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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치마·늦은 귀가’ 피해자 탓하는 ‘성범죄’… 편견 뒤에 숨은 가해자

“여성의 행동이 성범죄의 원인? 남성 중심적 사고가 만든 그릇된 신화”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최근 지하철역에 눈길을 끄는 광고가 있다. ‘몰래카메라’를 ‘불법촬영’이라 명명하고,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고 있다.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지만 최근까지도 몰래카메라의 원인이 여성들의 짧은 옷차림이라고 지적하는 광고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실제 일상 속에서도 “그러게 왜 짧은 치마를 입었어” “여자가 조신하게 옷을 입어야지”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지 말고 바지를 입어라” 등의 말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최근 방영 중인 한 드라마에서도 여고생 성추행 사건에 대해 “그 여학생도 문제야. 그렇게 짧은 치마를 입고 다니니까 그런 일이 생기는 거 아니야. 여학생이면 여학생답게 조신하게 입고 다녀야지”라는 대사가 등장했다. 드라마의 짧은 한 장면에서도 성차별의 문제가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다.

지하철역 안에 설치된 광고. (사진=신혜지 인턴기자)

◆ 몰카 현행범 검거 현장… “여자도 잘못이 있네” 목소리 들어

최근 적발된 몰래카메라 범죄 중 절반은 지하철에서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7호선에서 근무하는 지하철 보안관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출근길이 특히 혼잡한 데다 다들 제 갈 길에 바빠 정신없다 보니 이런 틈을 노려 일부러 몸을 밀착해 비비는 식의 성추행이 많다”며 “급경사인 에스컬레이터에서는 몰카범들이 여성의 치마 속을 찍다 걸리는 경우가 많다.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 뒤로 부자연스럽게 밀착하는 듯한 행동을 보이는 남성은 십중팔구 몰카범”이라고 전했다.

시민 활동가 김영경(38·여)씨 역시 지난 5월 지하철에서 불법촬영 현행범을 붙잡았다. 김씨는 페이스북을 통해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는 “지하철역에서 내려서 우리 집 방향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고 있었다. 내 앞에 남자, 그 앞에 치마를 입은 여자가 타고 올라가고 있었다”며 “무심히 앞을 봤는데 아무래도 남자의 손짓이 이상했다.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가 다시 확인하고 다시 내밀었다가 확인하고. 세, 네 차례 반복했다. 아무래도 이상해서 ‘지금 뭐 하신 거예요’라고 물었더니 그 사람이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고 적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다행히 김씨는 사건 현장 주변에 있던 시민의 도움으로 불법촬영 가해자를 잡아 경찰에 넘겼다. 그러나 상황이 수습된 후 “현행범 검거를 도왔지만 현장 인근에서 들려온 건 ‘여자도 잘못이 있네’라며 여성을 탓하는 목소리”를 들었다”며 “그 말을 듣는 순간 맥이 풀렸다. 피해자는 무릎 위로 살짝 올라오는 길이의 헐렁한 스커트를 입고 있었는데, 불법 촬영의 원인을 피해자에게 떠넘기는 말에 같은 여성으로서 서러운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쩌면 나와 가해자, 피해자 모두 한 동네 사람일 텐데, 대부분의 불법촬영 사건이 그렇듯이 벌금만 내고 풀려나올 가해자가 나와 피해자의 얼굴을 기억하면 어쩌나, 나중에 길에서 마주치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된다”고 호소했다.

◆ 대부분 성범죄는 계획적, 노출과 관련성 떨어져

많은 사람들이 여성의 짧은 치마나 늦은 귀가, 짙은 화장, 생머리, 늦은 귀가 등 여성들의 외모와 행동 때문에 성범죄가 일어나기 쉽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2016년 성범죄 원인 및 발생 환경을 분석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우발적인 범죄보다 20대 여성을 계획적으로 노린 성범죄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적인 통념을 정면으로 뒤집은 셈이다.

우선 계획적 성범죄(84건ㆍ67.7%)가 우발적 범죄(40건ㆍ32.3%)보다 두 배 이상 많았으며 계획적 범죄를 실행에 옮기기 위해 가해자는 가급적 자신의 거주지에서 먼 곳을 범행 장소로 택하기도 했다. 형정원이 가해자의 주거지와 범행 장소까지의 거리 평균값을 측정한 결과, 피해자 주거지에서 범행을 저지른 가해자는 자신의 주거지에서부터 평균 40.72㎞를 이동해 공공장소(17.51㎞)나 노상(9.6㎞) 범죄에 비해 장거리 이동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뉴시스

윤정숙 형정원 부연구위원은 “피해자의 짧은 치마나 야한 옷차림이 성범죄를 유발한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지만 연구 결과 이를 입증할 데이터는 나오지 않았다”며 “피해 여성 때문에 성범죄가 발생한다는 통념이 틀렸다는 걸 말한다”고 설명했다. 성범죄의 책임은 오롯이 가해자에게 있는 것이며, 그 어떠한 이유로도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릴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를 탓하고 비난하는 분위기가 있음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 역시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여성의 복장이나 심지어 머리 스타일까지도 성범죄의 원인이 된다는 사회적 통념은 남성 중심적 사고가 만든 그릇된 신화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라며 “가해자들이 왜 범죄를 저지르는 가로 사회의 초점이 바뀌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 구체적·현실적 대안 요구하는 여성들… 3차 ‘혜화역 시위’ 예고

오는 7월7일 서울 혜화역에는 다시 수만 명의 여성이 모일 예정이다. 홍대 남성 누드모델 불법촬영 사건을 계기로 시작된 여성들의 세 번째 시위다. 이들은 지난 두 번의 집회와 마찬가지로 홍대 몰카 사건에 대한 경찰의 편파 수사와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 근절을 호소할 계획이다.

이번 시위에는 앞선 두 차례 시위보다 더 많은 인원이 참가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몰카 범죄가 완전히 근절되고 디지털 성범죄 해결을 위해 관련법 제정 등 실효성 있는 대책이 제시될 때까지 계속해서 시위를 진행할 계획이다. 앞선 2차 시위에서는 Δ불법촬영 범죄 엄단 Δ이철성 경찰청장 사퇴 Δ여성 경찰청장·검찰총장 임명 등을 정부와 수사당국에 요구한 바 있다.

사진='불편한 용기' 트위터 캡처

두 차례의 커다란 시위에 여성가족부·행정안전부·교육부·법무부·경찰청이 여성 대상 불법촬영 범죄 근절 대책을 발표했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지난 3일 국무회의에서 “몰카 범죄에 대한 형사처벌은 솜방망이이고 민사상 손해배상도 미약하다”며 “가해자의 소속 직장에 즉각 통보해 피해를 입힌 것 이상의 불이익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사회가 여성들의 수치심과 모욕감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고 있다면서, 여성의 명예심이 특별히 존중받는다고 체감하게 해줘야 문제가 해결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대다수의 여성들은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 대안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신혜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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