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 종결을 앞두고 마지막 골수검사를 받는 날이었다. 새벽 5시 잠든 인영이를 태우고 서울로 향했다. 인영이는 이제 커서 자기 전에 허리주사 맞기 싫다고 병원가기 싫다고 노래를 부르다 잠들었다.
병원에 도착해서도 인영이는 3년여의 시간만큼 솜이 죽어 ‘노인’인형이 된 봉구를 안고 표정이 굳어있었다. 아내는 인영이에게 이제 마지막 허리주사고, 마취하기 때문에 하나도 안 아플 거라며 인영이를 달랬다.
인영이가 마취에서 안 깨 자고 있다.

인영이는 고도진정 골수검사를 받았다. 어른도 참기 힘들다는 골수검사 고통을 줄이고 검사 진행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수면 내시경처럼 마취를 하고 진행하는 것이다. 검사실에 들어가서 눈물을 뚝뚝 흘리던 인영이의 눈이 감기는 것을 보고 검사실을 나왔다. 검사실은 보호자 출입금지다.

15분이란 시간은 참 길었다. 직전 골수검사 때 마취가 중간에 깨고 골수채취에 실패했던 안 좋은 경험 때문에 더욱 그랬다. 아내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검사실 문이 열리고 인영이가 잠든 채 나왔다. 허리주사 교수님(주치의는 아니지만 인영이 허리주사를 자주 놔주셔서 인영이는 그렇게 부른다)는 중간에 인영이가 깨서 마취제를 보통 아이들보다 2배 넣을 수밖에 없었다고 얘기해줬다. 새벽부터 금식을 한 인영이는 이 때문인지 잘 깨지 않았다. 함께 처지를 받은 4명의 아이들이 모두 마취에서 깨어났는데 인영이만 비몽사몽이었다. 의료진이 억지로라도 깨워야 한다고 해 인영이를 깨우기 시작했다. 인영이는 손을 잡아달라며 엄마만 찾으며 자꾸 눈이 감겼다. 아내를 병상 발치로 보내고 인영이에게 지금 안 일어나면 엄마 언니랑 먼저 간다고 겁을 줬다. 인영이는 울면서 억지로 눈꺼풀에 힘을 줬다.

오후 3시. 4시간여의 출혈 및 진정시간을 지내고 병원 문을 나섰다. 함께 넣은 척수항암제 때문인지 인영이는 음료수만 먹었는데도 토를 하고 어지러움증을 호소했다. 집에 가서 라면이 먹고 싶다고 했다. 인영이를 가슴팍에 안고 병원 복도를 나서며 “인영아 이제 집에가자”고 하는데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처음 아팠을 때 한손으로 쉽게 안았던 인영이는 이제 쌀 반가마니 무게만큼 묵직해서 뒤따라오는 아내 몰래 한 손으로 눈물을 훔치는 게 쉽지 않았다.
인영이와 같은 나이였던 재윤이(왼쪽)는 고도진정골수검사를 받던 중 심정지로 하늘나라로 갔다. 의료진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만 잘 했다면 지금도 뛰어 놀 아이였다.

몇주 전 재윤이 이야기를 들었다. 재윤이는 인영이와 같은 급성림프구성백혈병으로 3년 동안 항암치료를 잘 받았다. 완치를 눈앞에 둔 지난해 말 열이 나서 병원에 간 재윤이는 인영이가 오늘 받았던 고도진정 골수검사를 받으러 검사실에 들어갔다가 심정지가 발생했다. 재윤이는 산소호홉기가 구비되지 않은 일반 주사실에서 처치를 받다가 심정지 응급처치가 늦어져 사망했다. 인영이와 같은 나이였다. 재윤이 어머니는 왜 재윤이가 죽었는지 알고 싶고, 재발방지대책을 만들어 달라고 청와대 홈페이지에 국민청원을 했다.

2010년 항암제 투약 오류로 사망한 종현이로 인해 환자안전법(종현이법)이 만들어졌다. 이 법에 따르면 재윤이같은 중대한 환자 안전사고는 보건복지부에 보고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해당 병원은 의무가 아니라는 점을 악용해 아직 보고조차 하지 않고 있다. 재윤이 어머니가 병원으로부터 들은 말은 “억울하면 소송 하세요”가 전부다.

재윤이 어머니는 청원글에 이렇게 적었다.
‘3살부터 66번을 입원하며 살려고 발버둥을 쳤는데, 의사선생님 말 엄마 말 잘 들어야 유치원도 가고 태권도도 간다고 해서 죽을힘으로 버티어낸 내 새끼는 왜 온몸에 주사바늘이 꽂힌 채 갈비뼈가 다 부러지고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여기에 누워있나요.
몸이 작다고 해서 생명도 작은 건 아니예요. 생명에 무게는 모두 같다고 하잖아요.’
케테 콜비츠의 조각상. 2차 세계대전에서 죽은 아들을 안고 있는 어머니 모습이다. 우리는 그때보다 못한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 사회는 아직 세월호에 올라 타 있는 것 같다. 예전 독일에 갔을 때 케테 콜비츠의 조각상을 봤다. 한 어머니가 열여덞살에 전장에서 죽은 아들을 안고 있는 모습이다. 아마 재윤이 어머니도 더한 피눈물을 흘리며 재윤이를 안고 있었을 것이다. 재윤이는 인영이처럼 엄마 품에 안겨 병원을 나왔어야 했다. 우리는 2차대전보다 못한 세상에 살고 있는 듯 하다.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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