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미술협회 박정준 회장이 지난 5일 '2108 한국고미술협회전'이 열린 서울 인사동 아라아트센터 전시장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손영옥 선임기자

지난 5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아라아트센터. 지하 3∼4층에 마련된 ‘2018 한국고미술협회전’ 전시장은 손님과 관계자들로 활기가 넘쳤다. 도자기, 서화, 간찰, 가구 등 1만원부터 8억원에 이르는 1300여점이 전시됐다. 신임 박정준(71) 한국고미술협회장이 이끄는 집행부가 지난 2월 들어선 이후 업계 단합과 도약을 내걸고 마련한 첫 행사다. 고미술협회전이 열린 것은 5년여 만이다.

전시회 종료 이틀을 앞둔 지난 5일, 전시장에서 박 회장을 만났다. 전임 김종춘 회장이 도굴 문화재 거래 혐의 등으로 실형이 확정되면서 치러진 지난 2월 선거에서 그는 새 수장에 뽑혔다. 고미술협회는 1971년 설립된 한국 유일의 고미술 관련 이익단체다. 직선제가 치러진 것은 21년만이다. 전임 회장의 21년 장기집권으로 피로감이 누적된 업계에는 변화에 대한 기대가 퍼져 있다.

너무 싸게 넘긴 허련 산수화 …‘뻥튀기 장사’에 분해 화랑 차렸다

박 회장은 30대 초반이던 1981년 인사동에 고서화 전문 세종화랑을 차렸다. 발을 들여놓게 된 계기를 물었더니 밀양 박씨 족보 얘기를 꺼냈다.

“가보로 전해진 고서화가 집안에 제법 있었습니다. 19대조가 종종 때 대사헌 병조참판을 지낸 송단공 박영(1471∼1540) 선생이시거든요. 양녕대군의 외손자이신데, 돌아가신 후 중종이 문목공 시호를 내릴 정도로 총애하셨지요.”

우암 송시열의 글씨, 동춘당 송준길의 간찰, 소치 허련의 서화와 병풍 등을 주요 가보로 꼽았다. 홀로 자식을 키운 어머니는 장남인 그가 결혼하자, 서화 몇 점을 선물로 줬다. 어느 해 여름, 장마 탓에 허련의 산수화 2점에 얼룩이 크게 생겼다. 아내는 버리려 했으나 차마 버릴 수 없었던 그는 서예학원에서 안면을 익힌 표구사를 찾아갔다.

“글쎄, 감쪽같이 고쳐주는 거예요. 70℃ 따뜻한 물에 누레진 서화를 담구면 얼룩이 깨끗이 사라진답니다.”

어느 날, 그 표구사가 서화를 팔 의향이 없냐고 물어왔다. 40만원씩 80만원을 쳐주겠다니 귀가 번쩍 뜨였다. 그 때가 79년, 월급이 10만원하던 때였으니 8달치 월급이 한꺼번에 들어온 것이다.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산수화를 사 간 표구사에 놀러갔다. 당시엔 표구점이 화랑도 겸했다. 자신이 판 소치 허련의 산수화 2점 가운데 1점은 팔리고, 1점이 걸려있었다. 마침 사장은 출타 중이라 종업원에게 짐짓 모른 체 물었다.

“이거 얼마요?”
“100만원인데, 90만원에 드릴게요.”

그제야 속은 줄 알았다. 분이 삭히지 않았지만 전화위복이 됐다. 이럴 바엔 나도 한번 해보자는 생각에 고미술 화랑을 차린 것이다. 세종화랑은 번창해갔다. 그래도 초기 3년 간 구입한 서화 중에는 잘 모르고 산 가짜들이 꽤 있었다. 시골 땅 팔아 투자한 돈인데, 3000만원 정도를 학습비로 날린 것 같다며 웃었다.

그는 “인사동 고미술상은 1992년까지는 정말 잘 됐다. 그러다 인사동이 문화지구로 지정되고, 김영삼정부 들어 금융실명제가 실시된 여파로 고미술이 내리막길을 걷게 됐다”고 회상했다.

인사동에 고미술 화랑은 한 때 300곳 정도 있었으나 지금은 10분의 1로 뚝 떨어져 30곳 정도만 남아 있는 실정이다. 도저히 답이 없어 보이는 고미술계의 활로를 찾는 일이 신임 회장인 그에게 던져진 숙제다.

“고려청자가 미국에 있다고 미국 거 되나…문화재 거래 막는 현행 법 완화해야”
조선시대 백자청화화조문호. 추정가 8억원으로 이번 '2018 한국고미술협회전'에 나온 최고가 작품이다. 한국고미술협회 제공

박 회장은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며 중국을 보라고 했다. 중국은 경기가 좋아진 2000년대 들어 자국 문화에 관심이 생겨나면서 고서화 가격이 크게 올랐다. 1980년 300만원 하던 장대천, 제백석 등의 서화는 지금은 100억원으로 200배 올랐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문화재보호법 개정을 서둘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행 법 60조는 50년 이상이면서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서화, 도자기, 공예품, 고서 등 동산문화재의 해와 반출을 금지 한다.

“애국심 탓에 문화재를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은 시장가격을 떨어뜨려 우리 문화를 죽이는 꼴이 됩니다.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알릴 수 있는 부분을 도리어 규제를 통해 막는 셈이 되지요. 그러나 폐지하자는 게 아니라 완화하자는 겁니다. 고려청자가 미국에 있다고 해서 미국 문화재가 되는 건 아니거든요.”

그는 “문화재를 전부 다 나가지 못하지 말게 할 것이 아니라 등급을 둬서 낮은 등급은 해외에서 거래가 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전시장에 함께 있던 홍선호 관고재화랑 대표는 “해외 고미술 아트페어에 나가고 싶어도 전시를 위한 반출 허가 과정도 너무 까다롭다”며 “외국 관계자들이 함께 행사를 하고 싶어도 한국은 규제가 너무 심한 것 같다며 불만을 토로한다”며 거들었다.

이에따라 현 집행부는 문화재보호법 개정을 제1과제로 꼽는다. 박 회장은 “회원들 간 소통과 단합도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그가 회장에 당선된 이후 정회원은 70명이 새로 늘어 400명 가까이 된다.

박 회장은 “아직 멀었다. 준회원도 1000명이 되는데, 이들이 들어와 회원을 800명 이상으로 확충하는 게 목표”라며 “15년 전 시장이 좋았을 때는 회원이 700명에 육박한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는 지방 회원 270명을 포함해 300명이 넘는 고미술상이 참여해 오랜 만에 업계가 활기찬 모습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판매 성과도 첫 행사치고는 나쁘지 않아 12억원의 매출을 예상하고 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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