼던 배를 지난해 꺼내 진실을 규명하고 있다. 늦었지만 조금씩 변하고 있다. 4년이 흐른 오늘, 우리는 세월호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국민일보는 16일 빅데이터 분석업체 데이터앤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3개월간 트위터, 인스타그램, 유튜브, 네이버, 다음에서 언급된 ‘세월호’ 키워드를 분석했다. 그 결과, 우리는 여전히 ‘진상규명’을 요구했고 ‘유가족’을 걱정했으며 ‘박근혜(전 대통령)’의 책임을 묻고 있었다. 페이스북은 정보를 공개하지 않아 분석 대상에서 제외했다.

세월호가 언급된 횟수는 3개월 동안 87만1378건이었다. 하루 평균 9600회 넘게 언급된 셈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았다. 6월 항쟁을 그린 영화 ‘1987’이 흥행가도를 달렸던 지난 1월 16일에는 ‘세월호 영화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같은 달 27일 밀양 요양병원 화재를 안타까워하면서 세월호를 연상하는 사람이 많았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쇼트트랙 금메달리스트 김아랑의 세월호 리본이 정치색 논란으로 변질됐던 지난 2월 19일에도, 보수단체의 서울 광화문광장 집회에서 촛불 조형물이 불에 탔던 지난달 5일에도 세월호는 거론됐다.

세월호의 언급 회수는 참사 4주기를 20일 앞둔 지난달 28일부터 집중적으로 나타났다. 지난 3개월 총량의 절반 이상인 50만건이 이 기간에 집계됐다. ‘참사’(8207건)에 이어 가장 많이 언급된 관련어는 ‘진상규명’(4675건)이었다. ‘유가족’은 3761건으로 네 번째, ‘박근혜’는 3130건으로 다섯 번째였다. 박근혜정부의 무능함을 꾸짖고 유족을 걱정하는 마음은 여전히 SNS와 포털 사이트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박인복 데이터앤리서치 대표는 “버즈량(인터넷·모바일상에서 언급된 횟수)이나 이슈의 연속성으로 볼 때, 세월호는 우리 사회의 가장 큰 현안 중 하나”라며 “세월호 키워드는 언론 보도 증가량에 따라 SNS상의 관심도가 높아지는 경향을 유지하고 있지만, 참사 4주기인 16일의 경우 확산 속도가 두드러졌다”고 분석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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