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배우 최은희씨가 16일 별세했다. 향년 92세. 그는 신장투석과 합병증으로 오랜 시간 투병생활을 해왔다.

최씨는 굴곡진 삶을 살았다. 경기도 광주의 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최씨는 자기주장을 내세우지 않고, 수줍음이 많아 ‘늘보’라는 별명을 달고 살았다. 이후 경성기예학교에 입학해 연기를 배운 뒤로는 무대에서 적극적인 성격을 갖게 됐다.

최씨는 연극배우로 활동하다 1947년 신경균 감독의 ‘새로운 맹세’로 영화계에 데뷔했다. 한국전쟁 중 부산에서 연극 공연을 할 당시 고(故) 신상옥 감독을 처음 만났다. 18세 때 촬영 기사와 결혼했지만 남편의 폭행으로 말미암아 이혼한 최씨는 “우리 평생 같이 영화 만듭시다”는 신 감독의 프러포즈를 받고, 54년 둘만의 결혼식을 치렀다.

1960~70년대는 배우로서의 최고 전성기를 누렸다. 하지만 배우로서의 특출함이 독이 됐다. 최씨는 1978년 북한공작원에 의해 홍콩에서 납치됐다. 영화광이던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뜻이 반영된 것이었다.

다큐멘터리 영화 ‘연인과 독재자’에서 북한에 납치된 신상옥 최은희 부부가 김일성(가운데)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 최은희(왼쪽)가 메릴린 먼로와 함께 있는 모습, 김정일이 최은희와 독대하는 장면(위부터 시계방향). 엣나인필름 제공

최씨를 찾기 위해 나선 신 감독마저 납치돼 이들 부부는 북한에서 8년간 머무르며 ‘탈출기’ ‘소금’ ‘돌아오지 않는 밀사’ 등의 영화를 찍었다. 특히 ‘돌아오지 않는 밀사’와 ‘소금’은 카를로비 바리 국제영화제와 모스크바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하기도 했다. 최씨는 ‘소금’으로 85년 모스크바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최씨는 생전 한 언론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과의 일화를 전하기도 했다. 그는 “김 위원장을 처음 만났을 때 ‘최 선생(최은희) 저(김정일) 어떻습니까. 저 난쟁이 똥자루 같지 않습니까’라고 말했다”면서 “강제로 잡아오긴 했지만 인간적인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또 “북한에 있을 때 (김 위원장이) 우리를 예술인으로 대우를 잘해줬고, 체제 찬양 영화 대신 예술영화를 만들게 해줬다”면서 “국제영화제에서 상을 탔을 때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유가 그리웠던 부부는 1986년 북한을 탈출했다. 김 위원장에 최대한 협조하며 신뢰관계를 구축한 이들은 틈이 생기자 오스트리아 빈에서 북한공작원들을 따돌리고 미국 대사관으로 피신했다. 이들은 신변 안전을 이유로 미국에 한동안 정착했다.

최씨는 2006년 4월 11일 신 감독을 먼저 떠나보냈다. 이후 최씨는 허리 수술을 받는 등 건강이 악화됐다. 숨지기 직전까지 일주일에 세 번씩 신장투석을 받았다고 한다. 유족으로는 신정균·상균·명희·승리씨 등 2남 2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이며 발인은 19일 오전이다. 장지는 안성천주교 공원묘지로 결정됐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