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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못 간 열 살 꼬마… 60여년 만에 쓴 시 ‘구구단 노래’

광주 서구노인종합복지관에서 한글교실 수업을 듣는 최순옥(69) 할머니와 남용숙(74) 할머니가 쓴 시. 서구노인종합복지관 제공

열 살 꼬마는 학교에 가는 대신 남동생을 돌봤다. 8·15광복이 10년하고도 세 해 더 지난 1958년이었다. 친구들은 죄다 책가방을 메고 등교해 수업을 들었다. 그게 부러웠던 꼬마는 어느 날 동생을 등에 업고 무작정 학교를 찾아갔다.

꼬마는 교실 밖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동생은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교실에서 친구들의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수업이 끝나자 꼬마는 몰려나오는 친구들을 향해 “야! 얘들아. 교실에서 노래도 부르냐” 물었다.

“순옥아, 노래가 아니라 구구단 외는 소리야.” 공부가 하고 싶었던 꼬마는 그 뒤로 매일 학교에 갔다. 구구단 소리가 듣기 좋았다고 한다.

광주 서구노인종합복지관에서 한글교실 수업을 듣는 최순옥(69) 할머니의 사연이다. 할머니는 지난 6일 복지관에서 진행하는 성인문해교육사업에 참여해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시를 썼다. 제목은 ‘구구단 노래’. 할머니는 글 말미에 “그렇게 부르고 싶었던 구구단 노래를 나는 지금 한글 교실에서 부르고 있다”고 적었다.

최 할머니 외에도 사업에 참여한 어르신 44명이 자신의 이야기를 글 또는 그림으로 기록했다. 모두 23개 작품이 나왔다. 복지관은 최 할머니와 남용숙(74) 할머니의 시를 시화 공모전에 출품할 계획이다. ‘공부’라는 제목의 남 할머니 작품은 만학에 대한 기쁨과 의지를 담고 있다.

복지관은 자체 시화전도 계획하고 있다. 7월 중 진행할 예정이다. 전석복 관장은 “배움의 즐거움과 삶의 활력을 얻을 수 있는 다양한 분야의 재능교육을 지원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다음은 원문 그대로 옮긴 두 할머니의 시

구구단 노래

내 나이 열살 때
학교가 얼마나 가고 싶어서
남동생을 등에 업고
하루는 그냥 무조건 학교로 놀러갔다.
그런데 교실에서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교실 뒤에서 동생을 등에 업고
그늘 밑에서 앉아 있었다.
동생은 새근새근 자고 있고
교실에서는 흥얼흥얼 노랫소리가 들렸다.

애들이 공부가 끝났다.
야! 애들아. 교실에서 노래도 부르냐 하니
순옥아. 노래가 아니라 구구단 외는 소리야
공부가 얼마나 하고 싶어서
그 뒤로 매일매일 학교에 갔다.
구구단 소리가 좋아서…
그렇게 부르고 싶었던 구구단 노래를
나는 지금 한글 교실에서 부르고 있다.


공부

어려서는 가난에 찌들어
먹고살기 바빠서
공부 할 기회를 놓쳤고
일에 치여
공부할 기회를 놓쳤네

이제 나이가 들어
공부할 시간이 있지만
머리가 녹슬어서 하기 힘드네

공부도 다 때가 있는 법
열심히 하다보면
곧 빛 볼 날 있겠지
곧 인정 받을 날 오겠지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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