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원로 배우 최은희씨가 92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신장투석과 합병증으로 오랜 시간 투병 생활을 했던 최씨는 16일 오후 5시30분쯤 서울 강서구 화곡동 자택 인근 병원에서 돌연 숨을 거뒀다.

최씨는 1926년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났다. 1942년 연극 ‘청춘극장’으로 데뷔한 뒤 무대를 누비던 그는 5년 뒤 영화 ‘새로운 맹서’로 스크린에 얼굴을 비췄다. 이후 ‘밤의 태양’ ‘마음의 고향’ 등에 출연하며 유명해졌고, 남편인 신상옥 감독을 만나며 스타로서 입지를 굳혔다.

최씨와 신 감독은 1953년 다큐멘터리 영화 ‘코리아’로 만났다. 두 사람은 1954년 결혼한 뒤 ‘꿈’ ‘지옥화’ ‘춘희’ 등 약 20년 동안 130여편을 함께 작업했다. 불우한 환경 속에서 법학을 전공하는 여대생 최소영의 이야기를 그린 ‘어느 여대생의 고백’은 최씨에게 문교부가 주최한 ‘제1회 국산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안겼다. 국산영화제는 ‘대종상영화제’의 전신이다.

최씨는 우리나라 세 번째 여성 감독으로서 1965년 ‘민며느리’, 1967년 ‘공주님의 짝사랑’ 등을 연출하기도 했다. 감독 겸 배우로 출연한 민며느리로는 제5회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이후 1967년 안양영화예술학교의 교장을 맡았다.

최씨는 ‘납북사건’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안양예고 교장으로 지낸 지 2년째 되던 해 1월 홍콩에서 북한 공작원에 의해 납치됐고, 아내를 찾으러 떠난 신 감독 역시 돌아오지 못했다. 부부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지시로 북한에서 모두 17편의 영화를 제작했다. 최씨는 당시 찍은 ‘소금’으로 1985년 모스크바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두 사람은 8년이 지나서야 오스트리아 빈 미국 대사관을 통해 탈출했다.

다큐멘터리 영화 ‘연인과 독재자’에서 북한에 납치된 신상옥 최은희 부부가 김일성(가운데)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 최은희(왼쪽)가 마릴린 먼로와 함께 있는 모습, 김정일이 최은희와 독대하는 장면(위부터 시계방향). 엣나인필름 제공

최씨는 2006년 4월 11일 신 감독을 먼저 떠나보낸 뒤 허리 수술을 받는 등 건강이 악화됐다. 숨지기 직전까지 일주일에 세 번씩 신장투석을 받았다고 한다. 유족으로는 신정균·상균·명희·승리씨 등 2남 2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이며 발인은 19일 오전이다. 장지는 안성천주교 공원묘지로 결정됐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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