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현의 두글자 발견-엄마] “딸아, 엄마가 미안해… 네 손을 놓아버렸어”

입양, 그리고 딸에게 보내는 속죄의 편지


김진아(가명·48)씨는 28년 전 입양 보낸 한나를 단 하루도 잊은 날이 없다. 그는 24살 때 한 남자를 사랑했고 아이를 갖게 됐다. 요즘 혼전임신이 혼수라는 말도 있지만, 당시는 주홍글씨와 같았다. 29살의 남자는 아기를 지우길 원했다. 그러나 김씨는 “아이의 생명을 지키리라” “해외입양을 보내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연락을 끊고 혼자 미혼모 시설에서 아이를 낳았다.

친권을 포기하지 않아도 아이를 위탁해줄 사람이 있었다면 ‘암흑기’를 견뎌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지금도 한다. 시설에 아이를 맡기려면 친권을 포기해야 했다. 어떻게든 아이를 키워보려 했으나 기댈 곳이 없었다. 아이를 입양 보낸 후 아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의 기억은 28년 전 아이를 보내던 그 순간에 머물러 있다.

지난 6일 대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씨는 아기 사진을 보여줬다. “눈이 크고 다리가 길어요. 예쁘죠? 목을 막 가누기 시작했을 무렵이에요.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어요.” 그는 다시 가정을 갖고 남매를 키우면서 한나 생각에 마음 아픈 날이 많았다. ‘이제 한나가 걷겠지.’ ‘아, 이제는 뛰어다니겠구나.’ ‘학교에 입학했겠지.’ ‘사춘기를 잘 넘겨야 하는데.’ ‘이제 수능을 보겠구나. 대학에서 전공은 뭘까.’ ‘결혼은 했을까.’ 이런 생각과 소망 앞에는 늘 공통적인 간절함이 있다. ‘우리 한나 슬픈 마음을 품지 않게 해주세요. 슬픔이 마음을 찌르지 않게 해주세요.’

28년 동안 단 하루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던 이름 ‘한나’. 믿음의 자녀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아기에게 지어준 이름이다. 그러나 입 밖으로 부를 수 없던 이름이었다. 그는 현재 한나를 찾고 있다. 그러나 수소문을 해도 찾을 수가 없다. 그는 한나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적은 편지를 내밀었다.

그리운 나의 딸
“…사랑하는 나의 딸 한나. 내가 지금 어떤 말을 해도 그건 변명밖에 될 수 없다는 거, 엄마는 잘 알고 있다. 어떤 경우로도 자식을 포기하는 일은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 길을 택한 거 이해해 달라고는 안 할게. 그런데 이것만은 말해주고 싶어. 그때 엄마는 너의 생명을 지울 수 없었고 그래서 어떻게든 생명을 지키고 싶어 숨어서 낳았고 해외입양을 보내지 않으려 끝까지 버티다 너를 조금이라도 좋은 환경에서 키우고 싶어 너의 손을 놓아 버리고 말았단다. 엄마를 이해해 달라고는 안 할게. 왜냐하면 시간이 흐를수록 너는 더욱 내 가슴 속에 파고들었고 그래서 하루도 잊을 수도 없었고, 후회도 수없이 했지만 다시 돌이킬 수 없었기 때문이란다. 내 사랑하는 딸 한나야. 내 딸 한나야. 엄마는 네가 너무 보고 싶단다. 멀리서라도 너를 한번 꼭 보고 싶단다. 하지만 이것이 이룰 수 없고 허락되지 않는 소망일지라도 엄마는 너를 잊지 않고 기도한다. 사랑하고 그리운 나의 딸 한나야.”

부모 자격 없는 엄마이지만 멀리서라도 보고 축복해주고 싶다. 만나게 되면 너를 싫어해서 버린 게 아니라고, 하루도 널 잊지 않고 기도하고 있었다고, 미안하다고 용서를 구하고 싶다. 입양 보낼 때 아이가 신앙 가정에서 성장할 수 있다면 자신은 괜찮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리라는 것은 몰랐고 계산하지도 않았다. 한나가 신앙가정에서 행복하게 크기만 바랐다. 지금처럼 친권 포기 안 하고 아이를 잠깐이라도 맡아줄 수 있고 정부에서 지원해줬다면 입양 보내지 않고 어떻게든 키웠을 것이다.

그는 지금 누군가 28년 전의 자신과 같은 상황에 있다면 꼭 아기를 키우라고 말해주고 싶다. “저 역시 경제적 여건만 됐으면 키웠을 거예요. 시선도 과거보다 나아지고 정부의 지원도 받을 수 있으니 아이의 손을 놓지 않길 바라요. 아이를 보낸 후 상실감은 평생을 갑니다. 해결할 수 없는 슬픔의 바윗덩이를 안고 살아야 해요.” 그의 눈 밑의 기미를 보고 친구들이 “왜 안 없애느냐”고 물으면 마음속으로 “이건 한나 자국이야. 어떻게 없애. 내가 무슨 양심이 있다고”라고 말한다.

생명을 지켜낸 용기
사람은 태어나서 ‘엄마’라는 말을 제일 먼저 배운다. 엄마란 단어는 힘겨운 순간을 지탱해 주는 커다란 힘으로 작용한다. ‘여자’는 자녀를 키우면서 ‘엄마’로 다시 태어난다. 아이를 출산하면 두뇌 기능은 물론 체력도 강해진다. ‘여자는 약하다. 그러나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은 문학적인 수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섭리다.

