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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왜 ‘상주’가 될 수 없나?”… 남성중심 장례문화에 대한 반기

한국장례문화진흥원 “여성의 역할, 100퍼센트 주변화돼 있어… 여성의 자리를 인정해주는 방향으로 바꿔나가야”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20대 여성 A씨는 얼마 전 할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면서 “가부장적·남성중심적 문화 안에서는 여자로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A씨의 아버지는 둘째지만 아들이라는 이유로 상주가 됐고, A씨의 어린 남동생은 장손이라는 이유로 A씨를 제치고 영정사진을 들고 제일 앞에 섰다. A씨는 장례행렬의 제일 끝에서 조용히 뒤따라가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A씨는 “짧은 인생을 살면서 ‘가부장제’라는 것을 피부로 가장 크게 느낀 경험”이라며 “내가 아무리 나이가 많고 똑 부러져도 여자라서 절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장례식장에서 중요한 역할은 남성이 도맡고, 여성은 잡다한 일만 처리하는 것도 생각해 볼 문제”라며 “우리 할아버지의 장례식에서도 음식상을 차리고 청소하는 등의 일은 여자가 하고, 손님을 맞거나 입관·화장 등과 같이 중요한 일을 처리하는 역할은 남성이 맡았다. 이는 철저한 성별 분업 논리에 의한 역할 분담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아내·외동딸이 상주가 되지 못하는 경우, 비일비재”… 여성의 역할, 100퍼센트 주변화돼 있어


A씨의 사례를 통해 ‘원래 우리나라 장례문화에서는 남성과 여성의 역할이 따로 정해져있는 걸까?’ ‘딸이 상주가 될 순 없는 걸까?’ ‘만약 딸이 상주가 되고 싶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장례식에서 여성이 중요한 역할을 맡을 순 없을까?’ 등의 궁금증이 생겼다. 전문가의 의견은 어떨까?

보건복지부가 출연한 한국장례문화진흥원 정혁인 정책기획부장은 8일 국민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A씨의 이야기는 우리나라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사례”라며 “친족 집단마다 조금씩의 차이는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전통사회의 남존여비 관습에 의해 장례문화에서 여성의 역할이 100% 주변화돼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정 부장은 “극단적인 사례를 들자면 남편이 돌아가셔도 아내분이 상주로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외동딸인데도 상주가 되지 못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고 설명했다.

정 부장은 “하물며 A씨의 사례처럼 영정사진을 드는 행위에 있어서도 차별을 받을 수밖에 없고, 손님을 맞는 대표자로서의 역할도 부여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심지어 예전에는 빈소 자체에서 여성을 볼 수 없는 경우가 허다했고, 여성들은 식당에 몰아놓고 잡일만 시키기도 했다”며 “특히 경상북도는 한국전통장례문화의 본고장이기 때문에 그곳에 계신 여성들은 더한 차별을 겪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덧붙였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정 부장은 “물론 우리 사회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전통장례문화’라는 것이 존재하긴 한다. 그러나 이를 하나하나 세부적으로 검토하면 그 안에는 ‘가부장적 질서에 대한 도전’ ‘양성평등에 대한 실천’도 있었다”며 “우리 조상의 일부도 반성적, 자기 성찰적 실천을 통해 양성평등한 장례문화를 구현한 사례가 많이 있었다. 그렇기에 A씨가 지적한 문제는 타당하다고 할 수 있으며, 여성의 자리를 인정해주는 방향으로 바꿔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에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왜 굳이 네가 나서서 일을 만드냐”… 장례문화가 변하지 못하는 이유


과거 양성평등 장례문화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한 사례가 있었는데도 여전히 장례문화가 변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정 부장은 “아무래도 우리나라에서는 누군가 돌아가셨을 때 장례를 급하게 치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기존의 장례절차를 고수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누군가의 장례 절차를 살아생전에 준비하게 되면 모욕으로 간주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죽음과 장례에 대한 올바른 준비가 소홀한 측면이 있다는 분석이다.

또한 기존의 가부장적·남성중심적 장례문화에 저항하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왜 굳이 나서서 일을 만드냐” “어차피 금방 끝날 장례식인데 네가 참아라” 등의 이유로 기존 관습이 온존하기도 한다.

20대 여성인 B씨 역시 비슷한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B씨는 “생전에 할아버지께서 제사에 술을 올릴 때도 내가 맏손주라면서 할 수 있게 해준 분이라 장례식에서도 내가 상주로 설 수 있게 해주셨다. 장남이신 아버지도, 차남이신 아버지도 허락하셨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정작 그 자리에서 나를 끌어내린 건 어머니와 할머니였다. ‘할아버지가 가시는 길에 네가 욕 보인다’는 이유에서였다”고 말했다. 아무리 여성이 고인과 친밀한 관계였다 할지라도 남성이 상주가 되는 것이 조상이 대대로 물려준 장례문화를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한 데서 기인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전통문화와 관습대로 ‘남성 상주’가 고인을 존중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 “고인이 가장 사랑했던, 가장 슬퍼할 사람이 상주가 돼야… 아니라면 의미 없어”


하지만 정 부장은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도 있다”며 하나의 사례를 들었다. 얼마 전 한국장례문화진흥원으로 전화를 걸어온 한 남성이 “동생이 죽었는데 제수씨가 상주가 돼도 괜찮을까”라며 자문을 구해왔던 것이다. 이와 관련해 정 부장은 “누가 상주가 되는지를 규정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며 “기존의 전통문화를 100% 수용하지 말고, 시대에 맞게, 상식에 입각해 결정을 내리면 된다”고 말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이어 “생전에 고인이 가장 사랑했던 사람, 고인이 돌아가셨을 때 가장 슬퍼할 사람이 상주가 되면 된다. 상관없는 사람이 상주가 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요즘은 1인 가구도 많고 가족 구조가 단출하기 때문에 옛날처럼 가부장적인 장례절차를 고집하거나 남녀의 전통적인 역할에 집착하게 되면 장례식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상황이 발생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맞이했을 때 여성과 남성이 느끼는 감정에는 큰 차이가 있다. 대다수의 심리학자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남성보다 여성이 가족에 대한 애착이 더 크다고 한다. 따라서 감성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제반 장례 절차에서 지금보다 여자들의 위치가 더 의미 있게 부각돼야 한다. 그래야 사람의 체온이 느껴지는 장례식 모델을 새롭게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정 부장은 “눈에 띄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분명 가부장적·남성중심의 장례문화의 경향성을 해체하고 새로운 양성평등적 장례문화를 수용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를 결코 소홀히 봐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이어 “해당 문제를 올바르게 비판하려면 시대가 변했고 남녀가 평등하다는 흐름을 인지해야 하며, 장례문화의 역사적 흐름 속에서도 ‘작은 반항의 몸짓’이 있었음을 알아주셨으면 한다. 그 안에서 해방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본다”며 “한국장례문화진흥원 역시 해당 문제에 대한 연구를 통해 국민들에게 발표할 책임을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신혜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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