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반만에 인영이가 고열로 응급실에 갔다. 병원은 왠만하면 가지 말아야 할 곳이 맞다.

평온한 일요일이었다. 퇴근이후 대전 어머니를 뵈러갔다. 가족 모두 가려 했는데 인영이가 컨디션이 안 좋다고 해서 혼자 갔다. 인영이는 2주 전부터 인후염으로 항생제를 먹고 있었다. 언니와 주거니 받거니 열이 났지만 그리 심하진 않았다. 전날인 토요일 동네 이비인후과에서 인영이는 다 나아가고 있다고 해서 안심하고 있었다.

어머니를 뵈고 돌아오는 길에 아내가 전화가 왔다. 인영이가 맥시부펜 해열제를 먹어도 열이 안내려간다고 교차로 쓸 수 있는 타이레놀 해열제를 사다 달라고 했다. 일요일 문 연 약국을 찾아 헤메고 있는데 아내가 보낸 카톡의 숫자가 몇 분 새 계속 올라갔다. 38.5도, 39도, 39.5도...

8시30분 경 집에 도착하니 인영이가 춥다며 침대에 누워있는데 힘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응급실에 가서 수액이라도 맞자며 침대 곁에 앉아 인영이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인영이 눈에 초점이 흐려졌다. 인영아, 아빠야, 인영아, 라고 외쳤는데 인영이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의식이 없었다. 아내에게 인영이 정신 차리게 하라 외치고 119에 전화를 걸었다. 애들이 열이 많으면 경련을 일으킨다고 듣긴 했지만 이런 일은 난생 처음이었다.

구급대원들은 인영이에게 간단한 처치를 한 뒤 30분 거리인 대전을지병원으로 가자고 했다. 가족 4명 모두 구급차를 타려하니 엄마만 타고 아빠는 차를 타고 뒤따라오라고 했다. 윤영이를 차에 태운 뒤 겁에 질린 윤영이를 데리고 가지 않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형과도 같은 공무원 형님 집에 윤영이를 맡기고 혼자 운전대를 잡았다(천사 형수님은 다음날 윤영이 등굣길까지 챙겨주셨다).

구급차에 탈 때까지 의식이 없던 인영이 상태가 궁금해 운전하면서 아내에게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 주기도문을 암송하려하는데 사도신경과 짬뽕이 된 엉터리 기도문이 입에서 나왔다. 운전대는 계속 흔들렸고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속을 휘저었다. 조금만 더 일찍 일요일에 문 연 약국을 찾았다면, 어머니 집에 가는 것을 한주만 건너뛸 것을... 후회가 몰려오면서 무서웠다. 내 바로 앞에서 인영이가 의식을 잃었는데 아빠는 지켜주지도 못하고, 아무 것도 해줄 수 없었다.
아직 열이 확실히 잡히지는 않았지만 언니와 잘 논다. 집이 최고다.

응급실에 거의 도착할 무렵 119대원에게 전화가 왔다. 아이가 의식을 찾았고 괜찮으니 운전 조심히 하라는 전화였다. 차 안에서 나도 모르게 울음이 터져 나왔다. 인영이도 응급실 한켠에서 수액을 맞으며 울고 있었다. 다행히 열은 떨어졌지만 만 5세 이상은 열성경련이 잘 일어나지 않아 조금 걱정이 된다고 의사는 말했다.

원래 화요일이 인영이 예정된 항암 치료 날 이었지만 하루 바삐 인영이 상태를 체크해 봐야했다. 월요일 아침 교통체증을 피하기 위해 집에 잠시 들렸다 서울로 향했다. 혹시 몰라 입원에 필요한 짐을 쌌다. 새벽2시에야 지쳐 잠든 인영이를 병원 앞 호텔에 눕힐 수 있었다. 쉽게 잠들지 못했고, 한 시간마다 잠이 깨 인영이 열을 체크했고 그때마다 악몽을 꿨다.
집으로 가는 길. 에너지음료를 마시며 봉구와 함께 힘을 냈다.

오늘 아침 다행히 인영이 혈액수치는 큰 이상이 없었다. 다만 몸속에 침투한 바이러스와 싸우느라 백혈구와 중성구 수치가 평소보다 5배 이상 높아 항암치료는 일주일 뒤로 미뤄졌다. 인영이를 태우고 집에 오는 길에 2년6개월 전의 일이 떠올랐다. 인영이는 어제 간 대전을지병원 그 응급실에서 백혈병 의증 진단을 받았다. 그리고 다음날 차 뒷 자석에 아내와 인영이를 태우고 지금 치료받고 있는 서울의 병원으로 향했었다. 그때도 윤영이를 그 형님 댁에 맡겼다. 그때는, 아내와 인영이를 서울 병원의 낯선 무균병동에 남겨둔 채 혼자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어느 장난감백화점을 갈지 고민하며 도대체 몇 분 남았냐고 조잘대는 인영이의 목소리를 들으며 집에 돌아왔다. 반나절 새 세종과 대전 두 번 왕복, 세종-서울 운전에 에너지음료의 힘을 빌려 운전을 했지만 안전하게 돌아왔다. 인영이는 밤늦게까지 안자고 언니 셀카를 따라하다 기분좋게 잠들었다. 홍상수가 옳다.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다.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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