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제국주의 전범들의 유골을 합사한 야스쿠니 신사(왼쪽)와 제73회 종전일 행사에 참가하고 있는 102세 할머니. 국민일보 DB, AP뉴시스

한국인에게 광복절(8월 15일)은 축제의 날이다. 광복(光復)을 그대로 풀이하면 ‘빛을 되찾는다’는 뜻이다. 한국인에게 ‘암흑’으로 기억되는 일제 식민통치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 15일은 광복절이다.

같은 날이지만 일본인에게 다른 날이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이자 패전국이다. 히로히토 당시 일왕이 정오 라디오방송에서 ‘무조건 항복’을 선언해 제국주의 정권이 패망하고 미군정의 통치 아래로 들어갔던 날이 73년 전 오늘이었다. 일본은 매년 이날을 종전일로 지정해 추모하고 있다.

일본은 종전일이 돌아올 때마다 주변국을 침략하고 연합국을 상대로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제국주의자, 그리고 이 파시즘의 광풍 속에서 침략전쟁의 소모품으로 전락했던 사망자를 추모하는 유족이 공존한다.

일본 여야 정치인들이 15일 야스쿠니신사를 방문해 참배를 준비하고 있다. AP뉴시스

1. 전범국 총리 아베 “참배하지 못해 죄송하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패전일마다 어김없이 야스쿠니신사에 공물료를 납부했다.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아베 총리를 대신해 야스쿠니신사를 찾은 시바야마 마사히코 자민당 총재는 기자들에게 “아베 총리로부터 ‘참배하지 못해 죄송하다. 선조들을 꼭 참배하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한국 중국 대만 등 주변국과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제2차 세계대전 연합국과의 관계를 의식해 야스쿠니신사를 찾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다만 공물료를 납부하고 이번에는 대리 참배에 대한 직접적인 의사를 밝혀 참배에 준하는 태도를 이어갔다. 야스쿠니신사는 이날도 많은 여야 정치인과 국민들의 방문으로 발 다달 틈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많은 인파가 15일 야스쿠니신사 안팎을 채우고 있다. AP뉴시스

야스쿠니(靖國)는 ‘나라를 태평스럽게 다스린다’는 뜻이다. 평화를 의미한다. 하지만 그 뜻이 무색할 만큼 청일전쟁, 러일전쟁,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 246만명의 유골이 합사됐고 전리품을 전시하고 있다. 도조 히데키를 비롯한 A급 전범 14명이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돼 있다. 2013년 12월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신사를 공식적으로 참배했을 때 주변국의 항의를 받은 것은 너무도 당연할 수밖에 없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죽은 일본군의 유족들이 15일 지난 세기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를 기원하는 제73회 종전일 행사에서 세계 평화를 기원하며 비둘기를 날리고 있다. AP뉴시스

2. 패전국 국왕 아키히토 “일본의 행동 깊이 후회한다”

또 다른 일본인에게 이날은 비극적인 전쟁에 동원돼 목숨을 잃은 지난 세기의 젊은이들을 추모하고 세계 평화를 기원하는 날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동원돼 처참한 죽음을 맞은 제국주의 시절 일본군 유족들은 이날 종전일 행사에 참석했다.

이들은 행사 시작을 앞두고 세계 평화를 기원하며 흰 비둘기를 날리기도 했다. 유족 중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죽은 남편을 추모하기 위해 휠체어를 타고 참석한 102세 할머니도 있었다.

아키히토 일왕 내외가 15일 일본 도쿄 무도관에서 열린 제73회 종전일 행사에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징용됐던 사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AP뉴시스

올해로 86세인 아키히토 일왕은 이날 야스쿠니신사가 아닌 도쿄 무도관에서 열린 제73회 종전일 추모 행사장을 찾았다. 아키히토 일왕은 1945년 8월 15일 무조건적인 항복’을 선언한 히로히토 일왕의 장남이다.

아키히토 일왕은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때 했던 행동들에 대해 깊이 후회한다”며 “과거 전쟁이 일어났던 시대를 반성할 것을 서약하고 이런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아키히토 일왕은 아베 총리와 다르게 ‘평화헌법’으로 불리는 헌법 9조 수호를 주장하는 반전주의자다. 2019년 4월 왕위를 내려놓는 아키히토 일왕에게 이날 종전일 추모행사는 국왕의 자격으로 마지막이었다.

‘후회’ ‘반성’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아키히토 일왕의 마지막 연설은 이날이 일본인에게 ‘패전일’인 동시에 전쟁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고 싶은 ‘종전일’이라는 사실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국민일보 더피플피디아: 일본의 8·15 종전일

더피플피디아는 국민(The People)과 백과사전(Encyclopedia)을 합성한 말입니다. 문헌과 언론 보도, 또는 관련자의 말과 경험을 통해 확인한 내용을 백과사전처럼 자료로 축적하는 비정기 연재입니다.

박태환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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