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SNS 보지 마라. 그거 보면 자살할 것이다. 나는 너보다 (여론의 비난이) 더 심하다. 우리 독일전 열심히 치르고 한국 돌아가면 같이 대표팀에서 물러나자.”

2018 러시아 월드컵 조별예선 마지막 경기인 독일전을 앞두고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신태용 전 감독이 장현수에게 한 말이다. 앞서 스웨덴과 멕시코를 상대로 연이은 실책을 저질러 전국민적 비판에 심적인 부담감을 이겨내지 못한 장현수를 에둘러 위로하기 위함이었다. 결국 장현수는 신 전 감독의 설득에 다시 마음을 다잡고 독일전에 나섰다. 무난한 수비와 함께 부상으로 이탈한 기성용의 빈자리를 준수하게 메우며 팀의 2대 0 완승에 힘을 보탰다.

신 전 감독은 결국 월드컵 일정이 끝난 후 축구협회와의 계약이 끝나 흔한 퇴임식조차 없이 조용히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축구협회는 독일전 승리에 대한 신 전 감독의 공로를 인정해 차기 감독 후보군에 놓았음에도 초기의 목표였던 조별예선 통과 실패를 통감했다. 그렇게 파울루 벤투 감독의 최종 선임과 함께 신 전 감독은 장현수와의 다짐대로 대표팀을 떠나갔다.

하지만 장현수는 달랐다. 다시 9월 A매치에 나설 벤투호 1기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당연하면서도 예견된 결과였다. 벤투 감독이 대표팀 사령탑을 잡게 된 시기는 지난달 17일이다. 한 달도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두 번의 평가전을 준비해야하는 상황이다. 기존의 월드컵 선수들을 대거 중용하는 것은 필수적인 선택이었다. 2018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과 K리그에서 눈에 띄는 활약을 펼친 선수 몇몇이 포함된 정도였다.

장현수는 대표팀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두 명의 전임 감독 시절 센터백과 라이트백, 수비형 미드필더까지 다양한 포지션을 오가며 중용됐다. 스리백과 포백 등 다양한 전술이 실험되는 과정에서도 항상 빠지지 않고 팀의 중심을 잡아줬던 선수 역시 장현수였다. 2018 독일전에서 기성용이 부상당하자 신 전 감독이 가장 먼저 장현수를 떠올렸을 정도였다.

장현수의 최고의 장점인 이 부분이 벤투 감독의 눈에 들었다. 벤투 감독은 “장현수를 단순히 독일전만 보고 발탁한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 많은 포지션에서 뛴 다양한 역할을 소화할 수 있는 선수임을 확인했다. 기술적으로 팀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선수로 판단하고 있다”고 그의 선발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아직 남아있는 월드컵 후유증과 쏟아지는 비판으로 인해 심적인 부담감을 떨쳐내지 못한 탓일까. 지난 7일과 11일 코스타리카전과 칠레전, 두 번의 A매치에서 장현수는 몇 차례 클리어링 실수에도 불구하고 합격점을 받기엔 충분했다. 하지만 이러한 활약에도 실책성 플레이를 떨쳐내진 못했다. 칠레를 상대로 경기 종료를 앞둔 시점, 골키퍼 김진현에게 시도한 백패스가 짧아 디에고 발데스에게 공 소유권을 내줬다. 다행히 발데스의 슛이 높게 떠 실점으로 연결되진 않았으나 장현수로선 꿈에 나올 것만 같은 장면이다. 월드컵에서의 악몽을 반전시키고 명예회복을 할 기회는 10월 A매치로 넘기게 됐다.

11일 오후 경기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축구 국가대표팀 평가전 한국과 칠레 경기에서 한국 장현수가 헤딩슛을 쏘고 있다. 뉴시스

◆ 벤투호의 장현수… 9월 A매치에선?

