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병교육대의 마지막 코스는 밤샘 행군이었다. 훈련병들에게 가장 두려운 코스였다. 하늘같았던 조교는 전날밤 퍼지지 않고 행군을 무사히 마치는 비법을 알려줬다. 바로 앞 전우의 군화 뒤꿈치만 보고 걸으며 눈을 들지 말라는 것. 비법은 간단했지만 정말 효과가 있었다. 가파른 오르막길도, 어두운 밤길도 느낄 새 없이 새벽 동이 터오고 20km 행군은 무사히 끝났다.

인영이 발병 초기 몇 달 동안은 2년9개월이라는 힘든 치료를 생각하면 암담했다. 그때 생각난 것이 뒤꿈치만 보고 걸으라는 20년 전 조교의 말이었다. 지금껏 그런 마음가짐으로 살았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고개를 들어 행군 성공을 축하해주는 군악대의 모습이 보이는 듯 싶다.
유치원 등원길. 남들보다 1시간 늦게 가고, 1시간 일찍 온다.

지난주, 인영이의 8차 집중항암치료가 끝났다. 이제 3개월 뒤 마지막 9차 치료를 받고, 최종 골수·척수검사에서 이상소견이 발견되지 않으면 인영이 치료는 종결된다. 물론 최종 완치 판정은 치료종결 후 5년 뒤에야 이뤄지겠지만 항암약과 척수주사에서 해방된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하다. 오늘 병원을 다녀온 인영이는 수치가 좋아 3주간의 휴가를 받았다. 인영이가 아픈 이후 3주 동안이나 병원을 안 가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세종터미널에 마중을 나가 마주한 엄마와 인영이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환했다.

지난주 인영이 치료가 끝나고 ‘나는 아빠다’ 글들을 모아봤다. 원고지 900매. 웃고 울다가, 기쁘면서 때로는 분노하면서, 페이스북을 통해 18만자의 글자를 쏟아냈다. 하나하나 읽으며 출판사에 보낼 출간의뢰서를 쓰고 있다. 인영이가 지금껏 ‘저서 하나 없는’ 기자 아빠에게 또 하나의 선물을 주려한다.

2년6개월 동안 인영이는 참 많이 변했다. 처음 무균실에 입원했을 때 “아빠, 빠방(타고 집에가자)”만 말 할 줄 알던 인영이는 오늘 진료실에서 교수님한테 “아, 내일 유치원 가기 싫다”고 푸념을 했단다. ‘기적의 한글학습’ 책 때문인지 한글도 독학해 프로야구 중계에 잡힌 진라면 광고판을 또박또박 읽게 됐다.
제대로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읽고 쓸줄 아는 인영이. 머리는 엄마 닮고 노는거 좋아하는건 아빠 닮았다.

가을이 오면, 인영이를 사랑하고 기도해준 분들을 초대해 잔치를 할 생각이다. 2년 전 겨울 정부세종청사에 인영이를 위한 헌혈차가 왔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꿈꿨던 일이었다. 그때는 ‘정말 그날이 올까’라고 생각도 들었는데 어느새 아내와 잔치 장소를 고민하고 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잔치에 꼭 오셔야 할 분들이다. 잔치 기념품은 이기자 유일한 저서 ‘나는 아빠다’일 것이다.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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