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12년만에 처음으로 가족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4박5일 사이판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파란 하늘이었다. 미세먼지 걱정 없이 두 딸을 마음 놓고 풀어놓았다. 인영이 마스크 씌우는 신경 쓸 일도 없었다. 인영이는 아픈 지 2년3개월 만에 처음으로 ‘마스크 프리’를 즐겼다.
첫 가족 해외여행에 설레기도 했지만 혹 먼 외국에서 열이 나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없지 않았다. 5일치 항암약과 함께 동네 소아과에서 예비용 감기약, 해열제, 지사제까지 챙겨갔다. 다행히 ‘물개’ 인영이는 첫날 밤 집에 가고 싶다고 한번 울먹인 것을 빼곤 잘 놀았다.
인영이는 사이판에서 가장 용감한 6살이었다.

하룻밤만 더 자자는 두 딸의 아우성을 뒤로한 채 귀국 비행기에 올랐다. 그러나 인천공항이 가까워질수록 사이판과 180도 다른 하늘색을 보고 우울해졌다. 공항에서 나와 가장 먼저 한 일은 인영이에게 다시 마스크를 씌우는 일이었다. 그리고 세종으로 가는 공항리무진 막차를 탔다. 두 아이를 가장 안전하다는 운전석 뒷자리에 앉혔다. 승객은 우리 가족과 젊은 남자 한명 뿐 이었다. 깜빡 졸다가 젊은 승객과 기사의 대화에 잠이 깼다. 남자는 운전석 뒤로 가서 나지막이 “기사님”하고 불렀고, 기사는 깜짝 놀라했다.
“기사님, 차가 많이 흔들리네요. 잠깐 조신 것 같은데 늦어도 되니 푹 쉬었다 가시죠.”
승객은 차분하고 공손했다.
그러나 기사의 반응은 수준 이하였다. 자기는 졸지 않았는데 왜 그러냐며 승객이 쉬다가라니 그리 할 텐데 출발하고 싶으면 얘기하라며 말을 비꼬았다.
취재를 하면서 거짓말하는 사람의 태도를 많이 봐왔다. 기사는 분명 졸았다. 졸지 않았으면 버럭 화를 냈을 일이고, 그렇게 비꼬면서 승객 탓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참다못해 끼어들었다.
“기사님, 제가 보기엔 조신 것 같은데 왜 승객 탓을 하시냐. 지금부터라도 안전하게 운전해 달라”고 했다.
그 뒤 한 시간은 공포버스였다. 기사는 혼잣말로 욕을 하면서 버스를 험하게 몰았다. 아이들의 안전이 걱정돼 한마디도 안하고 참았다. 버스 안 9시 뉴스는 서울과 평양 간 직통전화가 뚫린 소식을 전했다. 서울과 평양의 대화는 “서울은 날씨가 좋은데 평양은 어떠냐”로 시작됐다. 미세먼지로 뒤덮인 이 하늘을 좋은 날씨라고 표현하다니...
'물개' 이인영 선생.

기사의 욕설 섞인 혼잣말과 뿌연 창밖을 바라보며 우리 아이들이 사는 이 나라가 나쁜 공기와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일주일 새 뉴스는 쌓여 있었다. 김기식은 사퇴했고, 드루킹은 뉴스왕이, 조현민은 갑질의 여왕이 돼 있었다.
그러나 남북해빙 뉴스를 포함해 그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세월호 참사 4주년이 됐어도 우리 일상의 안전 불감증은 여전하고, 주말이 되어 아이들과 함께 자전거를 한번 타려해도 미세먼지를 체크해야 한다. 거대담론보다 중요한 것은 개개인의 행복이다. 그 행복들이 모여 ‘나라다운 나라’를 만드는 것일텐데 집에가는 길은 행복하지않았다.
두 딸들이 살 나라는 미세먼지 걱정없는 안전한 나라였으면 좋겠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두 딸은 집이 최고라며 방방 뛰었다. 그제야 긴장이 풀렸다.
해외여행을 갔다가 공항에 도착했을 때 방방 뛰며 즐거워지는 나라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프로야구 원년부터 응원한 팀이 연장전마다 깨질때 인영이에게 아빠팀이 져서 너무 슬프다했다. 인영이는 "그럼 잘하는 팀 응원하면 되잖아~"라는 현답을 내놨다. 아마도 '방방 뛸수있는 나라'로 바꾸는것은 응원하는 야구팀 바꾸기보다 더 어려울것이다. 그래도 두 딸이 사는 나라는 그런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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