벤투 감독은 포르투갈 대표팀과 여러 클럽들을 오가며 4-3-3, 4-3-2-1, 4-2-3-1 등 4선 수비를 기본 골격으로 한 유기적이고 다양한 포메이션을 구사해왔다. 가장 최근 감독으로 있었던 충칭 당다이 리판에선 경기 90%이상을 4-2-3-1 포메이션을 꺼내들었다. 한국 지휘봉을 잡고도 선수단 성격에 맞춰 포백을 기반으로 최적의 시스템을 찾기 위한 시도를 보일 것으로 예상됐다. 그렇다면 벤투 감독의 전술적 실험에서 장현수가 갖고 있는 장점의 가치는 더욱 높아진다. 빠른 발을 갖고 있진 않지만 빌드업과 커버능력이 좋은 장현수는 기본적으로 중앙 수비에 위치시켰을 때 가장 안정적이다. 선수 본인 역시 그 포지션에 가장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4-2-3-1 포메이션으로 나서거나 투톱을 활용했을 때 장현수를 기성용을 대체할 수 있는 포백 수비 센터백 윗쪽의 수비형 미드필더로도 위치시킬 수 있다. 1기 명단에서 장현수가 수비수가 아닌 미드필더로 선발됐던 것 역시 그러한 반증이다. 실제로 코스타리카전에서 기성용이 후반 교체로 빠져나가자마자 그의 자리로 올라와 볼 배급 역할을 맡았다. 역동성을 강조하는 벤투 축구에서 패스의 큰 줄기는 중앙 미드필더를 거쳐 좌우 측면을 열어가는 식이지만 시작은 중앙 수비수다. 상대의 압박이 심하면 롱볼도 활용해야 한다. 장현수는 이러한 역할부터 기성용의 대체자 자리까지 준수하게 소화했다.

벤투 감독은 공격상황에서의 스피드와 세밀함을 매우 중요시하는 감독이다. 앞선 두 차례의 평가전에선 이용과 홍철 두명의 풀백들을 굉장히 공격적으로 활용했다. 측면 윙백의 오버래핑을 적극적으로 지시했는데, 측면 미드필더가 가운데로 공간을 좁히면 이용과 홍철이 높게 라인을 끌어올려 공격에 가담하는 형태였다. 선수들 역시 장현수를 제외하면 포지션 변화없이 자신이 가장 익숙한 자리에서 나섰다.

쾌승을 거둔 코스타리카와 달리 2차전에서 만난 칠레는 예상대로 강했다. 강한 전방압박을 통해 후방에서의 볼 소유를 방해했고 미드필더와 수비진들의 간격도 좋았다. 유럽 굴지의 클럽들을 오가며 잔뼈가 굵은 아르투로 비달을 포함해 디에고 루비오와 안젤로 사갈 등 상대 미드필더진들은 노련했다. 장현수의 경기력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칠레에게 몇 차례 위기상황을 내줬지만 무실점으로 막아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공이 컸다. 코스타리카전 또한 기성용의 자리에서 정우영과 준수한 호흡을 보이며 공격의 시발점 역할을 했다.

이러한 의미에서 장현수가 비록 실책성 플레이를 저질렀더라도 벤투 감독의 전술적 눈높이를 충족시켜줬을 가능성은 남아있다. 하지만 결국 축구는 골을 넣어야 이기는 스포츠다. 공격의 효율이 중요성 되는 만큼 수비시의 실책은 크게 다가온다. 경기 내내 공격수가 잠잠해도 득점 한번이면 그날의 부진을 상쇄시킬 수 있듯, 수비수 역시 준수한 활약을 펼쳤어도 골로 직결될 수 있는 실책이 나와 버리면 그날 활약의 의미가 퇴색된다. 칠레전의 장현수가 그랬다. 그가 세트피스에서 득점으로 연결될 뻔한 위협적인 헤딩슈팅을 한 것을 기억해주는 이는 없다.

7일 오후 경기 일산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축구 대표팀 친선경기 대한민국과 코스타리카의 경기. 한국 파울루 벤투 감독이 경기장을 바라보고 있다. 뉴시스

◆ 벤투의 다음 센터백 카드는?

벤투 감독에겐 이제 한 달의 시간이 주어졌다. 그는 10월 A매치에서도 자신의 축구 철학과 원하는 플레이 스타일을 실험하며 다양한 공격루트 찾기에 나설 것이다. 짧은 시간은 아니다. 곧바로 15일부터 잠시 쉬어갔던 K리그가 다시 치열한 경쟁을 이어가고 좀 더 선수단의 특색을 낱낱이 파악해 볼 수 있다.

재밌는 것은 대표팀의 중앙 수비수 경쟁이다. 현재 대표팀에선 김영권과 장현수 듀오가 압도적인 입지를 가지고 있다. 앞선 슈틸리케와 신태용 체제에서도 가장 많은 경기를 소화한 둘이기도 하다. 특히 장현수는 2016년 이후 A매치에서 가장 많은 경기를 소화한 선수다.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 10경기 동안 총 1123분을 활약했다. 사실상 풀타임이다. 월드컵에서도 전경기 선발로 출전했다.

