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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선 사법부 독립, 뒤에선 판결 거래… 양승태 수사 받을까

사진=뉴시스

“정치적 세력이 침투할 틈이 조금이라도 허용된다면 어렵사리 이뤄낸 사법부 독립은 무너지고 민주주의는 후퇴할 것입니다”

퇴임식에서 사법부의 독립을 부르짖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재판 판결을 두고 박근혜정권과 거래를 시도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특별조사단(단장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이 25일 발표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양 전 대법원장 재임 시절 대법원은 박근혜정권 입맛에 맞는 판결을 다수 유도하고, 대가로 얻을 수 있는 것들을 따져 본 것으로 조사됐다.

행정처 기획조정실이 2015년 7월 작성한 ‘현안 관련 말씀 자료’ 문건에는 “사법부는 그동안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해 왔다”왜곡된 과거사나 경시된 국가관과 관련된 사건의 방향을 바로 정립했다. 과거사 정립, 자유민주주의 수호 관련 판결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자평이 담겼다.

이는 박근혜 정부의 보수 코드에 맞춰 사법부의 판결 방향을 세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대법원은 실제로 2013~2015년 과거사 피해자들의 국가 배상 청구 기간과 범위를 아주 좁게 제한하는 판결을 연이어 내놨다. 박정희정권 당시 대통령 긴급조치 사건에 대해서도 “고도의 정치행위이므로 국가가 배상할 필요가 없다”고 판결했다.

행정처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세력에 단호히 대처했다”며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내란선동 사건, 전교조 교사 빨치산 추모제 참석 사건 등의 유죄 판결을 거론했다.

경제 사건에 대해서도 “단순히 법리적 검토뿐만 아니라 국가경제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고려했다”며 통상임금 사건, KTX승무원 사건 등을 지목했다.

사진=뉴시스

박근혜정부의 국정 철학에 맞는 판결을 통해 대법원이 청와대와 거래를 시도했다는 정황도 나왔다.

양 전 대법장은 자신의 숙원 사업인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법을 흥정의 수단으로 삼았다. 행정처가 만든 ‘상고법원 관련 BH(청와대) 대응전략’ 문건에는 “발상을 전환해 비서실장, 특보를 설득·활용하는 우회 전략”이 필요하다고 적혀있다. 구체적인 방법도 존재했다.

행정처는 “주요 관심사항 관련 원론적 차원에서의 법원의 협조 노력 또는 공감 의사 피력”이라는 방안을 세웠다.

삼권분립을 심각하게 훼손한 양 전 대법원장을 법정에 세울 수 있을까. 양 전 대법원장의 행위에 대한 법리적 판단은 엇갈리는 상황이다.

특조단은 “직권남용죄 적용에는 논란이 있고, 업무방해죄는 성립되기 어렵다. 그 밖의 사항도 뚜렷한 범죄 혐의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사법 독립을 침해한 책임을 형사적으로 묻긴 어렵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법원 산하 사법정책연구원 연구위원으로 있는 차성안(41·사법연수원 35기)는 “행정부에서 이런 식의 조직적 사찰행위가 일어나 직권남용 등의 죄로 기소됐을 때 무죄를 선고할 자신이 있느냐”며 법관 동향파악 및 재판 개입 사건에 연루된 전·현직 법원행정처 관계자들을 고발하겠다고 전했다.

한편 SBS 보도에 따르면 양 전 대법원장이 특별조사단의 조사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셀프 조사의 한계가 드러나며 법조계 안팎에서 강제수사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김명수 대법원장이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를 두고 귀추가 주목된다.

서울중앙지검은 양 전 대법원장 등에 대한 시민단체의 고발장을 지난해부터 수차례 접수했지만 “사법부 자체 조사 결과를 우선 보겠다”며 한발 물러나 있는 상황이다.

최민우 기자 cmwoo1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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