하나님은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정의를 행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여 그에게 떡과 옷을 주시나니”(신명기 10:18)란 말씀처럼 약자들을 돌보시고 붙드시는 성품이시다. 어머니의 사랑과 긍휼의 마음(모성)은 이런 하나님의 성품을 많이 닮았다. 어머니는 사랑의 근원으로서 하나님의 성품을 보여주는 존재여야 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미혼모 수는 2016년 기준 총 2만4000명이다. 그중 사회적 기반과 양육 능력이 부족한 10~20대 미혼모는 5356명으로, 미혼모 수의 약 22%를 차지하고 있다. 2016년, 해외로 입양된 아동의 97.9%가 미혼모의 아동이라는 통계는 우리 사회가 여전히 미혼모가 아이를 스스로 키울 수 없는 환경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미혼모가 된 사정은 저마다 다르다.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여전히 따갑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생명을 포기하지 않고 선택한 ‘용기 있는 엄마’라는 점이다. 우리 사회가 미혼모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홀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알면서도 배 속 아이에게 삶을 선물해 준 이들이다. 이들은 매 순간 홀로 선택의 갈림길에 선다. 운명처럼 찾아온 내 아이를 혼자서라도 키우고 싶지만, 엄마가 키우기보다는 다른 이에게 입양 보낼 것을 권하는 사회적 환경이 힘겹다. 대부분 미혼모라는 사실을 숨기고 들킬까 봐 전전긍긍하며 살아간다.


입양으로 아이를 잃은 엄마들은 일생을 가름하는 트라우마와 우울증, 자괴감과 자살충동, 자식의 생사 안위에 대한 염려와 그리움 등에 신음하지만, 사회가 보여주는 건 냉혹한 배척과 비난의 얼굴뿐이다. 아이 입양을 의뢰하고 무너져 내리는 걸음으로 돌아서는 미혼모의 심정을 돌아보지 않는다. 엄마의 온기를 아기에게 맘껏 전해주지 못하고 아기의 손을 놓았던 그들의 기억은 한순간에 머물러 있다.

“입양으로 아이를 잃은 경험은 아이를 죽음으로 잃은 것보다 더 고통스럽다. 죽음 또한 똑같이 끔찍하지만 죽음은 끝이 있고 슬픔을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아이를 입양으로 떠나보낸 엄마는 위로받지 못하며, 아기가 있었다는 것을 잊어야 하며, 자기 아이가 살아 있거나 행복하거나 건강한지에 대해 알 수가 없다.”(조솔·캐럴 윌슨 부터보의 ‘입양 치유’ 중에서)

입양 아동은 평생 ‘원초적 상처(primal wound)’로 파편화된 자신의 정체성을 수습하는 일에 몰두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점차 입양 아동과 입양 가족에 대한 전 생애적 서비스 제공의 필요성이 강조되지만, 입양으로 아이를 잃은 어머니에 대한 사회적 서비스는 논의조차 되지 않는다.

5월 11일은 ‘싱글맘의 날’이다. ‘싱글맘의 날’은 아동복지 최후의 보루인 입양을 활성화하기 위해서 선포된 ‘입양의 날’에 반대해 미혼모, 한부모, 해외 입양인 및 아동권리 옹호 단체들이 아동과 모성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만든 기념일이다. 이 땅엔 수많은 ‘한나 엄마’가 있을 것이다. 생명을 지켜낸 엄마들이 용기 있게 세상을 살아나가도록 격려해주는 사회가 돼야 한다. 평생 이별과 분리에 대한 트라우마로 힘들어하는 이들을 돕는 것이 ‘내 이웃을 사랑하라’는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이다.

미혼모가 아이를 양육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부터 만들어주어야
미국 미네소타주 연구(2013년)를 비롯해 몇몇 연구에 따르면 입양인의 자살률, 알코올·마약 중독, 성범죄율, 비혼율이 비입양인보다 4배가량 높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입양인 역시 정체성의 혼란과 내면의 상처로 힘들어하는 건 마찬가지다. 아이를 입양 보낼 수밖에 없던 생모 역시 평생 죄책감에 시달린다.

생모와 아이가 분리되는 그 지점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입양을 보낼 수밖에 없는 사회적 환경이 무엇인지 먼저 살펴봐야 한다. 여성이 24시간 아이를 돌보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없어 급격한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이 지점을 정부가 도와야 한다. 또 모든 책임이 여성에게 돌려지는 한국의 가부장적인 사회적 편견도 바뀌어야 한다.

미혼모에게 입양이 삶의 해답은 아니다. 아동이 친가족의 품을 떠나 입양을 가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이 답이다. 베이비박스에 버려지는 아이가 느는 것만 이슈화할 일이 아니다. 아이를 키우고 싶어 하는 미혼모들이 아이를 양육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먼저다. 차선책으로 입양이 이루어져야 한다. 미혼모 여성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곳이 복지국가이다.

해외 입양인들의 한국 방문과 생활을 돕기 위한 비영리 게스트하우스 ‘뿌리의 집’을 운영하는 김도현 목사는 “미혼모들이 아이를 포기하는 이유는 다른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라며 “국내외 입양 아동의 90% 가까이가 미혼모 가정의 아이인데 입양만 독려한다면 문제를 푸는 순서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입양 기관이 운영하는 미혼모 시설에서 양육을 결심하는 미혼모 비율이 30%가량이었던 반면, 양육을 지원하는 미혼모 시설에서는 80%에 달했습니다.” 그는 생모에게 양육의 선택권을 충분히 제공한 후, 그들이 주체적 결단과 최선의 선택으로서 아이의 양육을 포기할 때, 입양 부모가 나서서 그 아이들을 거두자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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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이지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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