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이 16일 발표한 담화문은 1700자가 넘는 긴 글이었다. 미국을 향해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워싱턴 외교안보라인의 북핵 관련 발언을 열거하며 북미정상회담을 ‘재고려’할 수도 있다고 했다. 6월 12일로 확정된 사상 초유의 회담을 앞두고 부정적인 기류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러나 이를 ‘회담 파기’로 가려는 수순으로 보기엔 어색한 대목이 많다. 김 부상의 담화문은 매우 구체적이다. ‘리비아식 핵폐기’를 언급하며 “우리는 처참한 말로를 겪은 리비아와 다르다”고 강조했고,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콕 집어 거론하며 “그에 대한 거부감을 숨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더 구체적인 것은 이 문장이었다.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 기간 조미대화가 진행될 때마다 볼턴과 같은 자들 때문에 우여곡절을 겪지 않으면 안되었던 과거사를 망각하고 리비아 핵포기 방식이요 뭐요 하는 사이비 우국지사들의 말을 따른다면, 앞으로 조미수뇌회담을 비롯한 전반적인 조미관계 전망이 어떻게 되리라는 것은 불 보듯 명백하다.”

이것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향해 “볼턴의 방식을 택하지 말라”고 촉구하는 내용이다. 이는 담화문의 마지막 단락과 맥이 닿아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조미관계 개선을 위한 진정성을 가지고 조미수뇌회담에 나오는 경우 우리의 응당한 호응을 받게 될 것이지만, 우리를 구석으로 몰고 가 일방적인 핵포기만을 강요하려든다면 우리는 그러한 대화에 더는 흥미를 가지지 않을 것”이라면서 ‘북미관계 개선의 진정성’을 주문했다.

김계관 부상의 담화는 미국과 사전 대화, 물밑 대화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조율이 잘 안 되는 부분을 구체적으로 적시해 공개한 모양새를 가졌다.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우리는 이러이러한 부분에 불만이 있으니 잘 판단하라는 투다. 북한은 이날 오전 10시로 예정됐던 남북 고위급회담을 갑작스럽게 무기한 연기한 뒤 김계관 담화문을 발표했다. 고위급회담 연기 사유는 이로써 분명해졌다. 미국에 보내는 북한의 메시지였다.

김 제1부상은 담화에서 “우리를 구석으로 몰고 가 일방적인 핵포기만을 강요하려 든다면 우리는 대화에 더는 흥미를 가지지 않을 것”이라면서 “다가오는 조미(북미)수뇌회담에 응하겠는가를 재고려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조미수뇌회담을 앞둔 지금 미국에서 대화 상대방을 심히 자극하는 망발을 하는 것은 극히 온당치 못한 처사”라며 “트럼프 행정부가 조미관계개선을 위한 진정성을 가지고 조미수뇌회담에 나오는 경우 우리의 응당한 호응을 받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담화 중 ‘미국이 우리를 구석으로 몰고 간다’는 표현은 물밑협상 진행 상황을 에둘러 언급한 것으로 분석된다. 볼턴 보좌관이 언론 인터뷰를 통해 공개한 “북핵을 테네시주 오크리지로 가져와야 한다” 등의 대목은 사전협상에서 북측에 제안한 것일 수 있다. 북한은 이를 리비아식 핵폐기로 받아들이며 이번 담화에서 “우리는 리비아가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잘 풀리지 않는 물밑협상의 일부를 수면 위로 꺼내 국면을 바꿔보려 한다는 관측이 가능하다.

◆ 김계관 담화문 전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 김정은동지께서는 조미관계의 불미스러운 력사를 끝장내려는 전략적결단을 내리시고 우리 나라를 방문한 폼페오 미국무장관을 두차례나 접견해주시였으며 조선반도와 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하여 참으로 중대하고 대범한 조치들을 취해주시였다.

