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MBC 뉴스데스크 방송화면 캡처

서울 압구정동 유명 치과의원 원장이 교정비용을 깎아준다는 ‘이벤트’로 환자들에게 약 25억원의 선금을 받고도 치료를 제대로 제공하지 않은 혐의(사기)로 불구속 송치됐다. 아직 진료도, 환불도 받지 못한 1000여명의 환자들은 진료 번호표를 받기 위해 매일 병원 앞에서 노숙을 해야 하는 처지다.

◆ 진료받으러 밤샘 노숙… 대기표 못 받으면 진료도 못 받아


지난 11일 MBC의 보도에 따르면 이 병원에서 아직 진료를 받지 못한 전국 각지의 환자들은 진료 번호표를 받기 위해 전날 밤부터 노숙을 하며 기다리고 있다. 병원 앞은 새벽 6시부터 줄을 선 환자들로 인산인해다. 8시 반에는 이미 대기인원이 80명 가까이 됐고, 9시10분쯤엔 100명을 넘어섰다. 한 교정치료 환자는 MBC와의 인터뷰를 통해 “1번 대기자가 되기 위해 전날 저녁 9시 반부터 기다렸다”고 말했다. 하지만 병원 측에서는 하루 80명까지만 진료를 보고 있어 번호표를 받지 못한 환자들은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사진=MBC 뉴스데스크 방송화면 캡처

이런 풍경이 한 달 넘게 벌어지고 있는 이유는 병원에 의사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 병원은 ‘투명 장치를 이용한 치아교정’을 내세워 ‘이벤트 치과’로 유명세를 얻었지만 의사에 비해 환자가 너무 많아지다 보니, 치료를 제대로 못 받는다는 민원이 빗발쳤다. 하루에 진료를 볼 수 있는 의사의 역량을 넘어서면서 예약시간에 제대로 진료를 받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지친 의사는 대부분 병원을 떠났다. 새로운 인력도 뽑지 못하면서 환자 진료를 일시 중단하기도 했다. 갑자기 진료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자 환자들은 ‘먹튀’ 의혹을 제기하면서 집단 고소장을 접수했다.

◆ 25억 선불로 받고 치료 중단… 원장 사기혐의 송치

서울 강남경찰서는 압수수색 대신 병원 측 동의를 얻어 원장 계좌 일부를 조회하거나 소환하는 등 두 달 가까이 수사를 진행했다. 경찰은 A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수사에 협조해 증거 인멸 우려가 없는 점, 부분적으로나마 진료가 이뤄지고 있어서 A씨가 구속되면 피해자들이 아예 진료를 받지 못하게 되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말했다.

경찰 조사 결과 A씨는 2016년 5월부터 올해 5월까지 환자 700여명에게 약 25억원을 받았지만 교정 치료를 완전히 제공하지 않은 혐의를 받고 있다. 또 A씨는 병원 재정이 어려워 교정 진료를 완성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수백 명에게 선금을 챙긴 혐의도 받고 있다. A씨는 환자들에게 선금을 받을 당시에는 병원 재정이 어려워질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취지로 사기 혐의를 부인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MBC 뉴스데스크 방송화면 캡처

일부 환자들은 해당 치과에서 교정 치료를 받은 이후 치아 변형 등 부작용이 생겼으며 치아 상태가 되레 악화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중 일부는 이중비용을 들여 재치료를 받고 있다. 병원 관계자는 “병원 정비가 다 안 돼서 최대한 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피해자 대표 “원장은 병원에 나오지도 않아… 환불 시효 지나도록 시간 끄는 중”

피해자들은 병원이 문제를 해결할 생각은 없고, ‘할부 항변권(카드 할부 결제한 가맹점이 계약을 불이행했을 때 소비자가 카드사에 남은 할부금 지급을 거절할 수 있는 권리)’을 행사할 수 없게 하거나, 환불 시효가 지나도록 시간을 끌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해당 사건의 비상대책위원회 임시대표는 국민일보를 통해 “병원은 앞에서는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지만,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뒤에서는 법적대응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당일결제’를 유도한 것이다. 교정치료는 케이스가 다양해서 진료 과정 중 상태가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그래서 보통은 진료비를 한 번에 내지 않고 분기별로 내는 걸로 알고 있다. 그런데 해당 병원에서는 당일 결제를 하지 않으면 할인을 받을 수 없다는 식으로 말하면서 결제를 하게끔 심리적 압박감을 줬다. 환자 대부분이 학생이나 사회 초년생이다 보니 심리적으로 결제를 할 수밖에 없는 상태였다”고 주장했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에 있는 한 치과 입구. 해당 치과 환자들은 진료 과정에서 사기 혐의가 있다는 취지의 고소장을 5월 중순부터 서울 강남경찰서에 잇따라 제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어 “현재 병원에는 의사 2명, 치위생사로 보이는 사람들이 5명, 데스크 직원이 2명이 근무하고 있다. 하지만 진료 정상화를 위해서 10명 이상의 의사, 50~60명 이상의 취위생사가 필요하다. 행정직원까지 포함하면 100명 정도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사건 이후 병원에 오겠다는 의사가 없으니 문제가 해결될 수가 없다”면서 “원장이라는 사람은 5월28일 피해자와의 간담회 이후 단 한 번도 병원에 나타난 적이 없으며 목격했다는 사람도 없다. 이 사건이 정말 실수였다면 진작 앞에 나서 사과라도 했어야 됐다. 그러나 사과는커녕 간담회에선 ‘환자들이 교정기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아서 문제가 생겼다’는 등의 발언을 했다”고 말했다.

또 “매일 선착순 안에 들지 못하면 진료를 받지도 못하는 실정이다. 보통은 4~6주면 끝날 진료를 나 같은 경우에도 8주 동안 받고 있다. 직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환불 조치도 안 해주고 있다. 무엇보다 다른 병원으로 옮기려면 이 병원에서 진료했다는 서류가 필요한데, 그 서류작업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대부분의 환자들이 다른 병원으로 옮기지도 못하고 있다”면서 “이번일은 분명 전략적으로 준비된 사기행각이다. 이 병원은 다른 이름으로 똑같은 일을 벌인 전력도 있다. 이번에도 똑같은 방법으로 사기를 치려다가 사건이 생각보다 일찍 터지자 환불 시효가 지나도록 시간을 끌고 있다”고 주장했다.

신혜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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