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금호아시아나그룹 직원 250여명이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퇴진을 외쳤다. ‘기내식 대란’으로 직원들이 현장에서 겪는 고통을 알릴 땐 울먹였다.

공공운수노조 아시아나항공지부는 6일 오후 6시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 계단에서 ‘아시아나항공 No Meal(노 밀) 사태 책임 경영진 규탄 문화제'를 열었다. 아시아나항공은 기내식 제공 업체들과의 계약 문제로 지난 1일부터 기내식 부족 사태를 겪고 있다. 이 과정에서 기내식 공급을 압박받던 하청업체 사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참사까지 벌어졌다.

이날 오후 6시 세종문화회관 앞에 모인 인원은 80여명으로 애초 예상됐던 300~500명보다 적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퇴근한 직원, 시민이 더해져 계단 앞이 거의 꽉 찼다. 아시아나항공 노동조합과 경찰은 이날 250여명이 집회에 참여했다고 추산했다.

참여자들은 가면과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다. 회사에 신분이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대부분이 아시아나항공 유니폼이나 검은색 옷을 입고 있었다. 앞서 주최 측은 자살한 하청업체 사장을 추모하기 위해 검은색 복장을 갖춰줄 것을 직원들에게 주문했었다. 가면을 쓴 승무원은 집회 참여자들에게 가면과 팻말을 나눠줬다. 팻말엔 ‘승객·직원 굶기는 갑질삼구 OUT’, `기내식 대란 즉각 해결' 등이 새겨져 있었다.

마스크를 쓴 집회 사회자는 “직원 몇몇이 익명 카톡 단체방을 만들어 경영진을 비판하던 것이 3000여명이 참여한 단체방으로 확대됐다”며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이번 사태에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나야한다. 또 애꿎게 고인이 되신 하청업체 사장의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

아시아나항공 노조위원장 출신 권수정 정의당 서울시의원도 계단 앞으로 나와 “2013~2014년 박 회장이 투기성 자본으로 사업을 넓혀 금호아시아나 그룹이 빚더미에 오를 때부터 그의 경영 자격은 박탈됐었다”며 “그럼에도 다시 회장 자리에 오른 것이 이번 기내식 대란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김지원 아시아나 지상여객서비스지부 부지부장은 “박 회장이 ‘핫밀(hot meal)’ 먹을 때 승객과 직원은 노밀이었다”며 “게다가 국민들 앞에서 상무 자리에 앉힌 본인 딸을 예쁘게 봐달라는 발언을 하다니 뉘우침이 전혀 없다”고 비판했다.

아시아나 직원들은 승무원, 조종사, 정비사 등 직군과 상관없이 기내식 정상화와 박 회장 퇴진을 한 목소리로 요구했다. 집회에 참여한 30대 조종사 A씨는 “회장이 이 사태의 책임을 직원들에게 다 떠넘기는 모습이 분노해서 오늘 휴무인데도 밖에 나왔다”고 했다.



6년차 승무원인 B씨는 “이런 사태가 발생한 게 국민에게 부끄럽지만, 차라리 이번 일을 계기로 박 회장이 그동안 저지른 비리들이 모두 밝혀졌으면 한다”며 “비행 때문에 이 자리에 참여하지 못한 다른 동료들도 모두 익명 채팅방에서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일반 시민도 이들의 목소리에 힘을 보탰다. 광화문 근처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는 장모(33)씨는 “오늘 집회가 열린다고 해서 퇴근 후 참석했다”며 “뉴스에서 박 회장의 기자회견을 봤는데 책임을 전가하며 제대로 사과하지 않는 모습에 ‘갑질 행태’를 느꼈다”고 말했다.

10여명의 대한항공 직원들도 집회에 참석했다. 아시아나 직원들에게 가면을 나눠주며 집회 진행을 도운 대한항공 승무원 C씨는 “우리도 4차례의 공식 집회 이후 계속해서 게릴라식으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며 “아시아나항공 직원들이 지치지 않고 계속 목소리를 내길 응원한다”고 말했다.

공공운수노조 아시아나항공지부는 오는 8일에도 제2차 경영진 규탄 집회를 열 예정이다.

안규영 기자 ky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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