국무위원회 위원장동지의 숭고한 뜻에 화답하여 트럼프대통령이 력사적뿌리가 깊은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조미관계를 개선하려는 립장을 표명한데 대하여 나는 긍정적으로 평가하였으며 다가오는 조미수뇌회담이 조선반도의 정세완화를 추동하고 훌륭한 미래를 건설하기 위한 큰걸음으로 될것이라고 기대하였다.

그런데 조미수뇌회담을 앞둔 지금 미국에서 대화상대방을 심히 자극하는 망발들이 마구 튀여나오고있는것은 극히 온당치 못한 처사로서 실망하지 않을수 없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볼튼을 비롯한 백악관과 국무성의 고위관리들은 《선 핵포기,후 보상》방식을 내돌리면서 그 무슨 리비아핵포기방식이니,《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수 없는 비핵화》니,《핵,미싸일,생화학무기의 완전페기》니 하는 주장들을 꺼리낌없이 쏟아내고있다.

이것은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것이 아니라 본질에 있어서 대국들에게 나라를 통채로 내맡기고 붕괴된 리비아나 이라크의 운명을 존엄높은 우리 국가에 강요하려는 심히 불순한 기도의 발현이다.

나는 미국의 이러한 처사에 격분을 금할수 없으며 과연 미국이 진정으로 건전한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조미관계개선을 바라고있는가에 대하여 의심하게 된다. 세계는 우리 나라가 처참한 말로를 걸은 리비아나 이라크가 아니라는데 대하여 너무도 잘 알고 있다. 핵개발의 초기단계에 있었던 리비아를 핵보유국인 우리 국가와 대비하는것 자체가 아둔하기 짝이 없다.

우리는 이미 볼튼이 어떤자인가를 명백히 밝힌바 있으며 지금도 그에 대한 거부감을 숨기지 않는다. 트럼프행정부가 지난 기간 조미대화가 진행될 때마다 볼튼과 같은자들때문에 우여곡절을 겪지 않으면 안되였던 과거사를 망각하고 리비아핵포기방식이요 뭐요 하는 사이비《우국지사》들의 말을 따른다면 앞으로 조미수뇌회담을 비롯한 전반적인 조미관계전망이 어떻게 되리라는것은 불보듯 명백하다.

우리는 이미 조선반도비핵화용의를 표명하였고 이를 위하여서는 미국의 대조선적대시정책과 핵위협공갈을 끝장내는것이 그 선결조건으로 된다는데 대하여 수차에 걸쳐 천명하였다. 그런데 지금 미국은 우리의 아량과 대범한 조치들을 나약성의 표현으로 오판하면서 저들의 제재압박공세의 결과로 포장하여 내뜨리려 하고있다.

미국이 우리가 핵을 포기하면 경제적보상과 혜택을 주겠다고 떠들고있는데 우리는 언제한번 미국에 기대를 걸고 경제건설을 해본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런 거래를 절대로 하지 않을것이다.

전 행정부들과 다른 길을 걸을 것이라고 주장하고있는 트럼프행정부가 우리의 핵이 아직 개발단계에 있을 때 이전 행정부들이 써먹던 케케묵은 대조선정책안을 그대로 만지작거리고있다는것은 유치한 희극이 아닐수 없다.

만일 트럼프대통령이 전임자들의 전철을 답습한다면 이전 대통령들이 이룩하지 못한 최상의 성과물을 내려던 초심과는 정반대로 력대 대통령들보다 더 무참하게 실패한 대통령으로 남게 될 것이다.

트럼프행정부가 조미관계개선을 위한 진정성을 가지고 조미수뇌회담에 나오는 경우 우리의 응당한 호응을 받게 될것이지만 우리를 구석으로 몰고가 일방적인 핵포기만을 강요하려든다면 우리는 그러한 대화에 더는 흥미를 가지지 않을것이며 다가오는 조미수뇌회담에 응하겠는가를 재고려할수밖에 없을것이다.

주체107(2018)년 5월 16일

평 양(끝)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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