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가 이렇게 매서운 회초리를 든 적은 없었다. 부산·울산·경남도, 강남·서초·송파도 자유한국당이 오랜 기간 당연시했던 표를 주지 않았다. 한반도 평화 기대감과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신뢰가 선거판을 지배했지만 결과로 나타난 표심의 가장 깊숙한 곳에는 ‘한국당 심판’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한국당은 이런 바닥민심의 변화를 눈치 채지 못했다. 특히 홍준표 대표가 그랬다. 선거판에서 수십년을 보낸 이 노련한 정치인은 자신이 택한 구도와 전략에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올 때마다 “그래? 선거 한 번 해봅시다. 어찌 되나 한 번 봅시다” 하면서 자신의 길을 고집했다.

그것을 유권자는 ‘닥치고 반대’ ‘반대를 위한 반대’라고 이해했다. 그리고 회초리를 들었다. 홍 대표는 비참하게 패했다. 스스로 가장 아픈 대목은 ‘선거판을 전혀 읽지 못했다’는 점일 테다. 30년 경륜에서 나온 판단은 ‘아집’이 되고 말았다. 그는 왜 민심을 읽어내지 못했을까. 어쩌면 이것은 한국 정치의 고질적 행태, 상대를 공격하고 반대하고 깎아내려야 내가 산다는 ‘이분법 정치’에 종언을 고할 때가 왔음을 뜻하는 것일 수 있다.

홍 대표는 6·13 지방선거로 정치인생 최대 위기를 맞았다. 그가 이끈 당은 지방선거 사상 최악의 참패를 했다. 패인 중 하나는 바로 ‘홍준표’였다. 선거를 앞두고 특유의 직설화법과 돌출행보로 끊임없이 구설에 올랐다. 이슈를 던진 게 아니라 스스로 이슈가 됐다. 이것이 지방선거 판세에 매우 심각한 악영향을 끼쳤다고 당 안팎에선 분석하고 있다. “홍준표 미워서 한국당 못 찍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렇게 된 원인 중 하나는 ‘홍준표의 입’이었다. 선거 기간 내내 계속된 ‘막말’ 논란은 유권자를 등 돌리게 했다.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위장평화쇼’ 발언이 대표적 사례였다.

홍 대표는 지난 4월 27일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 정치권이 한 목소리로 환영 입장을 냈을 때에도 “북핵 폐기는 한 마디도 꺼내지 못했다”며 깎아내렸다. 이후에도 “북한 김정은과 남측 주사파 사이에 숨은 합의가 있다”는 등 대화 기류에 찬물을 끼얹는 발언을 쏟아냈다. 당내에서조차 “지나치다”는 우려가 컸다.

지난달 초에는 경남 창원에서 열린 필승 결의대회에서 자신을 규탄하는 시위대를 보며 “창원에 빨갱이들이 많다. 성질 같아서는 두들겨 패버리고 싶은데”라고 했다. 자신의 백의종군을 촉구한 정우택 전 원내대표를 향해 “개가 짖어도 기차는 간다”며 거칠게 비난했다.

이런 ‘말’이 문제가 된 것은 단순히 거칠어서가 아니었다. 국민의 생각과 동 떨어진 것이었고, 국민은 너무나 오랫동안 지켜봐온 ‘닥반’ 행태를 반복하는 그에게 염증을 냈다. 거대한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은 정치인의 역량이지만, 거대한 변화를 감지하는 것은 정치인에게 꼭 필요한 기본 자질이다. 국민은 한반도의 패러다임 변화를 예감하고 기대와 지지를 보냈는데, 홍 대표는 그 변화를 부정하는 말과 행동으로 일관했다.

판을 읽지 못한 홍준표의 실패는 역설적으로 한국 정치의 패러다임 변화를 앞당기는 방아쇠가 될 수 있다. 홍준표식 정치가 더 이상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 한국 선거판의 지형이 크게 바뀌었다는 것, 국민은 항상 정치보다 앞서간다는 것을 정치권은 이번 선거에서 생생하게 목격했다. 여의도에선 곧 새 판 짜기가 시작될 것이다. 그 추이에 따라 어쩌면 홍준표 대표는 ‘구시대의 막내’가 될지도 모른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