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본인 제공. 왼쪽부터 이예진씨, 오원탁씨.

27일 국민일보 편집국으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지난 23일 제주도 제주시 함덕해수욕장에서 물에 빠져 익사할 뻔했던 여섯살배기 여자아이를 구한 이예진(24·여)씨였습니다.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 용기 있는 행동으로 한 생명을 구한 이들의 이야기가 알려진 이후 둘은 ‘현실판 다크나이트’로 불리며 화제의 중심이 됐습니다. 해경과 구급대원들이 나타나기도 전 아이를 구하고 홀연히 사라진 탓에 두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한 관심도 뜨거웠습니다.

함덕해수욕장에서 침착하게 아이를 구해낸 주인공 이씨는 부경대 4학년에 재학 중인 학생이고, 오원탁(27)씨는 자영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처음으로 연락이 닿은 날에도 이들은 시간을 쪼개 알바를 하고 있었습니다. 일반적인 한국 20대 청년들의 모습입니다. 국민일보는 이들이 알바를 마친 이날 오후 두 사람과 번갈아가며 전화 인터뷰를 했습니다.

‘천사 커플’은 그날의 위급했던 상황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물에 빠진 아이의 비명소리와 허우적대는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고 했는데요. 당시 카약을 타고 여유를 즐기던 커플은 아이를 향해 힘을 다해 노를 저었다고 합니다. 사고 지점에 접근한 이들은 의식을 잃고 물속으로 가라앉는 아이를 두 팔을 뻗어 구해냈습니다. 이들은 곧바로 카약 위에서 심폐소생술을 실시했는데요. 서너 차례 흉부압박을 하자 새파랗게 질려있던 아이가 물을 토해내며 의식을 되찾았다고 합니다. 당황할 수도 있는 순간이었지만 침착하게 대응해 아이의 생명을 살린 겁니다.

커플은 두려움에 떨고 있는 아이를 품에 안고 다독이면서 부모가 기다리고 있는 해변으로 노를 저었습니다. 이씨는 “아이를 구했다는 안도감에 눈물이 쏟아졌고 펑펑 울면서 있는 힘을 다해 노를 저었다”고 했습니다.

제주 함덕해수욕장

<다음은 인터뷰 전문입니다>

◇물에 가라앉던 아이 건져 올려 심폐소생술…일본 관광객 연신 “감사합니다”

Q. 당시 상황은.

지난 23일 휴가 차 제주 함덕해수욕장을 찾았다. 당시 날씨는 화창했지만 바람이 굉장히 세게 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성인인 우리가 느끼기에도 바람이 좀 거셌다. 근처에 있던 안전요원도 바람이 심하니 멀리 나가지 말고 해변가 근처에 있으라고 말했다. 20분쯤 카약을 타며 시간을 보내던 중, 해변가 기준 왼쪽 방향에서 한 아이의 비명이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50m 가량 떨어진 부근에 커다란 유니콘 모양의 튜브가 뒤집힌 채, 아이가 물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다.

우리는 그 광경을 보자마자 바로 카약을 돌려 아이에게로 향했다. 도착하고 보니 우리보다 먼저 도착한 한 중년 부부가 아이를 구하기 위해 카약의 노를 빼내 아이를 구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가 그만 노에 머리를 찧더니 정신을 잃은 것처럼 힘이 빠진 채 물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순간적으로 나는 아이의 두 팔을 붙잡아 카약으로 건져 올렸다. 카약에 눕힌 채, 아이의 상태를 확인해보니 입술은 파랗다 못해 검었으며 눈도 뜨지 못했다. 아까 노에 머리를 찧은 탓인지 정신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아이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재빨리 심폐소생술을 시작했다. 서너 차례 흉부를 압박하자 아이가 바닷물을 토해내며 의식이 돌아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이가 정신을 차리자 바다를 보더니 발작을 일으켰다. 순간 카약이 뒤집어 지는 줄 알았다. 나는 아이가 두려움에 발작을 일으키지 못하게 두 눈을 가렸고 품에 안아주었다. 괜찮다며 말로 안심을 시켜줬다. 다행히도 아이는 곧 안정을 되찾았다.

아이를 태우고 무사히 해변가에 도착하니 아이의 가족들이 달려왔다. 부모는 아이의 상태를 확인하면서도 서툰 한국말로 우리에게 연신 ‘감사하다’고 말했다. 아이에게 일본말을 사용하는 걸 보니 아마 일본 관광객인 것 같았다. 우리는 아이의 부모에게 아이가 머리에 입은 상처도 있고, 혹시 모를 상처도 있을지 모르니 병원에 데려가라고 말했다. 그렇게 아이를 보호자에게 인도하고 우리는 숙소로 돌아가 휴식을 취했다. 그렇게 마무리가 됐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아이 다치지 않고 건강히 자라줬으면

Q. 네티즌들은 당신들을 보고 ‘현실판 다크나이트’라고 부르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아마도 119와 해경이 나타나기 전에 무사히 사태를 해결했기에 이러한 별명이 붙은 게 아닌가 생각한다. 그리고 따로 경위서를 작성하지 않아 신원에 대한 확인이 되지 않은 점도 있기에 이렇게 불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린 평소 겁이 많아서 무서운 영화도 잘 못 보는데, 이러한 별명은 과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기분은 좋다.

Q. 아이를 구하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

아이가 물에 빠져있는 걸 본 순간, 우리 둘 다 저 아이를 구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던 것 같다. 아이를 물에서 건져냈는데, 아무런 미동도 없이 누워있는 걸 보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사람이 눈앞에서 죽는다고 생각해봐라. 온 몸이 떨리고 미칠 지경이었다. 그래도 결과적으로 아이가 무사하니 천만다행이다. 한편으로는 뿌듯한 맘도 크다. 정말 잘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천사 커플은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우리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다. 혹여나 그 아이에게 연락이 닿는다면 어디 아픈 곳은 없는지 꼭 물어보고 싶다. 아이가 다치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줬으면 좋겠다.”

이진민 인턴기자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