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수검사 시술에 실패한 레지던트가 흘리고 간 종이. 언제까지 우리 아이들이 마루타가 되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서울성모병원 소아암병동은 문재인 대통령이 방문한 곳이다. 그만큼 소아백혈병에 있어서는 최고의 수준과 시설을 자랑하는 병원이다. 인영이는 오늘부터 3일간 그곳에서 집중항암치료를 시작했다.

집중항암에서 중요한 치료는 척수시술이다. 허리에 바늘을 꼽아 척수 액을 뽑아 암세포가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고, 예방항암제를 투약하는 시술이다. 인영이는 오늘 척수검사를 실패했다. 척수검사 실패는 오늘이 처음이 아니다. 소아백혈병 최고의 병원에서 이런 실수가 나오는 이유는 간단하다. 시술자가 3개월마다 교체되는 레지던트이기 때문이다.

오늘 인영이 시술을 위해 온 레지던트는 처음 시술 때 바늘을 꼽았지만 척수 액을 빼내지 못하고 애꿎은 인영이 피만 흘리게 했다. 다시 시도하려 새 바늘을 가져왔을 때 아내가 시술을 중단시켰다. 과거 시술 실패 때 봤던 인영이의 공포의 눈빛을 봤기 때문이다.

아내는 화를 내지 않고 내일 ‘손바꿈’을 요구했다. 손바꿈은 시술자를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레지던트는 “내일 해도 제가 할 건데요”라며 기분 나쁜 표정을 지으며 갔다.

시술이 실패한 뒤 수간호사에게 시술 동의서를 보여줄 것을 요구했다. 아내가 사전에 동의서에 사인할 때 시술 주취의 란은 공란이었다. 그 공란에는 이모씨라는 이름이 적혀있었다. 이모씨는 처음 보는 이름이다. 우리가 아는 한 주치의는 매주 인영이를 진료하고 처방해주는 선생님이다. 수간호사에게 분명히 내일 시술에는 이 레지던트에 대한 거부의사를 표명했고, 전문의의 시술을 요구했다.

최근 PA의 유령시술이 문제가 됐다. PA(physician assistant) 의사보조로 주로 간호사들이다. 대부분의 대학병원에 존재하는 PA는 약 처방부터 간단한 수술까지 의사의 업무를 대신한다. 하지만 현행법상 PA는 불법이다. 그들은 유령이다. 병원은 말한다. 의사 인력이 부족해 어쩔 수 없다고. 보건복지부 역시 알면서 눈을 감고 있다. 인영이는 오늘 유령시술을 받았다. 시술동의서에는 분명히 주치의가 하도록 돼 있는데 오늘 시술을 한 의사는 처음 보는 레지던트였다.

의사들은 얘기한다. 척추시술은 간단해 레지던트들도 쉽게 할 수 있다고. 하지만 인영이는 벌써 3번째 실패를 겪었고, 그때마다 우리 부부와 인영이는 극심한 트라우마를 겪는다. 소아암 아이들은 충분히 아픔을 겪을 만큼 겪었다. 레지던트들에게는 1번의 실수고, 자신들이 기량을 높이는 기회일지 몰라도 우리 아이들에게는 평생의 아픔일 수 있다. 환자는 을이 아니다. 의사라는 이유만으로 의료소비자를 자신들 마음대로 선택하게 해서는 안 된다. 의사 인력이 부족하다면 10년 넘게 동결된 의대 정원을 늘려 척수 시술을 전문적으로 할 전문의를 만들면 된다. 우리 아이들은 마루타가 아니다.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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