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은 투표 이틀 전인 11일 “(한국당 지지율이) 가파르게 치고 올라가고 있다”고 자평했다. 최종 판세를 예측하면서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는 ‘4+알파’, 광역단체장 선거는 ‘6+알파’”를 예상하기도 했다.

한국당의 호기(豪氣)는 얼마 가지 못했다. 출구조사 결과부터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이 예상됐다. 17곳 중 14곳의 광역단체장을 휩쓴다는 예측이었다. 개표 과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재보선도 12곳 중 10곳 당선을 거의 확정지었다.

민주당은 전통적인 약세 지역이던 PK 지역에 당당히 입성했다. 수도권 3곳도 모두 승리로 이끌었다. 1995년 민선 지방선거가 시작된 이후 20여년 만의 최대 압승이다. 무엇이 이런 결과를 만들어냈을까. 3가지 요인이 꼽힌다.


① ‘평화로 가는 길’ 열어준 유권자

지방선거를 앞둔 한반도에는 평화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었다. 몇 달 전만 해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남과 북, 미국과 북한의 역사적 장면이 연출됐다. 이런 분위기는 민주당 ‘압승’의 최대 동인이 됐다. ‘한반도 평화’를 염원하는 유권자들은 보란 듯이 문재인 정권에 힘을 실어줬다.

4월 27일, 남과 북은 판문점에서 두 손을 맞잡았다. 지난해 살얼음판 같은 위기 국면을 아슬아슬하게 보냈던 두 정상은 포옹을 나눴고 농담을 건넸다. 함께 공연을 관람봤고 술잔도 기울였다.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던 양측은 이제 한목소리로 ‘평화’를 말하고 있다. 원하면 언제든 통화를 할 수도 있는 사이가 됐다.

지난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 역시 한반도 평화를 향한 거대한 첫 걸음으로 평가된다. ‘세기의 담판’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관계 정상화’를 알리는 합의문에 서명했다.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비핵화 및 체제보장 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하기로 마음을 모았다.


② 70~80% 지지율 고공행진… ‘역대급 대통령’

냉랭하기만 했던 남북 관계에 불고 있는 따뜻한 바람의 주역은 문재인 대통령이다. 문 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 개최를 검토하면서 ‘남북 문제의 특수성’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국제관계의 기본 원칙은 ‘기브 앤 테이크’다. 상대국이 잘해주면 우리도 보답하고, 뭔가 받으려면 나도 줘야 한다. 하지만 남북 관계는 조금 달랐다. 민족 내부 문제이자 상대는 ‘북한’이라는 아주 특이한 케이스여서 늘 이 상식을 벗어나 움직이곤 했다. 문 대통령은 남북 관계를 ‘유리잔’처럼 조심스럽게 다뤘다. 마침내 정상회담을 성사시켰고 ‘한반도 비핵화’ 등이 담긴 판문점 선언도 이뤄냈다.

문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 개최의 숨은 주역으로 꼽힌다. ‘한반도 운전자론’을 내세우면서 북미 간 중재 역할을 자처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결단이 가장 직접적인 요소였지만 회담이 좌초 위기에 놓였을 때 문 대통령은 양쪽을 오가며 중재에 나서 두 사람을 만나게 했다.

이런 상황에 대한 유권자의 평가는 지상파 3사가 문 대통령 국정 평가를 물은 ’심층 출구조사’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당선 순간부터 지금까지 70%를 웃도는 ‘역대급’ 지지율을 보여왔던 문 대통령이 이번에 ‘더 높은’ 기록을 세웠다.

‘매우 잘하고 있다’는 응답이 33.3%, ‘대체로 잘하고 있다’가 46.9%를 기록해 긍정 평가가 80.2%나 됐다. 또 ‘정부와 여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의견이 64.2%로 ‘정부와 여당을 견제해야 한다’는 의견 25.8%보다 배 이상 많았다.

문 대통령 취임 후 대면조사를 통한 전국단위 국정지지율 조사 결과가 집계된 것은 처음이었다. 야권의 여론조사 불신론과 함께 제기됐던 ‘지지율 거품’ 논란은 ‘대면조사’로 이뤄진 이번 조사에서 깨끗하게 불식됐다.


③ 홍준표 ‘닥치고 반대’에 ‘반대표’를 던진 국민

민주당 압승을 ‘열심히 도운’ 또 다른 인물은 홍준표 한국당 대표였다. 선거 기간 내내 계속된 ‘막말’ 논란은 유권자가 한국당에 등을 돌리게 할 뿐 아니라 오히려 민주당에 힘을 실어주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돌출행보로 끊임없이 이슈를 몰고 다녔지만 판세에는 역효과였다. 심지어 “홍준표 미워서 한국당 못 찍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위장평화쇼’ 발언이 대표적 막말로 지적된다. 홍 대표는 4월 27일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 정치권이 한 목소리로 환영 입장을 냈을 때도 “북핵 폐기는 한 마디도 꺼내지 못했다”며 폄하했다. 당내에서조차 “지나치게 민심과 괴리된 발언”이라고 조심스러워했다.

지난달 초 경남 창원에서 열린 한국당 필승 결의대회에서 자신을 규탄하는 시위대를 보며 “창원에 빨갱이들이 많다. 성질 같아서는 두들겨 패버리고 싶은데…”라고 말하기도 했다. ‘당 대표’의 발언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말이었다.

‘홍준표 패싱’ 분위기는 이렇게 시작됐다. 홍 대표 막말이 연일 이슈가 되면서 지방선거에 출마한 후보들 사이에서 홍 대표의 지원 유세를 피하는 기류가 형성됐다. 그러자 지난 3일 돌연 유세 중단을 선언하면서 “내가 굴복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선거에 도움이 된다”면서 한풀 꺾인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닷새 후인 8일 “상황이 바뀌었다”며 유세를 재개했고 곧장 ‘말썽’을 부렸다. 사전투표에서 “교육감은 박선영 후보를 찍었다”고 거침없이 말하면서 ‘선거법 위반’ 논란에 휩싸였다.

홍 대표는 이번 지방선거로 정치인생 최대 위기를 맞았다. 자유한국당은 선거 사상 최악의 참패를 했다. 그를 향한 책임론이 거세게 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상황을 아는 그는 대표직 사퇴를 시사했다. 14일 오후 거취를 표명키로 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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