대표팀에 오기 위한 센터백 경쟁은 치열하다. 확실히 입지를 굳힌 둘을 제외하더라도 정승현과 아시안게임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친 김민재, 지난 월드컵 일원이었던 오반석과 윤영선까지 있다. 중국 슈퍼리그에서 매 경기 출장하며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권경원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카드다.

이러한 상황에서 벤투 감독이 장현수와 김영권을 곧바로 다음 A매치에도 선발로 내세울진 의문이다. 장현수는 이번 경기로 다시 한번 실책이 도마 위에 오르며 월드컵 악몽을 이어가게 됐다. 선수 스스로 느끼는 심리적 압박감 역시 클 것이다. 소속팀 J리그 FC도쿄에선 구단 사상 최초로 외국인 주장완장까지 찰 정도로 인상적인 활약을 이어가고 있지만 대표팀만 오면 몸과 머리가 굳은 듯 긴장이 풀리지 않고 있다. 본인 역시 잇따른 실책성 플레이에 괴로울 법만 하다.

함께 호흡을 맞춘 김영권은 대표팀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수비의 중핵이지만 A매치 이전까지 단 차례의 실전 경기도 나설 수 없다. 소속팀 광저우 에버그란데 후반기 선수 명단에서 김영권의 이름은 찾아볼 수 없다. 중국 슈퍼리그가 지난해 아시아 선수 정책을 변경했기 때문이다.

기존 아시아 쿼터에 따라 팀당 보유할 수 있는 4명의 외국인 선수 중 아시아 국적 선수가 1명 이상 포함돼 있을 경우 1명의 외국인 선수를 추가로 보유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국선수 육성 정책에 따라 외국인 선수 보유 한도를 최대 5명에서 4명으로 축소했다. 별도의 아시아 쿼터는 존재하지 않는다. 경기에 나설 수 있는 외국인 선수는 최대 3명뿐이다. 장수 쑤닝에서 활약하던 대표팀 출신 수비수 홍정호 역시 이러한 이유로 입지가 좁아지자 국내 K리그로 복귀했다.

광저우는 기존 선수인 굴라트, 알란에 이어 새로 영입한 파울리뉴, 탈리스카를 4명의 외국인 선수로 등록했다. 아시아쿼터로 출전할 수 있는 AFC 챔피언스리그(ACL)가 있지만 내년 상반기까지 기다려야한다. 김영권이 이적을 타진하지 않는 이상 경기에 나설 수 없다는 뜻이다. 대표팀으로서는 악재지만 벤투호 승선을 노리는 다른 센터백 경쟁자들에겐 좋은 기회다.

벤투는 전술 스타일 상 투박한 몸싸움보단 세밀한 위치선정과 지능적인 플레이를 요구하는 감독이다. 후방에서의 빌드업과 수비적인 조직력 강화를 중시하기 때문에 여러 센터백들을 기용하고 다양한 수비조합을 시도해보며 가장 자신의 입맛에 맞는 수비진 찾기에 나설 것이다. 경쟁력 있는 출중한 중앙 수비수들이 여럿 기용될 수 있다는 것은 벤투호에게 있어서 매우 고무적이다.

벤투호에겐 10월과 11월 4차례의 A매치가 남아있다. 곧바로 내년 1월 아랍에미리트(UAE) 아시안컵에 돌입한다. 아시아무대에서만큼은 영원한 강호로 꼽히며 우승후보 1순위인 한국이지만 그간 유독 아시안컵에서 만큼은 번번이 문턱에서 미끄러졌다. 한국의 마지막 우승은 1960년으로 무려 58년 전이다. 그런만큼 벤투호를 향한 기대는 더욱 특별하다. 아시안컵 우승 시 컨페더레이션스컵에 나갈 수 있다는 것도 매우 매력적이다.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얻은 경험은 2022 카타르 월드컵을 준비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9월 A매치는 첫 발걸음을 뗀 벤투호에게 많은 시사점을 줬다. 두 경기에서 벤투의 철학을 녹여낼 순 없는만큼 현실을 직시하고 성급한 낙관론은 피해야한다. 벤투 감독은 현재까지 선수들 파악을 비롯해 한국 축구 문화와 분위기를 이해하는 정도였을 것이다. 눈앞의 아시안컵, 최종 종착지인 2022 카타르 월드컵을 향한 벤투호의 단계적 성장을 묵묵히 지켜봐야한다.

송태화의 인저리타임
인저리타임. 전광판의 시계는 아직 멈추지 않았습니다. 송태화 기자가 함성소리에 스며드는 이야기를 전하는 스포츠 연재입니다.

송태화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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