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키우며 영성도 잘 키우렵니다”

육아·신앙 사이 엄마 크리스천은 고민 중

#크리스천 김모(30)씨는 산후 우울증을 겪고 있다. 나름 커리어우먼인데 육아에 몰두하다 보니 생긴 증세다. 이렇게 아이 키우는 일이 힘든 줄 상상도 못 했다. 예전엔 안 꾸미고 교회 오는 아이 엄마들을 보면 게으르다 싶었다. 하지만 이제는 꾸미고 다니는 엄마들이 신기할 뿐이다. “출산의 고통도 있지만 육아의 고통이 더 큰 것 같다. 문제는 아이를 뒷바라지하면서 보내야 할 시간이 앞으로도 계속된다는 거다.” 김씨의 한숨 배인 말이다.

#박모(32) 집사는 요즘 목사님 설교가 귀에 잘 안 들어온다. 교회 자모실에서 갓난아이를 안고 예배를 드리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울고 떠드는 소리에 정신이 없다. 육아 현실은 소위 ‘독박 육아’다. 애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게 주위 분위기다. 교회 어른들은 자식 많이 낳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애국자라고 한다. 하지만 절대 둘째는 낳지 않을 작정이다. 박씨는 “우리나라에선 여러모로 애 안 낳는 것이 낫다.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고 싶을 정도다. 물론 아이를 사랑하지만…”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지난 6일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 큰사랑교회의 어린이·어버이주일 예배 모습. 이 교회 엄마들이 유리벽으로 된 자모실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예배드리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육아 스트레스에 영성마저 소진되고 있습니다.”

자녀출산 후 겪는 자매들의 볼멘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나오고 있다.

예쁜 아이를 낳고 기르는 기쁨이 있지만 동시에 나 자신은 무시당하는 듯한 힘든 경험을 하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은 신앙생활에 영향을 미친다. 교회 자매들은 어린 자녀를 뒀을 때를 ‘영적 암흑기’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때 교회봉사를 열심히 하던 자매라도 출산 후엔 자모실에서 꼼짝없이 자녀의 필요를 채워야만 한다.

아이가 감기라도 걸리면 교회 가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 자녀 건강도 문제거니와 다른 교인과 자녀에게 민폐를 끼칠 수 있어서다.

지난 6일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 큰사랑교회. 예배당 뒤 20㎡ 남짓한 자모실은 자녀와 함께 예배드리는 엄마들로 북적였다. 아이들 입에는 사탕이 물려 있었다. 아이들이 떠드는 것을 방지해야 했기 때문이다.

장난감을 한 손에 움켜쥔 한 아이는 엄마에게 이것저것 물으며 지적 호기심을 채우고 있었다. 제법 키가 큰 아이는 다른 아이의 사탕을 빼앗아 울게 만들었다. 예배 도중 한 여아가 난데없이 ‘앙’ 하고 울기 시작했다.

엄마는 우는 아이를 달래느라 진땀을 뺐다. 젖을 먹이거나 용변을 치울 때도 그랬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예배가 끝났다. 대부분 교회 자모실에서 펼쳐지는 주일 풍경이다.

딸 둘을 키우는 신모(31)씨는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했던 시절이 그립다고 했다.

신씨는 “요즘 신앙성장이 제로”라고 토로했다. 그는 “자모실에서 아이를 돌보다 보면 설교를 제대로 듣지 못하기 일쑤다. 설교 20%나 들을까”라고 털어놨다.

또 “주일날 교인들이 ‘아이가 예쁘다’고 할 땐 힘이 나지만 예전처럼 목사님 말씀으로 은혜를 받지 못하니 나 자신이 초라해진다”고 했다.

이처럼 일하며 육아까지 떠안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실제 출산을 포기하는 여성이 늘고 있다. 여성의 경제활동과 육아는 공존할 수 없는 것일까.

출산을 꺼리는 가장 큰 이유는 ‘성차별’이다. 부부가 함께 일해도 육아는 여성 몫으로 떠넘기는 분위기가 출산을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만든 것이다.

출산은커녕 결혼까지 포기하겠다는 자매도 적지 않다. 자아실현의 기회를 뒤로 한 채 엄마로서의 책임을 져야 하고 외벌이로는 허리띠까지 졸라매야 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큰 탓이다.

서울 충신교회 아기학교 가족들이 지난달 28일 봄 학기 ‘온가족 체험마당’ 행사에서 율동에 맞춰 찬양을 부르고 있다. 유영대 기자

교회 자매들이 이런 암흑기를 헤쳐 나가기 위해선 무엇보다 엄마라는 이유로 받은 마음의 상처를 먼저 치유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아가페 태교 성경’의 공동저자인 송세라(일산사랑의교회) 사모는 “여성들은 어머니와 아내로 살아오는 동안 자신의 가치를 상실해간다”며 “특히 산후나 중년 여성은 존재감의 위기를 겪기도 한다. 여성으로서의 정체성 확립과 아내·어머니로서의 역할과 사명을 재조명하는 자존감 회복이 필요하다”고 했다.

남편의 책임과 아내에 대한 사랑을 강조하는 의견도 줄을 이었다. 큰사랑교회 김영수 목사는 “부부의 결실인 아이를 함께 책임지고 사회가 그런 인식을 공유하는 것이 아이 낳고 싶은 나라와 가정을 만드는 첫걸음”이라고 했다.

이효상 교회건강연구원장은 “남편은 아내의 연약함과 살림살이 고충을 알고 특히 아이에게 관심을 갖고 함께 놀아주라. 부부 사이가 좋으려면 함께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하나님 말씀으로 위로받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서울 충신교회 영아부 담당 박영란 전도사는 “출산 후 힘든 점을 하나님께 아뢰고 성경 말씀으로 위로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교회가 육아여성을 위한 프로그램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미래를 책임질 아이들과 이 아이들을 양육하고 기르는 엄마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국교회는 현재 임산부학교와 아기학교, 아가방(시간제 탁아 돌봄), 무지개교실(주말아동교육 프로그램), 어머니학교, 좋은 부모학교, 부모초청 예배, 어머니기도회 등을 열고 있다.

전문가들은 ‘아기학교’ 운영이 좋은 대안이라고 입을 모았다. 아기학교란 아기의 첫 사회생활을 도우며 엄마와 함께 하나님 말씀을 배우고 함께 활동하는 교회학교 유아교육 프로그램이다.

서울 우리가꿈꾸는교회 조기연 목사는 “교회가 엄마와 아기들이 함께 활동하고, 함께 놀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장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조 목사는 “어린 시절 엄마의 손을 잡고 아기학교에 다닌 아기들은 평생 하나님의 은혜와 교회 공동체의 사랑을 기억하며 살아갈 것”이라고 했다.

인근 교회 아기학교 프로그램에 참석하는 주부 이주연(33)씨는 “아기학교를 통해 육아 스트레스를 날린 것은 물론 신앙을 돌아보게 됐다. 특히 예수사랑을 묵묵히 실천하는 봉사자들을 지켜보면서 앞으로 봉사하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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