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삭의 몸으로 모진 고문을 겪은 뒤 가석방된 독립운동가에게 국가보훈처가 3개월 이상 수감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독립유공자 서훈을 주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11일 흥사단에 따르면 도산 안창호 선생의 조카인 고(故) 안맥결(1901∼1976)씨는 과거 3.1운동에 참여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 선전원과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펼쳤다.

수양동우회 사건(일제가 계몽운동을 하던 180여명의 지식인을 검거)으로 체포된 안씨는 1937년 6월 28일부터 11월 9일까지 5개월간 끔찍한 고문을 겪은 후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다. 2개월이 지나고 12월 20일 임신 말기로 가석방됐다.

보훈처 공적심사위원회는 안씨에 대해 최소 3개월 이상의 옥고가 확인돼야 하는 공적심사 기준에 미달해 독립유공자로 포상할 수 없다는 결정을 내렸다.

안씨의 딸 멜라니아(75) 수녀는 “어머니는 임신한 채 5개월간의 혹독한 고문을 버티고 수감생활을 이어가던 중 만삭이 돼 가석방됐다”며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옥고기간이 3개월 미만이라며 자격미달이라고 결정한 보훈처의 판단은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그는 어머니의 독립유공자 포상을 위해 13년간 노력하고 있다.

흥사단은 공적심사 기준 및 관련 규정·매뉴얼 등을 확인하기 위해 보훈처에 정보공개청구를 했지만 기준이 공개될 경우 업무의 공정한 수행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며 관련 법규를 근거로 거부됐다. 다만 임신한 여성의 경우에도 동일한 기준을 적용, 공훈 심사를 하고 있다고 보훈처는 전했다.

흥사단 관계자는 “심사 기준이나 세칙 등이 있다면 이를 적극적으로 공개해 논란을 줄이고 포상 내용이나 과정 및 절차도 국민 누구나 알기 쉽게 포털사이트 등에 안내해야 한다”며 “차제에 사회적 협의를 통해 현 시점의 국민적 공감대에 부합하는 서훈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공적심사위는 안씨의 경우처럼 만삭 여성도 예외 없이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는데 이는 임신한 여성에 대한 이해나 배려가 없는 처사”라며 “여성에 대한 별도 기준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흥사단에 따르면 일제 경찰은 3.1 만세시위에 참여해 4만6948명이 체포 혹은 투옥됐다는 기록을 남겼다. 그러나 7월 기준 독립유공자 포상자는 1만4849명이다.

흥사단은 “내년이면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된 지 100년이 된다”며 “독립운동 공적에 대한 정확한 심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관련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가보훈처는 “이미 올해 4월 옥고 기준 3개월 조항 폐지 등 포상기준을 완화한 서훈심사 기준을 개선, 확정했다”고 해명했다. 개선안의 주요 내용은 옥고 3개월 폐지를 비롯해 여성 독립운동가의 경우 시대적 상황을 감안, 정황상 독립운동을 한 사실이 인정되는 직접적 자료를 적극 활용해 포상한다는 내용이다.

보훈처 관계자는 “이번 광복절을 계기로 26명의 여성 독립유공자를 새롭게 발굴했다. 안씨를 비롯해 그동안 기준이 미달돼 포상되지 못한 분들을 우선적으로 찾아 서훈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안규영 기자 ky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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